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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명을 살린 '생명의 다리'

김레지나 2014. 5. 3. 11:55

50여명을 살린 '생명의 다리'

한겨레 | 입력 2014.05.03 10:10

[한겨레][토요판] 고 박지영씨와 의인들

김홍경씨처럼 세월호에서 승객 구조활동을 편 이들은 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 이들의 선행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퍼즐조각 맞추듯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승무원 고 박지영(22·여)씨는 사고 직후 구조된 학생들이 그의 의로운 활동을 증언해 세상에 소개됐다.

구조된 한 학생은 "승무원 언니에게 '언니도 어서 나가야죠'라고 하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다른 학생 김아무개군은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는데 김군이 그 이유를 묻자 박씨는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사 <시엔엔>(CNN)과 인터뷰를 한 승객들도 박씨의 행동을 기억했다. 세월호는 크게 기울면서 벽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벽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문이 열린 출입문'은 승객들이 다른 안전한 출구로 건너가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승객 이아무개씨는 "박지영씨가 출입문을 열쇠로 잠가 탄탄한 바닥이 되게 만들었고 승객들이 무사히 다른 출구로 건너가도록 도왔다"고 증언했다.


배 기울며 벽이 바닥이 되자
박지영씨는 열린 출입문 잠가
탄탄한 바닥이 되게 만든 뒤
승객들 무사히 건너가게 해

박씨 가족에게 연락 취했으나
"희생자 구조 안 끝난 상황에서
우리 아이 부각되는 건 부적절"
누리꾼들 의사자 지정 청원운동


시엔엔은 박씨가 걸어잠근 문을 '생명의 다리'로 묘사하고 승객 50여명이 다리를 건너 안전한 곳으로 갔다고 보도했다. 50여명은 세월호 생존자 174명의 3분의 1 규모다. 지난달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박지영씨를 '영웅'이라고 지칭했다.

박씨는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한 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세월호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박씨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세월호 희생자 구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지영 이야기가 부각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박씨의 지인들은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박씨를 기억했다. 누리꾼은 박씨를 의사자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지영씨처럼 목숨을 잃은 의인들은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 가운데에도 있다. 단원고 2학년 정차웅(17)군은 사고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한 뒤 다른 친구들을 구하러 가겠다며 물이 들어차는 선내로 몸을 던졌다가 변을 당했다. 같은 학년 양온유양은 침몰 당시 갑판 위까지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남은 친구들을 구하러 다시 선실로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최덕하(17)군은 가장 먼저 119에 세월호 침몰을 신고한 학생이다. 그러나 그는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선내에서 발견됐다.

단원고 남윤철·최혜정 교사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남 교사는 교사 생활 7년차, 최 교사는 올해 첫 교편을 잡은 새내기 교사였다. 이들은 학생들을 비상구로 인도한 뒤 나머지 제자들을 탈출시키려고 끝까지 배 안에 있다가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부부도 구조활동을 벌이다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세월호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김기웅씨와 승무원 현선씨는 연인이었다. 동료들과 승객을 대피시킨 뒤 다시 선내로 들어가서 구조활동을 벌이다 나란히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의 선원인 양대홍(45) 사무장은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된다. 은행 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큰아들(고3) 학비 내라'고 말한 뒤 아직까지 실종 상태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지난달 23일 세월호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양대홍 사무장에게 합수부 차원에서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 희생자가 의사자로 지정되면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사자의 유가족은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보호, 취업보호, 장제보호, 국립묘지 안장 의뢰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의사상자 지원제도는 직무와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 숨지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이나 그 유족을 지원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의사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국민 성금이 의사자 가족에게 전달되더라도 보상금액이 줄지는 않는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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