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신앙 자료

★☆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 大 데레사) -상-

김레지나 2014. 4. 2. 19:21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 왜 다시 성녀 데레사인가?

대 데레사, 하느님 체험하고 천상 길 뚫은 증거자

▲ 잔 로렌조 베르니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동 받은 성녀 데레사(성녀 데레사의 탈혼)', 1647~1652년,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

 앞으로 1년 후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년)가 태어난 지 꼭 500주년이 됩니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가 창립하신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성녀의 고향인 스페인 교회는 4년 전부터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성녀 데레사의 영성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으며 50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집중적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성녀는 가톨릭교회 영성사에서 영성의 대가 중에 한 분으로 손꼽힙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27항, 1821항, 2704항, 2709항)에서 영성생활을 다룬 부분을 비롯해 교회 내에서 사용되는 영성과 관련된 여러 교과서들을 살펴보면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이 어김없이 약방의 감초처럼 소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신비가의 시대

 우리와는 500년 가까운 세월을 거리에 두고 있는 성녀, 그것도 한국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스페인 문화권에 속하는 여인. 도대체 성녀 데레사는 어떤 분이기에 사람들은 새삼 그분에 대해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얘기하며 주목하는 걸까요? 일찍이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가운데 한 분이셨던 칼 라너 같은 경우, 21세기는 신비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류 문화 발전의 정점에 와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과학기술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온갖 문명의 이기들. 인문과학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는 가운데 인류의 정신문명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문명의 발전


 그러나 그 모든 발전을 바라보며 인간 스스로 착각하며 속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발전이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착각, 그것이 인간 자신에게 궁극적인 존재 의의(意義)를 실현해 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인간 지성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이 아무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평적인 차원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의 존재가 본래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물음에 대해서는 전혀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철학을 비롯한 제반 인문과학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철학의 마지막 말은 인간과 세계의 근거로서의 신(神)에 대해, 그것도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비인격적인 신에 대해 아주 조금 말해줄 뿐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신자들이 믿고 고백하는 인격적인 사랑의 '하느님'이 빠져 있습니다.

 
 과학기술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인간의 지향성

 또한 과학문명의 진보를 인류의 발전과 섣불리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과학기술은 윤리적으로 볼 때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터넷만 해도 그렇습니다. 가상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는 인간의 정신 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가상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 그것은 선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류 과학문명의 최고봉에 위치한 핵에너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래 인류를 책임질 에너지가 될지, 아니면 이 지구상에서 인류를 멸종시킬 함정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의지의 지향성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정신없이 발전해가는 과학문명과 인문과학의 파도 속에서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며 삶의 방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강렬한 하느님 체험을 목말라하는 현대인

 교회 내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은 2000년의 역사를 거치며 발전할 대로 발전했습니다. 머리만 커진 오늘의 현대인들, 그리고 신앙인 역시 하느님에 대해 얘기하는 수많은 책들을 바라보며 냉소(冷笑)짓고 무덤덤해 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논리와 개념은 더 이상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호소력을 갖지 못합니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 같은 분이 물질문명과 무신론으로 팽배한 현대인들에게 존경 받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는 강력한 원천이 되는 것은 인간의 그 어떤 논리도 넘어서는 하느님에 대한 강렬한 체험과 삶 속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이 뒷받침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는 하느님을 체험한 위대한 성인을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 성인이야말로 존재 자체로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으며 거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이 어떤지를 몸소 살아내고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천상을 향한 안내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녀 데레사는 그 어떤 성인보다도 이 시대에 빛을 전해줄 수 있는 강렬한 하느님 체험의 소유자이자 천상을 향해 길을 뚫은 증거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상을 향해 길을 뚫은 성녀 데레사

 성녀 데레사는 어떤 인간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한 사상 체계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16세기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모든 면에서 약자로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녀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하느님을 향한 열절한 원의를 불사르게 만들어 줍니다. 아찔할 정도로 발전해가는 물질문명의 편안함 속에서 초월적인 가치를 망각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오늘 이 시대에 인간 존재의 핵(核)을 꿰뚫는 힘 있는 하느님 체험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호소력을 지닌 성녀 데레사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필자는 이러한 성녀 데레사의 영적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들의 영성생활을 성찰하게 해주는 다양한 주제들을 약 1년간 나누고자 합니다. 성녀 데레사께서 여러분들의 영성생활의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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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2>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 하느님 사랑에 대한 나만의 응답

 
 흔히 성녀 데레사는 '영성의 대가'라고들 말합니다. 어느 특정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대가(大家)라고 합니다. 영성의 대가인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반추하려면 무엇보다도 '영성'의 올바른 개념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영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분명 이 '영성'이란 말일 겁니다. 사제 영성, 수도자 영성, 평신도 영성, 순교자 영성, 영성 심리, 매스컴 영성 등 도대체 교회에서 사용되는, 좀 있어 보인다 하는 말들은 죄다 '영성'이란 말과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몇 퍼센트도 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성삼위 하느님께 이르는 것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성'은 인간의 행위를 유발하는 어떤 태도나 정신으로서 일종의 종교적, 윤리적 가치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영성' 하면 어떤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신 혹은 절대자를 믿는 사람이면 어떤 종교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영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영성뿐만 아니라 선(禪)의 영성, 불교도 영성, 유다교 영성, 회교도 영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협소한 의미에서 본다면, '영성'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신앙생활,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느님과 신자 간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의미하며 그 관계에 바탕을 둔 생활양식을 의미합니다. '영성'(spiritualitas)이란 말은 '영(靈)'을 의미하는 라틴어 '스피리투스(spiritus)'와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에서 유래합니다. 이러한 선상에서 성령(聖靈)을 '스피리투스 상투스(Spiritus Sanctus)'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영성이 성령과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계시 진리에 비춰볼 때, 진정한 의미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을 통해서 성삼위 하느님께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영성'에는 이런 일반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영성신학으로 권위 있는 교황청 테레시아눔 대학원에서 40여년 이상 가르쳐 오신, 명강의로 유명한 라우다치 신부님은 '영성신학의 근본 주제들'이라는 과목을 가르치실 때 늘 다음과 같은 질문과 함께 첫 강의를 시작하곤 하십니다.
 
 "여러분은 영성을 뭐라 생각하십니까?" 필자 역시 거의 20년 전 이 강의를 들을 당시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만, 저를 비롯해 대강의실에 꽉 들어찬 수많은 신부님, 수녀님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 신부님이 의도하신 답을 제대로 맞히진 못했습니다. 결국 신부님께서는 저희들의 대답을 종합하시며 다음의 한 마디로 영성의 핵심을 지적하셨습니다. 영성은 하느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각자가 그분께 드리는 고유한 사랑의 표현 방식이라고.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참하고 예쁜 아가씨,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처럼 '엄친딸(완벽한 여성을 이르는 말)'이 있다고 합시다. 그 아가씨에게 반한 세 청년이 있습니다. 한 청년은 시인이고 다른 한 청년은 음악가이며 마지막 한 청년은 미술가입니다. 세 청년 모두 그 아가씨를 사랑합니다만, 저마다 사랑의 표현은 달랐습니다. 시인 청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동서고금의 주옥같은 시구(詩句)를 인용하며 심금을 울리는 편지를 써 보내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반면, 음악가 청년은 그녀를 생각하며 가끔씩 산책하다 떠오른 악상을 갖고 세레나데를 작곡해 어느 날 저녁 그 아가씨가 사는 집 창문가에서 그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미술가 청년은 그 아가씨의 초상화를 예쁘게 그려서 선물하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시인, 음악가, 미술가 모두 그 아가씨를 사랑했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로 상황을 바꿔보기로 합시다. A라고 하는 신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이 곧 당신을 돕는 것이라 하신 주님 말씀을 기억하며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반면, B라고 하는 신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자신의 능력을 봉헌하기 위해 본당 성가대에 들어가 매주 미사 때 성가로 주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C라고 하는 신자는 평소 성경 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당 성경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새로 입교한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세 신자 모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것을 표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세례 통해 영성의 바탕 마련
 
 그러므로 영성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나만이 응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사랑의 방식, 고유한 사랑의 색깔을 뜻합니다. 우리 각자는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릅니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자라난 가정환경도 다릅니다. 취향도 다르고 교육 정도도 다릅니다. 또한 하고 있는 일도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걸어온 삶의 역사가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나를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바로 이 모든 나 자신의 독특함을 바탕으로 하느님과 맺는 고유한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나만의 방식으로 하느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통해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시작한 우리는 이미 잠재적으로 영성의 바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토대 위에 하느님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사랑의 방식을 갈고 닦으며 그분을 향한 고유한 사랑의 색깔을 곱게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영성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전이나 영성 서적들을 통해 만나는 성인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 나아가는가 하는 개괄적인 여정과 영성적인 원리에 대해 가르쳐주지만, 여러분은 성 프란치스코, 성 이냐시오, 성녀 데레사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여러분 자신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걸어야 할 여러분만의 영성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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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3.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①

성 예로니모에 감화, 부모 몰래 수녀원 입회

▲ 데레사 성녀 고향인 스페인 중세 성곽 도시 아빌라 전경.



 대(大) 데레사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에 대해 나누기 전에 먼저 그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하는 그분의 인물됨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이지 싶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성녀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가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소화 데레사라 불리는 성녀로,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태어나 15살에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해 24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분을 말합니다. 이 성녀의 정확한 수도명은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이십니다. 반면, 같은 이름을 쓰지만 소화 데레사보다 350여 년을 먼저 살았던 성녀가 계십니다. 이분은 스페인 사람으로 세계사에서 스페인의 황금시대라고 불린 16세기에 살았던 성녀입니다. 이분은 통상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확한 수도명을 따라 '예수의 성녀 데레사'라고 불리기도 하며 소화 데레사와 구분하기 위해 '대(大) 데레사'라 불리기도 합니다.


 개종 유다인

 성녀 데레사의 조국 스페인은 1492년 800년 간의 이슬람 통치를 몰아내고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통일함으로써 제국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당시 신앙이 달랐던 유다인, 아랍인들은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개종함으로써 스페인에 통합됐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집안은 본래 스페인의 경주라 할 수 있는 톨레도에서 성공한 유다계 상인 집안이자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집안이었습니다. 성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유다인이라는 출신을 숨기고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이달고'라는 하급 귀족 신분을 사서 가까스로 아빌라에 정착하게 됩니다. 성녀는 아빌라에서 1515년 3월 28일 그런 개종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성녀 데레사의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카타리나였는데 안타깝게도 두 남매를 낳은 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산체스는 베아트리스라는 새로운 부인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부인으로부터 열 명의 자녀를 얻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데레사였습니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성인전을 읽었으며 로사리오 기도를 비롯해 수녀 놀이를 즐겨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성녀는 어느 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빠 로드리게스와 함께 아랍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했던 곳에 가서 순교하기 위해 가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길목에서 숙부가 그 두 아이를 만나 데려옴으로써 이들의 무모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신앙만이 아니라 세속의 여러 가지 일들에 눈이 뜨기 시작한 성녀는 점점 신앙을 멀리했습니다. 어머니가 즐겨 보던 기사소설이나 연애소설에 탐닉했는가 하면, 사촌오빠들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화장도 하고 치장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발달 심리학의 도움으로 그 또래의 소녀들이 당연히 그런 성장과정을 겪는다는 점을 아는 우리로서는 사춘기 소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일 법하지만,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이자 철저한 종교 사회였던 16세기 당시 이런 성녀의 모습은 엇나가기 시작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성녀의 아버지는 딸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로 데려가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기숙학교 생활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성녀는 처음에 이 기숙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사감으로 있던 브리세뇨의 마리아 수녀님이 보인 거룩한 표양은 이내 감수성 많은 사춘기 소녀 데레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맙니다. 성녀는 이곳에서 규칙적인 신심생활을 통해 어린 시절 가졌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되찾았으며 나중에는 수녀가 되겠다는 마음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성녀는 수녀가 돼도 아우구스티노 수녀회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가 가르멜 수녀원에 있어서, 만일 수녀가 된다면, '강생 수녀원'이라고 불린 가르멜 수녀원에 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성녀는 그만 병이 나서 기숙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데레사를 큰 언니가 살던 살라망카 근처의 카스테야노라는 작은 마을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휴양을 하며 보내던 성녀는 가끔 그 근처의 오르티고사라는 곳에 사시던 숙부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숙부는 신심이 깊은 분이어서 그분의 서고에는 언제나 좋은 신심서적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곳을 방문해서 숙부에게서 좋은 얘기도 듣고 쉬면서 무심결에 손에 잡힌 책을 보며 성녀는 그 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성 예로니모가 쓴 편지 모음집으로 성녀는 그 책을 통해 성인의 열정에 깊이 감화됐고 그때부터 진지하게 수도자가 될 것을 고민하게 됩니다. 언니 집에서 쉬면서 몸을 추스른 성녀는 아빌라로 돌아와 얼마 후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벽에 가르멜 수녀원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1535년 성녀의 나이 만 20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가르멜 수녀원 시절

 그 후 성녀는 수련을 받고 1537년 서원을 발해 정식으로 가르멜 수녀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다시 몸이 아파 성녀는 잠시 수녀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베세다스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치료를 했는데, 역시 이곳에서도 근처의 숙부 댁을 자주 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녀의 기도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될 오수나의 프란치스코 신부가 쓴 「제삼 기도 초보」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성녀는 '거둠 기도'에 심취했으며 이 기도를 약 20여 년간 실천하며 보다 깊은 신비 기도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을 했습니다. 1539년 성녀는 아빌라로 돌아왔지만 병은 더욱 악화됐으며 결국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실신 상태에 있던 성녀가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를 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성녀는 그 후에도 몇 년간 병약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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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 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하>

16세기 교회에 영적 비전 제시한 선각자

▲ 성녀 데레사가 설립한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인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


 영적 여정에 진일보하다

 1553년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후 성녀는 20여 년 간 가르멜 수도자로서 정진했습니다. 특히 성녀의 기도생활에 도움을 준 것은 프란치스코의 오수나가 쓴 「제삼 기도 초보」였습니다. 그런 성녀의 영적 여정에 전환점이 된 사건은 1554년 사순절에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체험이었습니다. 수녀원 안에 있는 기둥에 묶여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 동상을 바라보며 성녀는 인간을 향한, 아니 자신을 향한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우치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분을 향해 일대 회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인 방점을 찍은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예수회의 프라다노스 신부님과 영적 대화를 나눈 후 기도할 때였습니다. 당시 성녀가 고민했던 것은 과연 사람들과의 우정이 하느님과의 관계에 방해가 되는가 하는 점이었는데, 젊은 시절 이 문제로 고심한 바 있던 성녀는 아직껏 인간적인 우정에 연연해하는 마음을 끊지 못했고 프라다노스 신부는 그런 데레사를 설득하다 지쳐 성녀에게 경당에 가서 '성령송가'를 바치게 했습니다. 그 권고에 따라 기도를 바치던 도중, 성녀는 특별한 신비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신비적인 황홀경을 체험함과 동시에 주님의 신비적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성녀는 영적으로 큰 걸음을 걸으며 진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성녀가 받은 이 은총은 '영적 약혼'으로 불리는데, 이때부터 성녀는 하느님에 대한 더욱 많은 신비체험을 하게 됩니다.

 
 남녀 맨발 가르멜의 설립자

 이런 일련의 신비체험을 통해 성녀는 자신을 향한, 그리고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이제 그 사랑에 응답하고자 하는 원의를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성녀는 기존의 가르멜 수녀원이 가진 해이한 수도생활 분위기를 일신함과 동시에 교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여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당시의 한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성녀는 엄격한 봉쇄 수녀원을 창설해 온전한 관상생활에 전념함과 동시에 철저한 고행과 기도의 삶을 통해 개신교의 분열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던 교회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녀는 1562년 아빌라에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고 그 후 죽기까지 20년 동안 스페인 전역에 17개의 수녀원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가르멜 수녀들의 이상을 함께 공유하며 동시에 그런 영적 카리스마를 사도직을 통해 실제로 교회 안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남자 수도회를 창립했습니다. 1568년 메디나 델 캄포에서 인연을 맺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의 만남은 이런 이상을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영성 저술가

 1572년 성녀는 자신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커다란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를 소위 '영적 결혼'의 은총이라고 하는데 이는 앞서 말한 '영적 약혼'에 뒤이은 영적 단계로서 인간이 현세에서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여정의 최고봉을 의미합니다. 성녀는 1560년대 초반부터 수녀원 창립활동을 함과 동시에 그동안 자신이 받은 영적 은혜와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글로 소개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기도 여정에 동참하고 그럼으로써 자신과 같은 은혜를 받게 되길 고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된 첫 번째 작품이 한국어로 「천주 자비의 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자서전」입니다. 또한 성녀는 자신의 첫 번째 제자 그룹인 아빌라의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수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완덕의 길」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미 영적으로 완숙기에 접어든 1577년 「영혼의 성」을 썼는데, 이 작품은 성녀의 영성생활과 기도생활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꼽힙니다. 그밖에도 성녀는 다양한 소품들을 많이 집필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는 금기시 되던 「아가서」를 묵상하고 해설하기도 했고, 자신의 신비체험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는가 하면, 영적 지도자나 자신을 심문했던 종교 재판소의 재판관들에게 자신의 영적 상태와 그간 자신이 걸어온 영적 여정에 대해 설명한 일련의 「영적 보고서」들도 작성했습니다.

 
 교회의 딸

 20세기 중반에 활동하던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대표적 영성가인 프랑스 가르멜의 마리 에우젠 신부는 가르멜의 주요 성인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하는 가운데 가르멜 영성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이며, 후반부는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합니다. 이 두 제목은 가르멜 영성이라고 하는 가톨릭교회의 거대한 영적 산맥의 시조(始祖)인 성녀 데레사의 영성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기까지 성녀가 그토록 열망했던 것은 하느님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진리 자체이자 궁극적 사랑이신 하느님, 그분을 뵙는 것이야말로 성녀의 지상 과제였습니다. 이는 교회 역사상 수많은 성인성녀들을 비롯해 신학자들이 가르쳐 온 인간의 궁극적 소명인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녀는 1582년 알바데토르메스 가르멜 수녀원에서 임종하면서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녀가 살던 16세기는 유럽 전역에 가톨릭교회가 큰 위기를 겪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 난세에 성녀는 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해 교회에 영적인 힘을 불어넣어줌으로써 내적인 쇄신을 이끌었습니다. 성녀는 수많은 신비체험을 하면서 언제나 그 체험이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한지 염려했고 영적 지도자들의 지도를 따르며 그들을 통한 교회의 인도에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쓰면서도 단 한 줄의 글조차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불살라 버리겠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성녀는 죽을 때까지 온전히 교회의 딸이었고 교회를 위해 일생을 불살랐습니다. 수많은 이단이 판을 치던 16세기, 성녀 데레사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회에 영적 비전을 제시한 선각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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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5.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하느님 자비와 사랑으로 이끄는 안내서

▲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원본이 보관돼 있는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왕궁.


 자서전」 : 하느님 자비에 관한 책

 성녀 데레사의 영성을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함에 있어 기초 자료가 되는 것은 성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영성 작품들입니다. 그 가운데 주요 작품으로 손꼽히는 「자서전」, 「완덕의 길」, 「영혼의 성」, 「서간집」에는 성녀의 영적 가르침을 구성하는 핵심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500년의 세월을 거리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녀 데레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주는 작품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성녀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일종의 '고백록'인 「자서전」을 들 수 있습니다. 본래 이 작품은 성녀 데레사가 그간 자신이 받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비체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자신을 지도했던 여러 사제들에게 자기 영혼의 사정을 내어 보임으로써,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에서 온 것인지의 여부를 확인받기 위해 작성한 일종의 영적 보고서를 모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의 초고는 대략 1560년에서 1562년 사이에 아빌라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성녀의 영적 지도신부들 가운데 특히 예수회원들(세티나의 디에고 신부)과 도미니코 회원들(베드로 이바녜스 신부, 톨레도의 가르시아 신부)은 성녀가 쓴 이 글에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전혀 없으며 영성생활에 유익한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다며 성녀를 격려하면서 원고를 좀 더 보완하도록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녀는 영적 지도신부들에게 순명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보완해서 현재 우리가 보는 「자서전」을 1565년에 완성했습니다. 본래 작품의 원본에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고, 이 작품을 비롯해 성녀 데레사의 주요 작품을 정리해서 처음으로 출판한 아우구스티노회 소속 레온의 루이스 신부는 출판을 위해 이 작품에 「사모(師母), 예수의 데레사의 자서전과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베풀어주신 몇 가지 은혜들, 그분에 의해 직접 쓰였으며, 그분을 지도했던 고해사제에게 보낸 것」이란 다소 긴 제목을 붙인 바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생의 말년에 이르러 이 원고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글」로 부르길 원했다고 합니다.
 

 성녀가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

 성녀 데레사가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성녀는 그간 자신이 받았던 하느님에 대한 신비체험을 정리하면서 하느님이 자신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알고 싶었고 또 그것을 교회 학자들로부터 검증받고 싶었습니다.

 2) 성녀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알게 된 하느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자비의 하느님을 사랑하길 원했습니다.

 3) 성녀는 이러한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비롯해 자신이 걸어온 영적 여정을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 역시 보다 깊이 하느님을 만나고 영적으로 성장하길 원했습니다.

 4) 성녀는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전함으로써, 당시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심판관으로서의 무시무시한 하느님의 이미지를 일신(一新)하고자 했습니다.

 
▲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자서전」의 내용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은 전체가 4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1) 1~10장 : 이 부분에서 성녀는 진리를 찾고자 했던 자신의 유년기와 사춘기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해 사막에서 여행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알아가는 여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2) 11~22장 : 성녀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오랜 세월 실천해왔던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역시 참된 기도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성녀는 기도의 초보 단계부터 초자연적인 관상 기도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성녀는 정원에 물을 주는 4가지 방식에 대한 비유를 소개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기도를 통해 인간 안에 작용하는지 가르쳤습니다.

 3) 23~31장 : 성녀는 이 부분에서 기도를 통해 변화된 사람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여기서 성녀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삶과 이를 위해 자신이 했던 이탈의 노력 등을 소개하며 보다 높은 완덕의 절정을 향해 자신을 이끄는 하느님 사랑의 체험에 대해 전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갖도록 독려했습니다.

 4) 32~40장 : 성녀는 이 부분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비적인 은총은 자신이 아닌 교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 엄격한 봉쇄와 고행을 통해 철저히 복음을 살아가는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의 창립 과정에 대해 전했습니다.

 
 '영성'은 하느님의 관점에서 삶을 재해석하는 것

 마지막으로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묵상하면서 이 기회에 여러분 역시 여러분의 삶의 역사 안에 발자취를 남기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하고자 합니다. 성녀 데레사가 밝혔듯이, 「자서전」은 성녀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가운데 삶의 여정 속에 역사하신 숨어 있는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를 읽으며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일찍이 2세기께 활동했던 교부 성 이레네오는 역사의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온 우주 만물이 하나로 수렴된다는 '수렴(收斂, recapi tulatio)'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수렴은 비단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미래적 사건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이 순간 우리가 살아온 삶의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지금 새롭게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구원 사건이기도 합니다. '영성'은 우리 삶에 대한 재해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어떤 것으로 채워졌건, 그 안에 좋은 체험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 심지어 악(惡)에 대한 체험이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갖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시간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그리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십시오."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이 여러분들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섭리로 이끄는 좋은 안내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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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술이 아닌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만남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6. 성녀 데레사의 「완덕의 길」

▲ 데레사 성녀는 완덕에 이르는 길은 기도 여정의 발전 단계와 맥을 같이 하고 기도 여정의 발전은 올바른 신앙생활, 수덕생활을 바탕으로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완덕의 산 정상을 바라보는 성녀 데레사를 조각한 작품.


   기도 교과서인 「완덕의 길」

 성녀 데레사가 쓴 책 가운데 영성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교과서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신자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으로 「완덕의 길」을 들 수 있습니다. 「완덕의 길」은 본래 성녀가 창립한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인 성 요셉 수녀원의 수녀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썼습니다. 성녀는 1562년 이 작품을 썼는데, 기도뿐만 아니라 영성생활 전반에 대해 그리고 신비체험에 대해 거침없고 솔직한 문체로 소개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녀는 수녀들을 비롯해 평신도, 특히 여성들이 묵상기도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어려움을 줬던 당시 남성 중심의 교계제도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여인들을 옹호하는 원색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당시 종교재판소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일종의 계엄령 체제하에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검열했던 성녀의 영적지도 신부들은 성녀로 하여금 도발적인 내용들을 수정하고 문체도 다듬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약 3년간 다시 다듬어 1565년에 수정된 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완덕의 길」은 두 개의 작품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이 보관된 장소에 따라 구체적인 이름이 따라붙는데, 성녀가 처음 만든 「완덕의 길」은 스페인의 왕궁 도서관에 있고 그 왕궁이 있는 마을의 이름이 '에스코리알'이기 때문에 「완덕의 길」 에스코리알본(本)이라 부르고, 수정해 다시 만든 작품은 바야돌리드라는 대도시의 가르멜 수녀원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완덕의 길」 바야돌리드본(本)이라 부릅니다. 최민순 신부님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완덕의 길」은 바야돌리드본입니다.
 

 「완덕의 길」의 구성

 「완덕의 길」은 42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18장: 기도를 위한 준비, 2) 19-26장: 일반적인 기도에 대해, 3) 27-42장: '주님의 기도'에 대한 해설. 무엇보다 성녀 데레사는 자신이 몸담고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 그리고 자신이 여인으로서 사회적 약자였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시대의 교회가 안고 있던 갈등과 분열에 대해 깊이 자각하고 혼신을 다해 응답함으로써 교회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성녀가 이 작품을 통해 제시한 것은 복음을 철저하게 사는 것, 기도에 충실함으로써 주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세상 구원을 이루시는 데에 밑거름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녀가 책을 쓰게 된 이유이자 주된 내용입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닌 하느님과의 관계

 이런 선상에서 우리는 성녀가 이 책을 쓰면서 기본 줄기로 삼은 몇 가지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복음적 권고를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생활입니다. 성녀는 기도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이며 이것이 곧 영성생활이 지향하는 완덕을 향한 여정이라고 봤습니다.

 통상 이 책은 기도에 대한 성녀의 가르침이 담긴 교과서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신자들이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접하는 내용은 주로 신앙생활을 위한 기본 자세, 특히 덕행(德行)에 관한 것입니다. 성녀는 작품의 50% 이상을 할애해서 다양한 덕들에 대해 다뤘습니다. 이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으로, 성녀는 기도가 중요하지만 기도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며, 덕을 닦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근본 바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신자들이 사이에 사적 계시 문제를 비롯해 특별한 치유 은사나 신비 현상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만, 이로 인해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비본질적(非本質的)인 것에 치우쳐서 잘못된 신앙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성녀 데레사는 단호했습니다. 절대 신비 현상이나 사적 계시 같은 것을 바라지도 말고 그것을 체험했다 할지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며 그것이 완덕을 향한 여정에서 진보했다는 표식도 아님을 명심하라고. 그러면서 성녀는 「완덕의 길」에서 참된 기도, 즉 하느님과의 참된 만남과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청빈, 자아 인식, 이탈, 겸손, 순수한 사랑과 같은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 좀 염려스럽습니다. 기도를 테크닉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이런저런 기도 방법을 배워 열심히 수련만 하면 높은 기도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근본적으로 '기술'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성녀 데레사가 말하는 기도는 그런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과 맺는 '우정의 관계', '사랑의 관계'가 영글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도는 단순히 어떤 기술을 터득하고 반복해서 수련함으로써 깊어지는 방법이 아니라, 두 인격(人格) 간의 만남으로 이해하고 하느님을 나의 유일무이한 사랑이자 벗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관계에 충실하고 그럼으로써 이를 내 삶의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키워가야 하는 소중한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건강한 기도생활의 바탕인 올바른 삶의 준비

 성녀가 말한 완덕의 길은 기도 여정의 발전 단계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기도 여정의 발전은 올바른 신앙생활, 수덕생활을 바탕으로 합니다. 쉽게 말해, 기도만 많이 하고 고상한 생각과 신묘한 감정만 느낀다고 완덕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올바른 삶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 가진 것을 나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결국은 죽음 앞에서 다 놔야 할 이 세상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않는 것,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과 재능을 자기 것으로 생각지 말고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나누며 사는 것, 교회 어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식이 통하는 '사람 냄새' 나는 건강한 인간성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이 정도만 돼도 완덕의 길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기도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준비된 건강한 영혼이라고 성녀는 가르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녀는 신앙생활의 정점(頂點)인 완덕의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대결심(一大決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이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결의.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께 여러분의 삶의 중심 자리를 내어드리고 그분께 올인할 자세가 돼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완덕의 정상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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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향한 내적 여정은 우리 모두의 소명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7. 성녀 데레사의 「영혼의 성」

▲ 아빌라 강생 수녀원 입구 마당에 표시된 7궁방.


   성녀 데레사의 작품 가운데 백미(白眉)인 「영혼의 성」

 「영혼의 성」은 성녀의 영성 세계를 대변하는 최고 작품입니다. 성녀는 이 책을 1577년 6월 2일 톨레도 가르멜 수녀원에서 쓰기 시작해 그 해 12월 29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얽혀 3개월간 펜을 잡지 못했으니, 성녀가 영성사(靈性史)에 길이 남을 이 걸작을 완성한 것은 3개월 동안이었습니다. 이 책은 본래 종교재판소에 고발당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자서전」을 안타까워하던 성녀에게 영적 지도신부인 맨발 가르멜회 소속 그라시안 신부가 권유함으로써 시작됐습니다. 성녀의 첫 번째 작품인 「자서전」이 만들어진 것은 1562~1965년으로 1577년에 쓰인 「영혼의 성」과는 12~15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성녀는 1572년 11월 18일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에서 영적 여정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혼'에 이르는 체험을 했으며,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교회에 대한 봉사를 모토로 하는 '남ㆍ녀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했습니다. '영적 결혼'을 체험한 지 5년이 지난 상태에서 「영혼의 성」을 썼다는 것은 성녀가 영성생활의 정상에 서서 그간의 영적 여정을 뒤돌아보며 영성생활 전체를 해설한 내용이 이 작품에 담겨 있음을 의미합니다.


 내면의 성(城)에 비유된 인간의 영혼

 흔히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신비가들은 그 신묘한 체험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 '상징'을 사용하거나 '시(詩)'에 담아 전하곤 했습니다. 성녀 데레사 역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자신의 신비 체험을 수많은 상징 속에 담아냈습니다. 성녀의 영성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근본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 그 중에서도 인간의 영적 부분인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삼위일체 하느님이 현존해 계신 곳이자 바로 그 하느님과 인간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감으로써 우리가 세례 때 받은 근본 성소인 '성화(聖化)' 또는 '신화(神化)'가 이뤄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녀는 영성생활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영혼'을 '다이아몬드', '구슬', '정원', '성'과 같은 상징에 담아 설명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城)'은 성녀가 가장 선호했던 상징 중 하나였습니다. 아빌라는 유럽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중세의 웅장한 성곽 전체가 가장 잘 보존된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50여 년 동안 아빌라 성을 보며 살았던 성녀에게 '성'은 영성생활을 설명해 주는 가장 자연스런 상징이었을 겁니다.


 성의 중심에 현존해 계신 하느님

 성녀는 '성'으로 상징되는 영혼 안에 성주(城主)이신 하느님이 사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성녀의 이런 설명은 교회가 가르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 즉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영혼 안에 거하신다고 하는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녀의 이런 설명은 단순히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성녀가 오랜 신앙생활 동안 끊임없이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설명보다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 내면의 성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세례를 받고 영성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여정은 무엇보다 성의 중심에 살고 계신 성주, 즉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성 안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내적 여정(內的 旅程)을 말합니다.


 성의 중심을 향해 있는 일곱 개의 방

 성녀는 인간의 영혼을 '성'으로 설명하면서 그 성이 바깥쪽에서부터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뉜다고 상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세례를 받게 되면 이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가 처음 들어가는 지역을 1궁방(宮房)이라 불렀습니다. 반면,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안쪽에 있는 2궁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궁방은 신앙생활에 있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들어서는 곳입니다. 이 방은 인간이 노력해서 갈 수 있는 최고 지점입니다.

 4궁방부터 7궁방까지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이 주도권을 쥐고 여정을 이끌어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하느님의 은총이 많이 작용하며 인간은 그런 그분의 은총에 맡겨드리고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4궁방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죽어야 하며 하느님께 온전한 신뢰를 둬야 합니다. 5궁방부터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깊은 일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6궁방에서는 그 일치가 한층 깊어지는데 성녀는 이 상태를 '영적 약혼'이라 불렀습니다. 이 궁방에서는 탈혼이나 현시 등 상당히 많은 신비 현상이 수반되기 때문에 흔히 신비 현상의 궁방이라고도 부릅니다.
7궁방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현존해 계신 방이자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신비적인 일치가 이루어지는 방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를 '영적 결혼'이라 불렀습니다. 이 단계는 교회가 가르치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자 성소인 '성인(聖人)'이 되는 상태이자 좀 더 전문적인 표현을 쓰자면 '참여(參與)로써 하느님처럼 되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이 7궁방에 도달함으로써 세례 때 받은 근본성소인 '성성(聖性)'을 완전히 실현하게 됩니다.


 '성성(聖性)'의 완성을 향해 초대받은 우리
 인간 내면을 향한 성녀 데레사의 '성' 비유는 말 그대로 비유이자 상징입니다. 「영혼의 성」을 접한 독자들이 실제로 우리 영혼을 '성'으로 믿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기가 막히곤 합니다. 물론 우리 영혼 안에 현존해 계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한 여정은 맞습니다만, 그것은 정확히 말해 하느님과 나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점점 무르익어가는 여정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두 연인이 처음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의 농도가 짙어가면서 둘 사이의 깊은 연대감이 형성되듯이, 세례를 통해 맺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밀도가 점점 깊어가는 여정이 우리 내면을 향한 여정이며 그 여정을 사랑의 농도에 준해서 7개의 단계로 구분한 것이 성녀가 「영혼의 성」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우리 영혼 안에 현존해 계신 하느님을 향한 내적 여정은 단지 소수의 엘리트들이나 걷는 길이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성인이 되도록 불림 받았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성소는 우리가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우리 각자에게 부여된 소명으로,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 목적이신 당신과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초대에 기꺼이 응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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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가르멜회 창립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응답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8. 성녀 데레사의 「창립사」

▲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


   하느님 자비에 대한 응답의 역사인 「창립사」

 성녀 데레사의 주요 작품 중에는 영성 서적뿐만 아니라 「창립사」라고 하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창립사」의 주된 줄거리는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남ㆍ녀 맨발 가르멜 수도원들의 창립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인간, 구체적으로는 성녀 데레사의 응답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죄인인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고서 그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세상을 향한 그분의 구원사업에 온전히 투신하고자 하는 원의를 품게 됩니다. 그 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교회 봉사를 위해 남ㆍ녀 맨발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하는 일이었습니다.

 16세기 중반 당시 유럽의 교회는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인해 분열돼 가고 있었으며 내ㆍ외적으로 상당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여인처럼,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대적 제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성녀는 엄격한 봉쇄 수녀원을 세워 보다 깊이 있는 기도와 희생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체험한 것을 남자 가르멜을 통해 교회에 나눔으로써 교회 쇄신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1562년부터 시작해 스페인에 17개의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세웠으며, 1568년에는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남자 맨발 가르멜을 창립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구체적인 창립 내용이 담긴 작품이 「창립사」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성녀의 영성이 어떻게 역사 안에서 구체화되고 꽃피어 갔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구조와 내용

 「창립사」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두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 창립이 있기 직전인 1567년부터 마지막 수녀원 창립이 있었던 1582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느 일정한 시기에 연속해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크게 네 시기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작성됐습니다.

 작품의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서언~9장(1573년 살라망카에서 작성)-메디나, 말라곤 수녀원 창립 이야기. 2부: 10~19장(1574년 세고비아에서 작성)-바야돌리드, 두루엘로, 톨레도, 파스트라나, 살라망카 수녀원 창립 이야기. 3부: 20~27장(1576년 톨레도에서 작성)-알바, 세고비아, 베아스, 세비야, 카라바카 수녀원 창립 이야기. 4부: 28~31장(1580~1582년 해당 수녀원에서 작성)-비야누에바, 팔렌시아, 소리아, 부르고스 수녀원 창립 이야기.

 
 현대인을 위한 기도의 가르침

 「창립사」가 주로 가르멜 수도원ㆍ수녀원의 창립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이야기 곳곳에는 다양한 영성적 주제들도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장부터 8장에서 성녀는 기도와 관련해 몇 가지 권고 사항을 전해주고 있는데, 이 가르침은 기도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자서전」, 「완덕의 길」, 「영혼의 성」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성녀는 5장에서 완전한 기도의 본질에 대해 다루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처한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적절한 조언을 줬습니다.

 예를 들어, 묵상기도 시간이나 성무일도 시간에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인해 일해야 할 경우,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과연 기도를 궐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 성녀는 몇 가지 중요한 식별 기준을 정해주었습니다. 만일 기도시간과 겹치는 그 일이 1) 교회 장상의 명에 따라 하는 일이며 2) 애덕 실천, 이웃을 위한 봉사와 연관되어 있다면, 그 일로 기도를 궐해도 괜찮다고 성녀는 가르쳤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핑계 삼아 자주 기도를 궐해서는 안 되겠지요. 여기서 성녀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기도'와 교회 장상에 대한 '순명' 그리고 '애덕 실천'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럴 경우, 손으로는 일하지만 마음만은 하느님을 향하고 지속적으로 화살기도를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선상에서 우리는 성녀의 그 유명한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냄비들 가운데서도 현존해 계십니다."

 필자 역시 신학생 시절, 신학교에서 수업 후에 수도원에 귀가해서 종종 주방 수사님을 도와드리며 묵상기도 시간과 주방 소임이 겹쳐서 고민할 때 성녀의 이 구절을 접하고는 말끔히 걱정을 털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분주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신앙생활, 기도생활을 해야 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성녀의 이 가르침은 좋은 지침이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어디서든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임을 늘 생각합니다."

 
 열렬한 성체 신심이 반영된 수녀원 창립

 「창립사」에는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만, '성체 신심'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성녀는 성체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습니다. 특히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인해 성체가 모독을 당하고 적지 않은 성당이 문을 닫아야 했던 상황에 대해 참으로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자신이 창립하는 가르멜 수녀원이 이런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는 작은 주춧돌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 수녀원 성당에서 성체가 온전히 흠숭받도록 했습니다.

 성녀가 창립한 맨발 가르멜은 엄격한 봉쇄와 희생, 가난을 모토로 삼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도시에서 여러 부류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성녀는 수녀원 창립을 위해 준비된 집에서 미사성제가 봉헌되는 것을 공식적인 '창립'으로 삼았으며, 창립에 반대하는 갖가지 음모에 맞서서 창립을 성공시키기 위해 통상 창립 멤버 수녀들을 데리고 야밤을 틈타서 준비된 수녀원에 들어가 꼭두새벽에 미사를 봉헌하곤 했습니다. 수녀원 창립이 매번 007작전을 방불케 했던 것이죠. 신비가였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지녔고 만유 위에 성체를 공경했던 성녀의 열정이 결합된 작전이 바로 가르멜 수녀원의 창립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얼마나 성체 안에 숨어계신 주님을 열망하며 삶의 중심에 그분을 모시려 노력하고 있습니까? 500여 년 전 스페인의 한 여인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녀원 창립을 감행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에게는 그런 열정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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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각 동반된 올바른 영성의 길 제시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9. 성녀 데레사의 「서간집」

▲ 스페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태어난 방에 장식된 데레사 성녀 상. 방은 작은 경당으로 꾸며져 있다.



   성녀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로 인도해주는「서간집」

 지난 호까지 「자서전」, 「완덕의 길」, 「영혼의 성」과 같은 성녀 데레사의 주요 영성 작품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사실 그간 한국교회 신자들은 성녀의 이런 수준 높은 영성 서적들을 통해 지극히 추상적이고 영적으로만 묘사된 '신비가'로서의 성녀 데레사만을 접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성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탈혼 속에 보냈다거나 마치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반쯤 천사 모습을 한 사람처럼 그려져 왔던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특히 성녀 선종 이후,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적 환경 속에서 성녀를 지극히 천사적 존재로 부각시키거나 모든 면에서 어린 시절부터 특은을 입은 특별한 존재로 내세워 당시의 대중신심을 북돋우려 했던 작가들의 뻥튀기가 한몫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성녀의 모습은 가히 가관입니다. 몸뚱이도 없고 음식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는 그런 천사적 존재, 거의 언제나 공중 부양을 하며 늘 탈혼 속에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천상만을 쳐다보는 모습이 우리가 성녀에 대해 갖는 대체적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녀 데레사에 대한 그런 잘못된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릴 작품, 성녀 역시 우리와 같이 땅을 딛고 살았고 먹거리에 대해 걱정하고 질병으로 시달렸으며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고민한 평범한 인간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바로 성녀가 쓴 수많은 편지들입니다. 성녀의 편지들은 그간 우리가 생각했던 성녀 데레사에 대한 극단적 이상적 모습에다 현실적 모습을 가미함으로써 성녀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로 인도해 줍니다.
 


 성녀의 속살을 보여주는 작품


 일생 동안 성녀가 몇 통의 편지를 썼는지 정확히 집계하기는 어렵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편지보다 그간 사라져버린 편지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 편지 가운데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것들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건대, 학자들마다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지만, 성녀는 약 1만 통에서 1만 5000통 정도의 편지를 쓴 것으로 사료됩니다.

 성녀의 인물됨을 비롯해 성녀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편지는 상당히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편지는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활용해 온 가장 기본적 소통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는가, 그 편지를 통해 무슨 내용을 나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부터 성격, 습관, 인간관계, 그가 지향하는 가치관, 시기마다 그가 고민했던 문제, 앓았던 질병, 처리해야 했던 현안 등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또한 편지에는 공식적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의 속내가 가감 없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사람이 숨기고 싶은 인간관계, 치부까지도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편지를 읽는 것은 그 사람의 속살을 보는 것과 진배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의 편지 모음집인 「서간집」은 그 글을 쓴 성녀의 입장에서 보면 잔인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건 마치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만인(萬人)에게 내 메일함에 있는 모든 편지를 열어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그만큼 더 성녀 데레사의 실제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편지의 수취인들과 그 내용

 현재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성녀의 편지는 총 486통으로, 스페인의 몬테 가르멜로 출판사를 통해 「성녀 데레사의 서간집」이 나오기까지 수백 년에 걸쳐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486통 중에서도 성녀의 친필로 쓰인 원본은 250통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필사된 것입니다. 전해져 오는 성녀의 편지는 1546년부터 시작해서 선종한 해인 1582년까지 쓰인 것들이지만, 특히 편지 분량이 많은 시기는 성녀의 가르멜 수녀원 창립 활동이 본격화된 1567년부터 1582년까지입니다.

 성녀가 쓴 편지의 수취인들을 그룹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 2. 맨발 가르멜 수사들에게 보낸 편지, 3. 맨발 가르멜 수녀들에게 보낸 편지(약 30여 명의 제자 수녀들). 4. 신학자들과 학자들에게 보낸 편지(약 24명의 신학자, 영성지도 신부 등), 5창립에 협력한 사람들(다양한 사회 계층에 속하는 약 27명).

 성녀가 쓴 대부분의 편지에는 여타 다른 영성 작품들과 달리 어떤 가르침을 전하려는 의도가 전혀 묻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은 편지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주제들입니다. 1. 성녀가 쓴 편지에는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성녀가 겪었던 질병, 고민했던 개인적 공동체적 문제,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성녀와 친분을 맺었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내밀한 관계 등이 그렇습니다. 2. 우리는 편지를 통해 성녀가 몸담고 살던 당시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3. 무엇보다도 편지에는 성녀 데레사의 활동, 특히 창립 활동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많은 구체적인 정보들이 있습니다. 4. 또한 편지 중에는 성녀의 생애와 관련된 직접적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동반된 건강한 영성

 성녀 데레사의 「서간집」은 우리로 하여금 '영성'에 대한 더욱 균형 잡힌 이해를 도모하게 해줍니다. 영성은 단순히 신비스럽고 추상적인 그 무엇인가를 두루뭉술한 어휘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것이고 구체적 삶이자 역사입니다. 영성은 자신이 터한 삶의 자리, 자신과 맺는 수많은 사람,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공동 자아실현의 길로서 건강한 인간적 바탕 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영성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서간집」은 우리에게 현실 감각을 지닌 올바른 영성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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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윤주현 신부님께서 평화 신문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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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맛들이기]가르멜 영성과 기도(7)

초자연적 기도...모든 능력 하느님과 일치


강유수 신부(가르멜남자수도회 광주수도원장)


 #일치의 기도(하느님과 합일)
 완전히 초자연적인 기도로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능력이 하느님과 일치해 있어 자연적인 면에서 능력은 정지 상태에 있다. 여기서는 다만 즐기는 것뿐인데 자기가 즐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 단계는 순수 초자연이므로 영혼 자신도, 악마도 개입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 이 초자연적인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해 인간 스스로 이 능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교만이다. 사이비 신비가들은 이것을 흉내 내긴 하지만 곧 무리가 오고 혹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어도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관상기도는 순수 초자연적 은혜이기에 우리가 의지적, 임의적으로 능력들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를 한번 맛본 영혼은 '하느님과 일치' 때문이 아니라 그 때 느꼈던 감미로움과 그윽한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것을 데레사 성녀는 교만이라 말한다. 우리 힘으로 날이 밝게 할 수 없듯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이런 영적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런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의 뇌파를 측정해 임의적으로 음악이나 다른 테크닉을 통해 일치의 상태와 비슷한 뇌파 상태에 들어 가게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기쁨과 쾌락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과의 합일도 아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적 기쁨도 아니다. 이 사이비 쾌락은 육체적인 쾌락보다 영적이기에 더욱 위험하고 해롭다.
 영혼의 성 5궁방에서 이 기도를 번데기에서 '하얀나비'로 변모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기도의 특징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분명치 않아 뚜렷이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는 것과 이 은총의 너무도 두드러진 확실성만이 영혼 안에 남기에 자신이 하느님 안에 있었음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이해하지 못 한다. 하느님은 그 영혼의 깊은 곳에 계시기에 그 사람은 제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자기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자기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만이 영혼 안에다 심으실 수 있는 그 확실성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관상은 시현이나 겉으로 들어나는 현상들에 있지 않고 영혼이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 속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영혼에게 데레사 성녀는 당부한다.
 "영혼은 마음기도 중에 지극히 큰 은총을 받게 되는 경우라도 자기 자신을 조금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또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스런 기회에는 어떻든 몸을 드러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잘 경계해 주십시오. 이 권고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악마가 여기서 사용할 수 있는 책략은 은총이 확실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그 은총 자체를 자기가 목적한 곳으로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 작자는 덕이나 극기, 이탈에 아주 익숙하지 못한 영혼들을 속이려 듭니다. 그 이유는 영혼들이 이 상태에 한번 다달았어도 또한 아무리 좋은 소망과 결심을 품었어도 죄 되는 기회나 위험을 극복할 만한 힘을 간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영혼이 이런 상태에 다달았어도 자진해서 싸움터로 나가려 할 만큼 자기 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겐 자신을 삼가 지키는 것으로 넉넉합니다. 그는 둥우리에서 나올 수 있고 하느님께서도 가끔 꺼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날 수는 없습니다"(자서전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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