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홍성남 신부님

비판하면 안 되나요? 비판과 단죄 - 홍성남 신부님

김레지나 2014. 4. 2. 16:17

[아! 어쩌나] 195. 비판하면 안 되나요?



 Q. 복음 말씀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단죄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자주 다른 사람을 비판해서 고해성사를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이 왠지 창피하네요. 가능하면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고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합니다. 복음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왜 이러는지요?
 
 A. 형제님은 열심한 신앙인이네요. 형제님 질문을 보면 수도자처럼 살려고 애쓰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단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37).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부메랑 법칙'에 관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비판과 단죄는 성격이 다르므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선 단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형제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단죄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을 단죄하는 것일까요? 대개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왜 저모양이야'하면서 말입니다.

 왜 단죄할까요? 표면상 이유는 상대방 잘못에 대한 지적이지만, 내적 이유는 다릅니다. 상대방이 시들어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죄합니다. 그래서 비판과 단죄는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판은 교정하고 상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는 것이지만, 단죄는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싶은 적개심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비판과는 달리 대죄의 가능성을 가진 행위라고 봅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단죄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인가요? 첫째는 자신이 단죄형 자기성찰을 하는 성향이 강할 때, 다른 사람을 심하게 단죄하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단죄하는 내적 습관이 외부관계로 연장돼 다른 사람을 단죄하려는 충동에 시달립니다.

 신자 가운데 기도생활은 열심인데 유난히 성격이 까다롭고 말마디마다 가시가 숨어 있고, 신앙생활을 게을리한다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잔소리하는 분들이 단죄하는 사람입니다. 외양은 수도자 같지만, 내면 상태는 거의 지옥입니다. 자기 마음이 편치 못하고 자기 단죄에 스스로 데인 상태로 살아가니 입 밖으로 나오는 말도 저주와 비슷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은 과정적 존재이고, 늘 성장해가는 존재라는 사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단죄를 합니다. 이런 분은 대개 '완전강박증세'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완전해져야 해''빈틈이 있으면 안 돼'하는 강박적이고 병적 신념에 시달리는 분은 스스로 자신을 산짐승 몰듯 몰아가며 삽니다. 그래서 마음에 안정감이 없고 늘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이들은 눈빛이 늘 불안하게 흔들리고, 유머 감각이 떨어지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봅니다. 작은 일에 민감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터뜨리는 비정상적 삶, 병적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반면 무슨 일이든 유머감각으로 잘 넘기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개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성, 진행형인 인생사에 대한 현실감각을 터득한 분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을 밟고 씹으면서 자신을 들어 올리고 싶은 욕구가 단죄 행위를 자행하게 합니다. 일명 '우월 콤플렉스'를 가진 것이지요. 이런 부류 사람들은 병적 허영심에 비해 자신이 가진 것이 없다는 자괴감과 병적 열등감이 우월 콤플렉스 아래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니라 '변태성 성격장애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당에서 다른 사람들과 논의해야 하는 자리에서 "내가 옛날에 다 해봐서 알아. 당신들이 뭘 알아"하며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빼놓으면 난리를 치는 성격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 사람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꽃이 아니라 칼이고, 향기가 아니라 구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뱉어낸 칼에 자신의 발을 베이는 것이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의 말로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형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단죄하고 싶은 충동을 절제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훈련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요. 자기 안의 물길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니,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몸살을 앓습니다. 하지만 훈련이 깊어질수록 내적 평화가 오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유머러스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