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양승국 신부님

<착찹하고 산란한 예수님 마음>

김레지나 2013. 6. 1. 12:27

착찹하고 산란한 예수님 마음 (양치기 신부님)

 
    <착찹하고 산란한 예수님 마음>
 
    예수님의 공생활이 끝나가는 시절 예수님의 머릿속은 참으로 착찹했고 마음은 엄청 산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변 돌아가는 분위기가 다들 작당해서 예수님을 빠져나오지 못할 코너로 몰고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당시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꼬투리를 하나 잡아 신속히 예수님을 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유다 백성의 지도층 인사들 (수석사제들, 율법학자들, 원로들, 바리사이들)은 상호 관계가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식민지 국가 권력이었지만 서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서로 헐뜯기도 하고 암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예수님 체포)에는 서로 합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것을 확인한 사악한 무리들은 아니나 다를까 득달같이 예수님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이런 일’이런 얼마 전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전 싹쓸이(성전 정화) 작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 정화는 사제들의 권한인데 왜 보잘 것 없는 갈릴래아 출신이 함부로 나대냐는 질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권한을 주었소?’란 질문은 유다인들의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최고의회를 대표해서 물어보는 질문으로 예수님께서 부여받은 사명이 직접 하느님으로부터 수임된 사명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던진 질문은 예수님 사명의 진위여부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과 적대자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랍비들의 교육방법 중에 하나인 문답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상대편의 고약한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신 예수님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지 않으시고 그들의 약점을 잡아 강공으로, 정면으로 대응하십니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참으로 지혜로운 예수님 편의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적대자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요한의 사명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예수님 사명의 초자연성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반대로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군중의 분노를 살 것이 분명했습니다. 비록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기는 했지만 유다 백성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그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이지 제대로 한번 잘 받아치신 것입니다. 적대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마침내 애매하게 대답하고 맙니다. “모르겠소.”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따져대며 호시탐탐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적대자들의 모습에 예수님께서도 마음을 접습니다. 적대자들과의 대화를 더 이상 진전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도 말문을 닫습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 아무리 외쳐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골고타 언덕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