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양승국 신부님

동반자이신 하느님

김레지나 2017. 4. 19. 21:30

동반자이신 하느님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청소년들의 신앙 여정을 잘 동반(同伴)하는 것! 
 
가난하고 상처 입은 청소년들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직면하게 될 여러 가지 도전들을 잘 극복하고,
일상의 삶을 충실하고 기쁘게 살아, 무사히 하느님 나라에 도착하도록,
옆에서 지속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저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동행(同行), 동반(同伴)!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들입니다.
‘엠마오 사건’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 인간을 동반하시는지를
너무나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사건입니다.
 
스승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실의와 절망 속에 길을 걸어가고 있는 두 제자들 사이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스승님을 몰라봤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일이 아닐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한 곳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디든지 현존하고 계십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매일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 속에서,
내가 가정이나 일터에서 만나는 인간관계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와 매일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엠마오로 걸어가던 제자들처럼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언제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뵈었을까요? 날이 저물어
한 집에 들어가신 그분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주셨을 때!
그제야 제자들은 눈이 열렸습니다. 그때 비로소 스승님임을 알아 뵈었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차린 제자들이 감동하고 기뻐하는 그 순간,
스승님께서는 또 다시 홀연히 당신의 모습을 감추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새로운 현존 방식이 명확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주님께서는 언제나 자신들의 신앙여정 안에
지속적으로 충실히 동반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종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에 현존하십니다.
때로 나타나시지만 즉시 사라지십니다. 여기도 계시지만 지구 반대편에도 계십니다.
저 멀리 위에도 계시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도 자리하십니다.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함께 길을 걸으시고, 대화를 통해 이것 저것 자상히 가르쳐 주시고,
빵을 떼어주시고, 그러나 또 다시 사라지시고...
참으로 묘하신 하느님, 신비의 절정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 한 가지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우리 앞에 확연히 나타나십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 우리가 거행하고 참여하는
성체 성사 안에서 꾸준히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가 좀 더 잘 준비되어야겠습니다.
좀 더 경건하고 깨어있는 태도로 임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체성사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다가오시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 눈이 열려 주님을 뵈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께서 매일 내게 다가오신다신 것,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내 인생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신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정한 친구의 모습으로 매 순간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신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