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지 않고 믿는 행복 ^^* *♥* -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여전히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계시죠?
날씨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부활의 분위기를 한껏 불려주고 있습니다. ^^*
그런데 형제 자매님은 지금 행복합니까?
왜 행복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형제 자매님,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요한복음에는 후대에 편집자가 기록한 21장이 있지만,
원래 요한복음은 20장으로 끝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마지막 말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도 이 마지막 말씀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토마스가 누구인가 잠시 생각을 해봅시다.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토마스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도들이나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통해서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되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그 후 다행스럽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한 사도가 되도록
예수님께서 특별히 불러주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막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자
너무나 강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못 자국을 직접 보지 않고,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도 고백하지 못했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예수님께
“저의 하느님!”이라고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을 듣고 칭찬하셨던 예수님이시기에
더 큰 칭찬을 기대할 수도 있겠는데,
토마스에겐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라고
칭찬이 아니라 반 꾸지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 자신의 부활을 희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축복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 곁에서 생활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사도들과 꼭 같은 체험을 할 수가 있고
토마스와 같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주고자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예수님을 직접 뵈었던 사람들보다
형제 자매님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형제 자매님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믿음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수가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다시 잠깐 오늘의 복음에 주의를 기울여 봅시다.
처음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왜 다시 모였겠습니까?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즉 다시 모인 사람들은 한 주간이 지나고 다시 주일이 되어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토마스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사도들의 후계자 곧 교회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받은 사람,
믿기는 하지만 완전히 믿지를 못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토마스요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사가는 그런 사람이 교회의 전례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전례 특히 미사성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곧 그분의 파스카 제사를
성사적으로 보여주고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2천 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축복은 결코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아버지께로 떠나시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자리에서 우리들도 기억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쇄신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해 의지할 대상을 찾거나
외적 표적을 구하지 말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마음으로 미사성제를 드리고
성체로 우리를 찾아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잘 모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지능으로 알아들을 수 없고 과학의 힘이 닿지 못하는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이라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전례 안에서 우리를 찾아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그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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