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묵상일기-2014년

집중력

김레지나 2014. 6. 6. 09:31

2014년 6월 6일

 

엊그제 참석한 저녁 식사 모임은 세 시간 넘게 계속 되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허리와 머리가 많이 아파서 새벽까지 잠을 못 들고 끙끙 앓았는데,

이런저런 생각들 중에 제일 속상했던 것은 이야기를 듣는 중간중간에 필름이 자주 끊겼던 점이어요.

일년 간의 항암 치료 중반쯤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심해진 증상인데,

대화 중에 집중이 안 되고 잠깐 잠깐 아무런 기억이 없는 시간들이 자주 있어요.

예를 들어... 그제 모임에서 누군가 "내일 세 시에 만나자구"라고 하셨는데,

 "왜 세 시에 만나지? 어디 가자는 거지?"라고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는 거지요.

기억 못하고 있다가 계속 이어지는 대화를 듣고서야 거꾸로 되새겨서 맥락이해를 하게 되는 거예요.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듣고 있어도 계속해서 집중할 수가 없고 중간중간 하얗게 사라진 대화들이 있으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옆 사람한테 무슨 소리냐고 자꾸 물어 보기도 하고.... 에효~!

며칠 전에는 성당 행사 끝나고 분과원들 줄줄이 서서 어떤 분들께 인사한 적이 있는데,

또 중간에 기억이 하얗게 되어서 "레지나 꽃 받아"라고 옆에 있는 언니가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  받기는 받았는데,

그 꽃을 왜 내가 받게 되었는지 상황을 모르는 거지요.

대화의 큰 흐름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기도 하고..... 사오정식으로 횡설수설...

 

일 년 넘게 책 한 권도 못 읽어보았고, 집중해서 글 쓰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요.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뇌기능이 잠깐씩 멈추는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거의 매일 떨어뜨리는 바람에

집에 있는 집에 있는 그릇들은 거의 다 짝을 잃었어요.

일 년 넘게 기도문 한 번 외우는 것도 제대로 안 되어서 아예 염경기도할 생각도 안 하고 지냈었지요. 

요즘도 미사 시간에 집중하는 게 엄청 어려워요. 미사 경문도 제대로 못 외우고...

작년까지는 짧은 대화 중에도 이 말 저 말을 하다가 말고, 단어 생각이 안 나거나 문장을 완성하기 힘들어서 횡설수설하기 일쑤였어요. 

요즘은 문장 완성은 그럭저럭 되지만 머리가 잘 안 돌아가니 엉뚱한 소리를 잘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한창 힘들 떄보다는 수천 배 나아진 거라 생각하니,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 싶어요.

'앞으로 조금씩 좋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