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외친 말은 ‘안전 불감증’ 입니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300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을 바다 속에서 잃고 그 구조와 실종자 수색에서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로써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재난구조의 허술함이 총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인재(人災)에 의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지난 5월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지하철 추돌 사고가 일어나 249명이 다치는 일이 터졌습니다. 또 5월 26일에는 경기 고양터미널에 화재가 나 8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며칠 전 터미널 시설 전반에 대한 안전점검을 한 것이 밝혀져 충격이 더 컸습니다. 5월 28일에는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으로 혼자 거동이 불편해 불이 난 것을 알고도 대피하지 못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들 대부분은 총체적 인재로 인한 사고로 ‘안전 불감증’이 부른 대형 참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에는 생명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의식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여기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방송이나 신문 등 각종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진단이나 평가에 너무 쉽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용어 안에 사태의 진실이 전부 녹아있는 양 일반화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문제나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단이 없으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은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일선 전문가들이나 사회학자들 가운데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안전 불감증으로만 돌리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각종 사고의 근본 원인을 안전 불감증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자칫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국민이나 개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켜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에서 드러나 듯 국가 주도의 압축적 고도성장을 통해 발전해온 나라입니다. 국가가 사회의 많은 영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기획과 실천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였기에 경제·문화를 비롯한 사회의 많은 부분이 급성장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간은 경제성장의 한 요소, 곧 필요불가결한 부속품으로 전락해 경제논리에 매몰되어 양적 성장만을 숭상하는 사회로 정착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경제논리 속에서 안전은 늘 뒷전에 머물기 십상이었고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은 그것을 묵인해왔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와 도덕성을 외쳐야 합니다.
사회 복음화에 무한 책임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누가 말하기 전에 자신이 딛고선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늘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호 사태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입니다.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7) 안전 불감증과 인간의 존엄성
경제 성장 부속품으로 전락한 우리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사고들
개개인 ‘안전 불감증’으로만 해석 말아야
국가 주도 발전에 성장 우선 사회도 문제
개개인 ‘안전 불감증’으로만 해석 말아야
국가 주도 발전에 성장 우선 사회도 문제
발행일 : 2014-06-22 [제2900호, 7면]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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