성경, 지혜의 샘/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교실

39. 구약성경을 넘어서

김레지나 2008. 9. 28. 18:55

 

성경교실_39.hwp

 

성경교실(구약) : 자료 -  39


구약성경을 넘어서


* 하스모네아 왕조 시대

 기원전 142년, 유다인들은 독립(자치)를 획득했다. 시몬은 그 공적으로 대사제 및 통치자로 인정을 받았고, 이 권한은 세습되었다. 시몬의 아들인 오한 히르카누스 때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 로마 제국의 지배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시리아를 속주로 만들고, 팔레스티나도 시리아 속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 헤로데 왕가의 등장

 이두메아 출신인 헤로데 안티파텔은 로마 제국에 아부함으로써 기원전 37년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로마의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적절한 충성심을 보여 계속 신임을 얻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안티파텔의 아들이다.


* 산헤드린

 산헤드린은 최고 의결기관으로 정부 ․ 의회의 기능을 지니면서 동시에 고등법원의 역할을 수행했다. 산헤드린은 대사제를 포함한 71명의 원로들로 구성되었는데, 기원전 4년 안나스 시대부터 대사제가 의장직을 맡았다.


* 예루살렘 성전

 이스라엘에서 성전은 종교의 중심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경제 등 모든 활동의 중심이었다. 성전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곳으로 매일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다. 모든 유다인은 대축일 등에 의무적으로 성전을 참배해야 했다.


* 회당

 모든 마을에 설립되어 있던 회당은 일상생활에서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안식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회당에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설교를 들었다. 회당은 또한 지역사회의 학교이며 공동체의 중심이요 지역행정의 본부였다.


* 유다교의 분파

 유다인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결국은 구원으로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이 어떻게 실현되는가, 세상에서 신앙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 분파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갖고 있었다. 유다 사회의 대표적인 분파는 바리사이파 ․ 사두가이파 ․ 에쎄네파 ․ 열혈당원 ․ 헤로데 당원 등이다.


* 율법학자들

 율법학자들은 법률가, 성경주석가, 교사로서 당시 유다 사회에서 명망과 영향력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율법의 기본 정신이 아닌 자구 해석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된 관계에 있었다.


* 하층민들

 팔레스티나 주민의 다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을 충실히 지킬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은 경건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암 하렛즈’(‘땅의 백성’이라는 뜻)라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산’(離散), ‘산재(散在)를 뜻하는 말로,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계속 정복당하면서 강제로 추방되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살 길을 찾아 자진해서 떠나 타국에서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현지에서 형성한 공동체를 가리킨다.


* 이스라엘의 순례

 구약성경은 미완성 교향곡 또는 막을 내리지 않은 드라마로서 끝맺는다. 바리사이파의 유다이즘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순례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탈무드로, 그리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지속된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순례는 율법과 예언을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2008년 1학기 마지막 성경강의 정리입니다.>


 성경강의를 시작할 때 2년 과정으로 할까 했었는데, 신부님께서 3년 과정으로 하자하셨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구약을 공부했고, 앞으로 일 년 반 동안 신약을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애초의 제 뜻대로 구약을 일 년 동안 공부하려 했었다면 압축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 년 반 동안 공부했지만 아직도 미진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학 박사학위를 따러 온 것이 아니니까 구원의 역사를 큰 흐름 안에서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구약시대를 회고하는 데 공부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공부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하느님을 좀 더 깊이 섬기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신약을 배울 때 다시 구약을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으니 신약강의를 이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된 것이므로, 신약을 배울 때 다시 구약을 되짚어볼 것입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버리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랍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웠던 구약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앞으로 신약 공부할 때 지금까지 배웠던 것이 바탕이 되어 훨씬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구약 성경이 그리스도 오실 때까지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된 시대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사이에는 상당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로 해서 문서로 쓴 이스라엘 역사는 끝납니다. 그 후 구약의 몇 개 의 구약문헌들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으로는 다니엘서가 끝입니다.


‘역사를 보는 구약의 마지막 관점이 신약으로 연결되는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가 오늘 이야기할 주제이고, 이걸 앎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활동하는 사회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다니엘서 >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 : 안티오코스 4세의 폭정과 억압에 저항 촉구

다니엘은 자신이 서 있던 시점은 70주간 중에서 마지막 12시 종치고 있는 순간에 해당된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폭정을 당하고 있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으니, 용기를 가지고 힘든 시기를 벗어나자고 말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다니엘의 묵시적 예언

세상의 역사 : 통상의 추세로 전개

그런데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예언 후에도 세상은 다시 똑같이 패턴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리 이야기하고 촛불을 들어도 벽창호같은 이가 있습니다. 예전의 신문광고는 다 상업적인 광고였습니다. 그런데, 촛불 이후에 광고가 많이 변했습니다. '의견광고'가 등장했습니다. 의견광고는 대부분 기업가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냅니다.

광고 예 1 :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회사사장은 이익만 추구하면 되지만, 국가는 이윤추구만 하면 안됩니다. 뒤쳐지고 억울한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추구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합니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예수님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촛불을 드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고 예 2 : "우리는 꿈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있으면서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자부심 느낄 광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묵시문학적으로 꿈을 꾸었습니다. 유다계 분파들은 각각 어떤 식으로 꿈을 꾸었는가 앞으로 공부할 것입니다.

광고 예3 : "깨어있는 국민, 그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대표적 첨병이 언론입니다. 요즘 국민들이 언론에 대해서 이제야 알았습니다. 운하보다 국가권력의 언론장악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이제는 정부가 깨어날 차례입니다.

광고 예 4 : "잘 들어라!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머슴이 말을 안 들으면 머슴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광고 예 5: "기다렸어.. 총반격!"

광고 예 6 : "소통? 불통! 울화통"

내각챔임제 같으면 요즘같은 지지율이라면 총사퇴해야할 형편입니다. 국민을 어떻게 위해주는가 하는 문제를 소홀히 하면 그 나라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하스모네아 왕조 시대>


기원전 142년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독립(자치)획득

시몬 : 대사제 및 통치자로 인정, 시몬 가문에 권한 세습

~~~(일부 못 적었습니다.)

요한 히르카누스 : '왕'이라는 칭호 사용 - 하스모네아 왕조 시대 열림

이스라엘에 희망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카베오 아들들 중 유일하게 남은 시몬에 의해서 자치권을 얻었습니다. 시몬은 대사제로, 통치자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대사제와 통치자의 지위는 세습되었습니다.

시몬이 사위에게 피살당하고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가 권좌에 올랐습니다. 요한 히르카누스는 가문에서 최초로 왕이라는 칭호를 썼습니다. 독립국가도 아닌데 왕이라는 칭호를 쓴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속국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왕이라는 칭호 사용했듯이) 속국이 되어도 왕이라는 칭호 쓸 수 있습니다. 최고통치자가 분봉왕으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요한 히르카누스 가문을 하스모네아 왕조라고 합니다.


셀레우코스 왕조 섬기며, 종교적 열성 잃어버리고 정치적 음모와 경쟁

 하스모네아 왕조는 귀한 독립을 얻었지만, 독립을 쟁취한 게 아니고 셀레우코스 왕조와 계약을 맺어서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스모네아 왕조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협력이 필요했습니다. 하스모네아 왕조는 종주국에 비위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예전의 마카베오 항쟁 때의 정신과 고유한 종교가 많이 쇠퇴했습니다. 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싸우고 죽이는 등 일반적인 군주국가의 폐해가 다시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마카베오 항쟁은 하스모네아 왕조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의미밖에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스모네아왕조도 오래 가지 못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 로마제국의 지배 >

 

기원전 8세기 건국, 기원전 3세기 세력 팽창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기원전 3세기에 세계로 세력을 팽창했습니다. 프랑스, 독일, 그리스 , ...유고슬라비아, 중동, 터키, 이집트, 모로코, 아라비아 반도, 메소포타미아까지 이르는 대제국 이룹니다.

기원전 63년 팔레스티나 정복

로마의 폼페이오스 장군이 시리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만들면서 팔레스티나를 시리아에 편입시켰습니다. 팔레스티나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스모네아왕조가 몰락합니다.

로마의 식민지배, 하스모네아 왕조의 몰락

그  후 로마가 현지인을 통치자로 내세웁니다. 로마에 의해 왕이 된 이가 바로 헤로데왕입니다.




<헤로데 왕가의 등장>


기원전 37년 로마제국에 의해 헤로데 안티파텔을 왕으로

이두매아 출신, 요한 히르카누스 때 유다에 합병된 에돔

기원전 37년에 로마가 헤로데 안티파텔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는 원래 유다인이 아닙니다. 이두메아 출신입니다. 이두메아는 원래는 유다땅이 아니라 에돔땅이었습니다. 로마가 에돔을 유다로 흡수합병을 해서, 이두메아 사람들도 유다인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데 안티파텔은 엄밀히 말하면 순수한 유다인이 아니고 반쪽 유다인입니다. 그는 잔꾀가 많아서 로마에 아부를 아주 잘했습니다. 헤로데는 로마 요소요소의 실권자들에게 충성을 바치고 아부를 해서 왕의 지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에 충성 : 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안티파텔의 아들)

예수님 태어날 때 아기들을 죽인 왕은 헤로데 안티파텔의 아들인 헤로테 안티파스입니다.




<산헤드린>


산헤드린 : 최고 의결기관 - 정부, 의회, 고등법원의 기능과 역할 수행

           정치, 경제, 종교, 이념, 모든 문제를 다루는 최고 권력기관

실제로 로마의 삶을 지배하는 최고기관은 산헤드린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된 기관인데, 입법, 사법 행정권을 다 쥐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권력이 산헤드린에서 나왔습니다. 산헤드린의 결정은 법적 효력 지녔습니다. 곧 의회기능을 한 것입니다. 다만 사형을 시킬 권한만은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산헤드린 구성 : 대사제를 포함한 71명의 원로들로 구성,

                기원전 4년부터 대사제가 의장직 수행

산헤드린은 대사제를 포함해서 71명의 원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사제, 바리사이, 율법학자였습니다.  탈출기를 보면 하느님이 모세에게 장자 70명을 뽑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까지 더하면 71명입니다. 그 숫자대로 산헤드린의 정원을 71명으로 정했습니다. 기원전 4년부터 는 안나스가 대사제.........


로마총독 : 산헤드린 소집권한, 대사제 임명권 행사

산헤드린은 최고의 의결기관이었지만 로마의 꼭두각시였습니다. 왜냐면 로마에게 대사제를 임명하고 파면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로마정부의 안건대로 소집해야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대사제의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잘 보이면 유임시켜주었습니다. 대사제는 유임되기 위해서 뒷돈을 바쳐야했고, 그러기 위해 돈을 잘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상인들과 부당한 거래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 : 종교, 정치, 경제 등 모든 활동의 중심역할

           경신례 규정 - 종교 영향력,

           산헤드린 - 정치적 영향력,

           제물, 성전세 - 경제적 영향력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거소이고, 매일 제사의식 거행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제 때 성전참배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속죄의 제물 봉헌, 성전세 납부를 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종교,정치,경제, 모든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하느님께 제사지내는 경신례 규정들이 만들어지고 지켜진 곳입니다. 산헤드린이 설치된 곳이니 모든 정치적 영향력이 행사되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 가서 정결례하고 짐승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성전세를 내야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은 경제적 영향력도 쥐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다루는 최고 우두머리가 산헤드린의 대사제였습니다. 대사제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짐승을 사고파는 장터, 거대한 환전상, 강압적 권력집단

큰 축제일에 팔레스티나 사람들은 성전참배를 해야 했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성전에 봉헌해야했고, 제물을 바치고 정결례를 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제물로 바치고 여유 있는 이들은 양이나 염소를 바쳤습니다. 성전에서 파는 깨끗한 것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전마당이 가축시장처럼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또한 성전세를 내야했습니다. 그 때 당시 로마화폐와 유다화폐가 다 통용되었는데, 성전에서는 유다화폐만 받았습니다. 성전을 참배하는 해외의 디아스포라출신 유다인들은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 환전상(외환은행)이 생깁니다.  성전은 장사꾼들이 판을 치게 되었고, 뒤에서 권력자들이  이익을 취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정화하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전정화는 대사제와 고위사제들에게 사형당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요즘같으면.... 조중동에게 잘 보였으면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으셨을 텐데.... )




<회당>


회당 : 일상생활에서의 종교적 중심 역할

       마을마다 설립, 율법 연구의 중심지

       안식일에 모여 기도하며 성경봉독과 해설 들어

예루살렘에 성전에서 모든 제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예배보고 말씀의 전례를 하기 위해 마을마다 회관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종교적 색채를 가미한 마을 회관이었습니다. 회당은 유다인들의 종교적 생활의 중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회당에서 유다인들은 율법도 연구하고 성경도 공부했습니다. 시골마을이라도 회당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와서 성경말씀을 듣고 기도드렸습니다. 유다인으로서 12살만 넘으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해설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 회당 모임 주도

그 당시 일반사람들은 성경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각 지역의 회당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의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많이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의 학교, 지역행정의 본부

또 회당은 그 지역의 학교역할을 했습니다. (서당처럼 ..)

회당의 장로 : 지역사회의 행정관, 공중도덕의 파수꾼

그 마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했다거나 하면, 회당에서 처리했습니다. 회당의 장로는 행정관 역할을 하고 윤리도덕의 파수꾼 역할을 했습니다.





♠유다교의 분파♠


유다인들의 공통된 믿음 : 하느님의 보호와 구원에 대한 확신

                (율법의 권위, 성전의 제사의식, 하느님 나라의 중심은 예루살렘)

구원의 실현과 현실적용 : 각 분파들의 견해차이

유다인들이 공통되게 갖고 있던 믿음은 하느님의 보호와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유다인이라면 누구나 율법의 권위에 승복했고, 선택된 백성이고 하느님이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하느님나라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통적인 믿음이 실제적으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그 믿음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되는가에 대해서는 각 분파별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불교도 조계종, 천태종 있듯이.....) 각 분파별 차이를 잘 이해해야 예수님께서 사두가이파와 다툴 때는 어떤 문제에 부딪쳤고, 바리사이들과 다툴 때는 어떤 문제에 부딪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것을 알아봅시다.




<사두가이파>

 

사두가이 Sadducees : '차독 ' 대제사장의 후예

솔로몬 왕실에서 대사제로 ‘차독’을 임명했습니다. 그 후로 차독가문의 사람들이 대사제 대표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제가문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훌륭한 가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솔로몬 때의 ‘차독’을 조상으로 내세웠습니다. ‘차독의 후예’라고 해서 '사두가이'라고 불렸습니다.

귀족, 고위 사제들, 대지주와 대상인 등 상류지배계급

사두가이파들은 귀족, 왕족, 고위 성직자, 큰 부자들, 특별히 대지주와 대상인들이었습니다.  지배계급, 최상류층입니다. 그들은 일반 백성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현실주의, 통치권력과 타협적 자세

사두가이들은 현실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변혁을 제일 두려워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면 고위직,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체제가 유지되기 바랍니다.) 사두가이들은 통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도 통치권력과 잘 지냈고, 로마 왕조와도 잘 지냈습니다.  대지주나 대사제 중 대표적인 인물이 영화 '벤허'에 나오는 '벤허'입니다. 벤허는 사제는 아니라 일반인이지만 재벌이었습니다. 무역을 하는 상인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벤허가 유다인이지만 어릴 적  로마병사와 아주 친하게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두가이파와 로마가 얼마나 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율법 : 보수적 입장, 오경의 권위만 인정

죽은 이들의 부활, 천사와 악마의 존재, 묵시문학의 종말론 반대

엄숙한 제사의식, 제물봉헌 규정 준수에 관심

사두가이파들은 율법을 대하는데도 아주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하고 나머지 예언서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율법과 모세오경만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예언자들을 다 거부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천사와 악마의 존재, 종말론을  다 거부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강남의 대형개신교가 그와 비슷합니다.  현세에서 축복받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보수적입니다.) 사두가이중에는 사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호화롭게 제사 지내고 제물 봉헌을 잘하면  하느님께서 상으로 현세에서 축복을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사이파>

바리사이 'Pharisaei' : '분리되어 있다'는 뜻

신약에서 바리사이라는 말이 95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님과 가장 많이 부딪쳤던 사람들이 바리사이입니다.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접촉이 잦았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란 ‘분리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율법학자들, 하위사제들, 일반 신자들, 기능공, 소상인

율법학자들, 하위사제들, 일반 평신도, 그 중 기능공이나 소상인들 중 율법을 잘 지지키는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 여겼고,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과 분리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헬레니즘과 로마지배 반대, 그러나 무력항쟁은 반대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데, 헬레니즘이나 로마지배하에서는 율법을 잘 지킬 수 없으니, 로마지배에는 반대입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력항쟁은 반대했습니다.

율법 : 진보적 입장, 구전율법도 계승, 발전

율법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이었습니다.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예언서와 묵시문학도 받아들였습니다. 율법도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탈무드도 바리사이파들이 만든 작품입니다.

육신의 부활, 사후의 상벌, 천사의 존재, 메시아 도래 받아들여

안식일, 음식, 정결례 등 율법규정을 철저히 준수,

형식주의로 위선적 행동

사두가이파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무엇이냐 물어보고 영생에 대해서 논의하려 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성전례 중심으로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생활 안에서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한 금지사항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바리사이파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려고 안식일에는 걸음걸이도 몇 보 이상 걸으면 안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나무토막을 주워서 담장위에 올려놓으면 땔감 마련하는 일을 한 셈이니 안되고,,.. 부뚜막에 오이 들어다 옮겨놓으면 오이짱아찌 담그는 행위가 되니까 안된다는 식으로..... 세세한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못 지키면 하느님께 죄짓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그런 규정들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조문을 613개나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니 자기들도 일일이 지킬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키는 척, 경건한  척, 위선을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나무라셨습니다.



<율법학자들>


율법 전문가 : 법률가, 성경주석가, 교사

율법학자는 '파'는 아닙니다. 바리사이가 대부분 율법학자들이고 율법학자들이 대부분 바리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사두가이 중에서도 율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전문가, 오늘날로 치면 성경박사들입니다. 당시 율법이 법과 사상체계를 지배했기 때문에,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겨졌습니다. 최고의 지식인은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법률가, 성경주석가, 교사 등을 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율법을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적용

산헤드린에도 율법학자들이 있어서 법률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성경주석으로 영적지도, 학교에서 제자 육성

회당에서 성경을 해석해주고 학교에서 제자를 육성했습니다.

지나친 자구적 해석으로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학자들은 지나친 자구적 해석으로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야단 많이 맞았습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그들과의 논쟁에서‘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의 정신적 스승이 바로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랍비'(스승님')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도 랍비라고 불리웠지만 예수님은 랍비학교를 나오지는 않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랍비학교가 있었습니다. 40살이 넘어야 '율법박사'로 불리우고, 40세 이하는 '율법학자'라고 불렸습니다.



<에쎄네파>


에쎄네 Essene : 지도자, '의로운 스승'

              '차독'계열의 대제사장 출신

대사제직 차지한 하스모네아 왕가와 투쟁

‘에쎄네’란 ‘지도자’, ‘의로운 스승’이란 듯입니다. 에쎄네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대제사장 차독의 후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스모네아 왕가의 시몬이 통치권뿐 아니라 대제사장직까지 차지했습니다. 사제가문의 입장에서는 하스모네아 왕가가 힘있다고 대사제직을 빼앗아간 셈입니다. 에세네파들은 권력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꿈란에서 은둔생활, '꿈란의 수도자'

에쎄네파는 하스모네아 왕가가 장악하는 예루살렘을 악마의 도시라고 하며, 사해 근처의 꿈란으로 가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꿈란에서 수도자처럼 지냈습니다. 꿈란 공동체에는 입회조건이 있었고, 수련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생활을 하고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메시아 : '의로운 스승' 영원한 나라를 위한 거룩한 전쟁 일으킬 것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데,  메시아를 의로운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유다인들은 다윗가문에서 나온다고 했던 반면, 에쎄네파들은 새로운 모세가 와서 메시아가 되실 것이라 했습니다.

'어둠의 자녀들'과 분리된 '빛의 자녀들'로 자처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가 싸워서 빛의 자녀들이 승리한다는 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어둠의 자녀들과 분리된 빛의 자녀들이라 자처하고 배타적으로 살았습니다.

엄격한 율법준수, 독신, 공동생활, 자급자족

엄격한 율법을 준수하고, 독신, 공동생활을 했고, 상거래를 전혀 하지 않고 자급자족생활을 했습니다. 에쎄네파들이 많은 저술도 했고 성경필사도 했습니다. 1940년대에 '꿈란'에서 성경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에쎄네파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열혈당원>


젤로테스 Zealots : '열심인 사람들' 로마에 대한 무력항쟁

열혈당원은 ‘젤로테스’입니다. ‘젤로테스’란 ‘열심인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열심당’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로마에 항쟁하는 일종의 게릴라입니다.

세금에 짓눌린 소농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

  ~~~~~~~~~~~~로마의 세금에 짓눌린 소농들, 먹고 살 게 없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죄대상 : 로마와 그 동조세력들 (헤로데 왕가, 대사제, 대지주, 대상인 등)

열혈당원들은 '복수의 날'에 '하느님의 복수 도구'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유다백성을 괴롭힐 적들을 내치고 유다인들을 높이 들어올려진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날을 ‘복수의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와 그 동조세력들을 제거의 대상으로 봤습니다. 이들은 대규모 군사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소규모 그룹들로 있으면서 폭동이나 기습작전으로 로마를 괴롭혔습니다.

당국자들은 열혈당원들을 폭도로 규정하여 탄압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시몬' 이 열혈당원 출신입니다. 예수를 팔아먹은 가리옷 사람 '유다'도 아마 열혈당원 출신이라 여겨집니다. ‘가리옷’이란 단어에는 ‘단검’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재판받으실 때, 군중들이 예수님 대신 ‘바랍바’를 풀어주라고 외쳤는데, 바랍바도 열혈당원출신이라 추정됩니다.



<헤로데 당원>


헤로데 궁전의 관리인들 : 로마의 하수인역할,

                        과중한 세금 부과로 부와 권력을 누린 세력

헤로데 ‘당’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헤로데당은 헤로데 궁전의 관리들로서 로마의 하수인 역할을 했습니다. 왕가의 유지를 위해서 로마에 뇌물을 바치려고 세금을 엄청 걷고, 뒷주머니를 찼습니다.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로마총독 : 유다와 사마리아 통치,  헤로데 : 갈릴래아와 베레아 통치

 로마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분할통치 했는데, 로마총독에게는 사마리아와 유다를 직접 통치하게 했고, 헤로데에게는 갈릴래아와 베레아지방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정치적 소요와 무장봉기에 강력대처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갈릴래아지방은  헤로데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헤로데에게 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헤로데는 갈릴래아지방의 소요와 무장봉기에 굉장히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태어나신 후 유다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헤로데는 아기들을 다 죽였습니다.



<하층민들>


율법규정을 지킬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암 하렛즈' - '땅의 백성들'

율법규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암 하렛즈’라고 불렀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은 하늘의 백성들이라 생각했고, 그들은 ‘땅의 백성들’, 구원을 못 받을 저주받은 백성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가난한 유다인, 천한 직업인, 사생아, 빚진 유다인 노예, 이방인 해방노예 등,

‘암 하렛즈’는 유다인 순수혈통이지만 가난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일과 같은 천한 직업인, 사생아, 빚진 유다인 노예, 이방인 해방노예 등이 ‘암 하렛즈’입니다.

인간으로 대우받기 원했던 '땅의 백성들'

하층민들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인간대우를 받고자 열망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과 긴장 관계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암 하렛즈’와 닿으면 자기도 더러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사이와 하층민들은 긴장관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설교하실 때 제일 환호성 지른 사람들이 바로 암 하렛즈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Diaspora : 이산(離散), 산재(散在)

타국에서 살고 있는 유다인들 : 강제추방, 포로, 살 길을 찾아 떠난 사람들

디아스포라라는 뜻은 이산, 산재라는 뜻입니다. 타국에 살고 있는 유다인공동체를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추방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거나 이민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나가살게 된 유다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빨간 점으로 표시된 곳이 그 시대 디아스포라들입니다. 타국에 사는 유다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회당을 짓고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주체성을 지켰습니다.

팔레스티나 50~70만, 디아스포라 200~500만

팔레스티나에 남은 사람은 50만에서 70만이었고,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다인들은 200만에서 많게는 500만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에 훨씬 더 많은 유다인들이 살았습니다. (지금도 유다인들의 가장 큰 재산은 해외에 나가 있는 유다인들입니다. 미국에서도 유다인들이 가장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

민족과 종교의 고유성 고수로 현지인들과 마찰,

유다인들은 민족과 종교의 고유성을 고수하여 현지인들과 마찰이 잦았습니다. (그런 반감이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독일 국민들이 반대를 별로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교활동의 거점 구실

사도 바오로 전교활동의 거점 구실을 한 것도 디아스포라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터어키지방의 디아스포라 출신입니다.



<사마리아인>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 멸망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순수유다인들이 아니라 혼혈족입니다. 이방인들의 종교와 유다종교가 섞인 혼합종교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오경만 인정, 가리짐산에 성전건립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 북이스라엘이 열 지파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정통성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긴장관계에 있었습니다.

타엡 : '되돌아오시는 분'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새로운 모세

예루살렘 귀환 이후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의 긴장상태 더욱 심각

기득권 지키기 위해

유다인 : 사마리아인 비하, 배척

사마리아인 : 성전, 성벽 재건 방해

그래서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골 깊은 대립관계,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 노예보다 멸시

예수님이 사마리아인과 대화하니 유다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순례>


구약성경 :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체험을 기억, 해설

인간은 순례자,......... 긴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한 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 : 하느님의 선택, 인류 구원계획 수행 소명

이스라엘 역사를 선민의식을 빼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

과거기억을 통해 미래조명, 현재의 삶

새로운 계약, 새로운 창조, 하느님 나라

미래를 믿고 오늘의 삶을 견디며 삼

구약성경 : 미완성 교향곡, 막이 내리지 않는 드라마

구약성경은 미완성 교향곡 또는 막을 내리지 않은 드라마로서 끝맺습니다. 바리사이파의 유다이즘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순례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탈무드로, 그리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지속된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순례는 율법과 예언을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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