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소화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다녀가셨나요?

김레지나 2008. 8. 31. 12:01

 

  3년 전에 영세 받고, 교리교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안나가 전화를 했습니다.

 “언니, 소화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다녀가셨어요? 이번에 영세 받은 친구 본명이 데레사인데, 자기가 태어난 해에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다녀가셔서 세례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던데요.” 

  “무슨 소리야? 소화 데레사 성녀는 열 다섯 살에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셔서 스물 세살에 돌아가셨어. 로마로 여행하실 때 말고는 고향을 떠나신 적이 없는데. 1800년대 말에 사시던 분이야. 그 친구가 몇 살인데? 하하하. 말도 안 돼.”

  “그래요? 언니, 또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소화 데레사 성녀가 어떻게 성녀가 되셨어요? 영화를 보았는데, 성녀가 어떤 큰 일을 하시나 하고 영화가 끝나기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그냥 수녀원에서 사시다가 병 걸려서 돌아가시던데요. 그 분이 무슨 일을 하셔서 성인이 되신 거래요?”

  영화만 보면 성녀의 위대함을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셨어. 당신의 모든 기도, 행동, 고통을 하느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봉헌하셨거든. 그게 위대한 거야. 사소한 일이라도 큰 사랑으로 행할 때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겠지.……소화 데레사 성녀는 가장 사랑받는 성인들 중에 한 분이셔. 자서전을 한 번 읽어 봐. 그 분에 관한 책이 많아.”

  책을 권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성녀의 자서전을 읽은 후에라도 그 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녀께서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는 하느님만이 온전히 헤아리실 수 있겠지요. 소화 데레사 성녀는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소화데레사 성녀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과 다른 영혼들의 보속을 위해 기도하시고 고통을 봉헌하셨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데레사 성녀를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영혼들을 위한 그 사랑의 공이 오늘 우리에게도 빛이 되고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데레사 성녀는 분명 마음으로 한국에 다녀가신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신앙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이 우리 순교성인들의 공로 덕택임은 물론이고, 선교사제들을 위해서 평생 기도하셨던 데레사 성녀의 덕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소화 데레사 성녀의 9년 반 동안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데레사 성녀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육체적, 영적인 고통들을 극심하게 겪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일부러 그런 고통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니, 그 고통이 설령 드러났다 하더라도 하느님 외에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고통을 겪으셨을 겁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그런 큰 고통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일들도 하느님께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형수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도 하루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참으셨답니다. 또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지 않고 참는 것, 빨래할 때 다른 수녀님이 물을 튀겨도 싫은 내색하지 않는 것 등등의 작은 희생들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봉헌하셨답니다.

  성녀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성녀께서 스스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받으셨다고 기뻐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순교란 박해자들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하느님께서 성녀에게 순교자들에게 허락하시는 것과 맞먹는 은총을 베푸셨다는 뜻인 것도 같습니다. 순교는 꼭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목숨을 잃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일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상 모두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기쁘게 봉헌하는 것을 목숨을 바치는 순교에 못지않게 기쁘게 받아들이실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서전을 읽고 묵상하면서 데레사 성녀의 그 작은 봉헌들을 대단하게 여기셔서 성녀가 될 수 있게까지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제 능력에 부치는 큰 희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느님께 무엇이든 드리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받으실 겁니다. 하느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고맙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영어교사들 워크샵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결혼기념일에 문방구에서 반지를 사다주었어요. 200원짜리였지만 그 선물이 가장 좋았어요. 제가 아들한테 처음으로 받은 뜻밖의 선물이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우연히 결혼기념일 이야기를 듣고 커플링으로 끼고 다니라고 남편반지와 제 반지를 고민 고민하며 골랐답니다. 아들이 반지가 마음에 드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저는 아주 행복했습니다. 200원짜리 반지를 한동안 끼고 다니면서 학생들한테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지값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했던 아들 마음이 저를 아주 행복하게 했습니다.

   문득 '데레사 성녀의 하찮아 보이는 작은 봉헌들도 ‘200원짜리 반지’처럼 하느님께는 더 없이 기쁜 선물이 되었겠다. 하느님은 정말로 부모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 소화 데레사 성녀는 그런 하느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셔서 모든 것을 어린이처럼 의탁하시고,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커다란 고통까지 모두 사랑으로 봉헌하셨구나. 그래서 그토록 큰 성녀가 되신 거구나, 성녀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크기를 우리보다 더 많이 헤아릴 줄 아셨고, 그래서 위대하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분심이 들어서 묵상이 전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성모님, 엉터리로 기도해서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기도하려고 애쓰는 제 마음은 기쁘게 받아주시겠지요. 정말 고마워요. 200원짜리 반지처럼 제 마음도 그렇게 받아주세요. 데레사 성녀처럼 일상에서 제가 겪는 사소한 불편들을 일일이 기억하며 봉헌하도록 노력할께요. 제가 기억하는 모든 사제들이 거룩한 사명을 다하시고 완덕을 이루실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주세요. 부족한 기도지만 언제나 마다하지 않으시니 고마워요.”      

 

                                                 2006년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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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선생님,

여기까지는 제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썼던 글이예요.

"성녀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성녀께서 스스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받으셨다고 기뻐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순교란 박해자들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하느님께서 성녀에게 순교자들에게 허락하시는 것과 맞먹는 은총을 베푸셨다는 뜻인 것도 같습니다. 순교는 꼭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목숨을 잃는 것처럼 어마 어마한 일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상 모두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기쁘게 봉헌하는 것을 목숨을 바치는 순교에 못지않게 기쁘게 받아들이실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요.

일주일 전에.. 제가 가졌던 궁금증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부분을 찾았어요.

마리아 발또르따 의 사적계시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임종을 보여주시면서

예수님께서 마리아 발또르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무지 반가웠어요.

고통 중에서도 기쁘게 지내는 것, 그것이 "하얀 순교"라지요?

                            

예수님:

 

 

‘마리아, 너의 주인은 너를 사랑한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또 다른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하지 말아라. 너의 죽음은 나를 위해 피를 쏟은 사람의 것과 같다. 순교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통회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너는 알고 있다. 순교, 통회, 사랑은 결국,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하여 같은 희생을 완성시킨다. 그러면 통회자이며 사랑하는 자인 너에게는 원형 경기장에서의 순교자와 같은 순교가 있는 것이다. 마리아야, 나는 너를 영광으로 인도하겠다. 내 손에 입 맞추고 평화 속에 누워 쉬어라. 이제는 네가 쉴 시간이다. 내게 너의 가시를 다오. 이제는 장미꽃의 시간이다. 쉬면서 기다려라. 축복받은 마리아, 너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