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

김레지나 2015. 9. 11. 20:33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이 구원을 주제로 남긴 이 강론을 오늘 우리가 그대로 접하게 된 것은 알프레드 몽낭 신부 덕분이다. 그는 요한 비안네 성인의 생전 사목활동을 지켜보았고 성인의 사후에는 직접적인 증인이 되었다. 그는 성인의 강론과 성인이 작성한 교리 수업 교재를 물론이요 사람들의 증언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 모든 사제들의 수호자’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었다.

 

 

왜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삶의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묻습니다.

“주님, 제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아무런 믿음도 없이 묻습니다.

“왜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려고 하십니까?”

“왜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야 하고 그분을 사랑해야 하고 그분께 봉사해야 합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그분께 봉사하는 일은 위대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 아닌 다른 모든 일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하느님의 손에 두고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오늘 주님을 위해서 일하겠나이다. 주님께서 저에게 보내신 모든 것을 희생으로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주님 없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 저를 도와주소서!”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금욕과 기도와 훌륭한 일과 자신의 비참함과 죄를 인식하고 울며 통회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적인 만족을 구하고 불필요한 말을 지껄이고 기분 전환을 구하느라 낭비했던 시간에 대해 아파해야 할 것입니다. 즉 영원을 위해서 그리고 하늘 나라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분명해질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 사분의 삼이 오로지 지상에서 썩어 없어질 육신의 욕구만을 채우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복락을 누리거나 영원히 멸망하게 될 영혼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식력은 소름 끼칠 정도로 부족합니다. 그들은 오로지 매일의 삶에 필요한 물건들을 걱정하며 그것들만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소음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자기 외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태양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세상을 밝게 할 것이니 옆으로 비켜라.”

하지만 이런 교만한 사람에게는 바다로 흘러가는 작은 먼지 하나만큼의 시간도 남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우리 인간은 바람이 불면 한순간에 흩어지고 뒤집어지는 작은 모래 알갱이와 같다는 점을 나는 자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가족 중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있기에 내가 말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것을 매우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고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피하고 악한 것 대신에 선한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애쓰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염려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행복하며 항상 만족합니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의 삶에서 저 세상의 행복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반면에 저주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악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한탄하고 슬퍼하면서 자신이 불행에 처해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영원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차이를 아십시오!

 

사람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이 될 만한 것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비방, 불경, 불평, 증오의 말, 신성 모독, 뻔뻔스러움, 축제, 춤을 희생으로 바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들은 오로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춤을, “그 자체로는 아주 고상하지만 먹을 수 없는 버섯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들도 댄스 파티에 가려는 자기 딸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옷매무새를 참견할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은 어쩌지 못합니다. 자기 집에서 댄스 파티를 여는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들은 그 파티 동안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쁜 생각들, 불경, 질투, 증오 그리고 복수 등등, 만약 자기가 하려는 일의 책임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파티를 자기 입에서 열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의도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드는 것도 댄스 파티를 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하느님 앞에 그 작품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그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모든 악한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입니까!

 

자녀들이여, 그러니 오로지 우리는 구원되어야 할 영혼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세상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부유함과 만족과 명예는 사라지고 말 것이며 천국과 지옥만이 영원합니다. 이것을 명심합시다!

 

모든 성인들이 처음부터 훌륭하게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훌륭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훌륭하게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훌륭하게 끝마치도록 그리고 하늘에 계신 성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마리아 163호  2010년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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