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그동안의 제 소회를 풀어보는 자리로 할까 합니다. 평화신문에 거의 2년 동안 100회가 넘는 상담칼럼을 실어왔습니다. 그 덕택에 일간지 문화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인터뷰도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글을 올리면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가슴속에 얹힌 것이 없이 속 시원하다', '글이 너무 좋아서 매번 스크랩해서 읽는다' 등등. 반면 비난도 적지 아니 많았습니다. '왜 복음적인 것과 다른 글을 쓰는가?'(여기서 복음적이란 말은 그 말을 하신 분의 지극히 주관적인 복음), '왜 사랑을 가르쳐야 할 신부가 화를 내라고 가르치나?', '왜 신자들을 정신병자로 모는가?', '왜 신자들 신앙적 기강을 흔드는가?' 등등. 심지어 저를 이단자라고 비난하는 욕까지 먹었습니다. 그 바람에 마음의 상처도 꽤 많이 받았는데, 그럼에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글을 쓰고 앞으로도 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제가 공부한 것들이 맞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즉, 기존 신앙관이 신자들을 수도자로 양성한다는 관점, 다시 말해 영신수련적 관점에서 교회에 필요한 것이 맞다면 교회 안에서 치유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병든 신자들에게는 심리 치료적 신앙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보면 주님 역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병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자들에게는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단순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자들에게는 다소 엄하고 어려운 영신수련의 조건을 요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도 건강한 신자들과 병든 신자들을 식별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건강한 신자가 아니라 마음이 병든 신자를 대상으로 사목하기로 했기에 영신수련이 아닌 심리 치료적 관점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에 대해 오해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늘 가져왔던 의문, 제 온몸으로 고뇌하고 힘들어하던 의문에 대해 영성심리상담을 통해 답을 얻은 아주 힘겨운 노력의 결과입니다. 오래전 수도자가 되려 마음먹고 나름의 준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인전을 읽고 영적 독서를 하고, 매일미사에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시간만 나면 성체조배도 하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저의 신앙생활은 자신을 늘 채찍질하고 비난하는 삶이었습니다. 늘 같은 죄를 짓고 사는 저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고, 하느님 앞에서 부족한 죄인이라고 자기질책을 했습니다. 왜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오래전 배운 신앙생활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삶이 주님 뜻에 맞갖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 안에 편안함과 여유가 없이 늘 짜증나고 힘겨운 삶이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심리 치료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현실적 나를 미워하고, 이상적 나만을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 분열현상이 나타나 여러 가지 신경증적 질병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지 못했고, 병이라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문제를 안고 살다가 뒤늦게 나이 사십 중반에 들어서서 더는 제 안의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영성심리상담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영성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해온 신앙생활이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버거운 삶이었고, 자기교정을 위한 자기성찰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자기비난과 자기학대에 중독된 병적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즉, 의사가 환자 상태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것처럼, 주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있고 세부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돌팔이 약사가 만병통치약을 팔듯 주님 말씀을 그저 무지막지하게 받아들여 나에게 적용하는 바람에 제 마음 안에서 정신적 부작용이 생겼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 말고도 많은 분이 그런 병적 신앙생활의 덫에 걸려 힘겨운 기도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돼 심리 치료적 관점에서 상담사목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계를 느낀 것은 개인상담이나 강의는 그때만 효과가 있을 뿐,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병적 신념들을 제거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자들이 건강한 신앙관을 지속적으로 읽고 받아들여야 내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평화신문에 연재를 제의했고, 흔쾌히 응해줘서 지금까지 상담칼럼을 연재해온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신자들의 영적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님과 염수정 주교님께 감사드리고, 지면을 허락해주신 오지영 사장신부님 그리고 외부 비판으로부터 방패막이 돼준 평화신문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