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영신 수련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1) ‘영’은 ‘육’을 통해서발행일 : 2015-05-24 [제2945호, 17면]

김레지나 2015. 5. 24. 19:50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1) ‘영’은 ‘육’을 통해서

발행일 : 2015-05-24 [제2945호, 17면]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1) ‘영’은 ‘육’을 통해서

발행일 : 2015-05-24 [제2945호, 17면]

영신수련 셋째주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노파심에서 한 가지는 짚어 두고 가야 할 것같습니다. 왜냐 하면 영적 차원과 육적 차원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남겨선 안될 것같기 때문입니다. 앞서 영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육적 차원을 넘어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차원이란 마치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기적들로 차 있고 탈혼 상태와 같은 신비 체험의 차원으로 알아듣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어납니다. 이 점에 대해 오해 없이 올바른 균형 감각을 키우지 않으면 우리의 영성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갈 것입니다.

영적 차원 내지 영의 사람이라고 하면 한 마디로 사랑의 차원 내지 사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의 사랑을 뛰어넘는, 참된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기적이고 신비의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신비의 사랑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통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 대해 예수님은 당신의 계명을 지켜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 사랑 안에 머물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머물면서 한몸을 이루고 하나의 영을 이루고 있는 이 상태야말로 진정으로 참되고 온전한 영적 차원이고, 그런 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영의 사람 내지 성령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적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 안에 머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마치 태양으로부터 따뜻한 햇살이 내려와 우리를 비추듯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기운이 우리에게 내려와 우리 영혼을 비추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이끌고 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 내지 지혜가 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지 않으면 하느님 이름으로 사랑을 거역하는 행위를 멋대로 해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진리를 깊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기도뿐만 아니라 미사 참여와 영적 독서도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면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토대를 닦았다 하더라도 이웃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그 영의 사람 내지 영적 차원은 공허해지고 맙니다. 때문에 영적 차원은 육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사람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최후 심판의 항목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이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을 때 찾아 주는 것입니다. 이 내용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적입니다. 이 육적인 사랑을 제대로 펼쳐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영의 사람 내지 성령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육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사랑은 육적인 것 그 자체를 위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줌으로써 허기를 면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랑에 눈뜨게 만들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눈뜨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 내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지식을 그르침으로써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함께 자란 거기에 영의 사람이 있습니다.



-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여기서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적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 안에 머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마치 태양으로부터 따뜻한 햇살이 내려와 우리를 비추듯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기운이 우리에게 내려와 우리 영혼을 비추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이끌고 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 내지 지혜가 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지 않으면 하느님 이름으로 사랑을 거역하는 행위를 멋대로 해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진리를 깊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기도뿐만 아니라 미사 참여와 영적 독서도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면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토대를 닦았다 하더라도 이웃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그 영의 사람 내지 영적 차원은 공허해지고 맙니다. 때문에 영적 차원은 육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사람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최후 심판의 항목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이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을 때 찾아 주는 것입니다. 이 내용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적입니다. 이 육적인 사랑을 제대로 펼쳐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영의 사람 내지 성령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육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사랑은 육적인 것 그 자체를 위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줌으로써 허기를 면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랑에 눈뜨게 만들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눈뜨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 내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지식을 그르침으로써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함께 자란 거기에 영의 사람이 있습니다.



-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