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영신 수련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1) 먼 길 떠나며마음 움직이는 영신수련 안내되기를

김레지나 2015. 1. 26. 18:04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1) 먼 길 떠나며

마음 움직이는 영신수련 안내되기를
우리의 ‘본연’ 되찾는 기회 됐으면
발행일 : 2015-01-01 [제2925호, 17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지금, 여장을 꾸려 다소 먼 길을 나서려고 합니다. 밖은 어둡고 날씨는 차고 바람은 맵습니다. 다들 잠에 떨어져 있는데 왜 잠 못들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야만 할 길이 멀어 잠을 이룰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들어 어두운 하늘의 별들을 봅니다. 눈길 속에도 마음 안에도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입니다.

그저 이냐시오 성인이 쓴 ‘영신수련’이란 지도 한 장 달랑 손에 쥐어져 있을 뿐,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어떤 길인지도 잘 모릅니다. ‘영신수련’에는 길이 많기 때문에, 그동안 몇 번은 가 봐서 익숙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 봤으면 합니다. 물론 끝엔 모두 한곳으로 모여들겠지만 말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도 먹어 기력도 쇠해 예전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좀 쉽고 편한 길을 가고 싶습니다. 하여 저처럼 힘없고 약한 이들도 그저 조금 마음 움직이면 나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말입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길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아쉽고 서럽고 아프고 눈물이 흐르는 마음이 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보려고, 새 길을 걸어가 보려고, 뭔가를 찾아보려고, 목말라 하며 애타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힘 있고 돈 있으면, 등 따스고 배부르면, 이런 마음 일어나기가 힘들 것입니다. 굶주려 배고프고, 다쳐서 아프고, 힘없어 슬프고, 짓눌려 괴로울 때 오히려 이런 마음이 일어나기 쉬울 것입니다. 많은 이들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일어나고 꿈틀거렸으면 좋겠습니다. 두 눈 멀쩡히 떠 잘 보고 있다고, 머리도 좋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사지는 멀쩡해 뭐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에 의심조차 않고 있는 그 마음이 오히려 불행하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보다, 기도에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훌륭하고 필요하고 중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지금 마음 이야기를 꺼내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같은 맥락입니다. ‘영신수련’에 대해 무슨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늘어놓는 것보다 그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더 어려워집니다. 차라리 이론적 설명을 하고 지식을 넣어 주겠다고만 생각하면 그럭저럭 얼기설기 끼워 맞춰 땜질이라도 하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면, 글에 혼이 들어가고 생명이 들어가고 사람을 뒤흔들 깨달음이 있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저로 하여금 망설이게 하고 주춤거리게 만드는 곳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바람만 많을 뿐 허공을 겉도는 손짓 발짓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께 맡겨 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다만 우리들 마음속에 한 가지 품었으면 하는 염원은 우리 자신들의 본래 모습, 본래 면목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하여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생명과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자신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자신이 실은 착각이고 오류였음을 봤으면 합니다.

길다면 긴 이 여정을 우리 함께 걸어갔으면 합니다.



유시찬 신부는 1997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