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신앙 자료

순교자의 영성 - 영성특강 초록

김레지나 2012. 9. 2. 23:29

 

오늘, 2012년 9월 2일 교중미사 중에 영성특강이 있었습니다.

강사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김귀분 수녀님이셨습니다.

 

제 손바닥보다 작은 수첩에 대충 갈겨쓴 것을 정리한 것이라 내용이 엉성하고 불완전합니다. 수녀님의 강의에 누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좋은 말씀 나누고 싶어서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9시 미사참례를 하고 나서 강의만 들으러 다시 갔는데, 좀 늦어서 앞부분을 듣지 못했습니다.)

 

(전략)..............

신앙인은 하느님을 갈망하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이 있습니다.

  첫째, 배움의 길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 비움의 길입니다. 예를 들자면, 평신도의 경우에는 결혼하는 시기가 비움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나를 포기하려고 마음먹는 시기이니까요. 수도자에게는 수련기를 비움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묵상의 길입니다. 평신도의 결혼생활, 수도자의 수도생활이 묵상의 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완성의 길. 구도의 길입니다. 하느님과 합일하는 기간입니다.

 

** 신앙인은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을 갈망할까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3장,49장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와 있습니다.

“43: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분,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43:2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49: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49:16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손바닥에 새길 만큼 매 순간 기억하고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한 순간도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 우리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순교영성은 어떤 것일까요?

  순교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감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순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순교의 삶을 살고 있다면 혼자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즐기기보다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할 것입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순교는 피의 순교가 아닙니다. 백색순교(하얀 순교), 녹색순교입니다.

(흔히 순교라고 하면 목숨을 바치는 붉은 순교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교회는 순교의 의미를 확대 적용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애호하는 바를 기꺼이 포기하고 복음 삼덕에 충실한 것을 백색 순교라고 했다. 이후 아일랜드 수도자들은 고통을 극복하고 속죄하는 행위,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어떤 행위를 녹색 순교라 불렀다.-이동훈 신부님 말씀에서 발췌)

녹색순교

  현대인의 순교는 기쁨의 순교가 되어야 합니다. 늘 기쁨으로 웃어야 합니다. 복자수녀회에서는 9월에는 특히 강의도 일도 말도 많이 하지 말고 그저 미소를 지으려 애쓰라고 권합니다. 그것을 ‘미소치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미소를 짓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피를 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커서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순교를 합니다. 우리가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미소짓는 것, 사랑하는 것을 녹색순교라고 합니다.

하얀순교

  하얀 순교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하느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여러분도 하고 싶은 일들을 제쳐두고 미사에 와 계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것, 이것도 하얀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우리의 순교지

  일상의 평범한 삶 속에서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이 영성입니다. 일상에서 하느님을 의식하며 인내, 극기할 때 순교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순교지는 서소문도 아니고 당고개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우리의 순교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얼마나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순간 해야하는 순교는 제 강의를 잘 듣는 것입니다.)

  우리를 순교시키는 사람은 우리와 가깝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가장 많이 순교시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작은 한 마디의 말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 누가 우리를 무시하거나 힘들게 할 때 우리는 치명을 당하는 것입니다. 치명을 당한 순교성인들은 곧장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를 누군가가 무시할 때마다 미소를 지으십시오. 왜냐면 그가 나를 직천당하게 해주니까요.

평범하게 주어지는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김성봉 신부님의 책 <초남이 동정부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된 영성은 하느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만 바라보겠다고 아프신 시어머리를 두고 성당에 나와 기도하거나 식구들 밥도 챙겨주지 않고 성당에 나오는 것은 참된 영성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방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쉽습니다. 저도 밖에 나가면 좋은 소리를 하고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수녀원에서 생활할 때는 투덜이가 되곤 합니다. (중략) 가장 가까운 사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의 순교입니다. 이해관계에 얽혀 사랑하기 힘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일상의 순교입니다.

 

 

** 순교영성은 ‘감사’와 ‘비움’과 ‘나눔’입니다.

  영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입니다.

  순교영성은 감사와 비움과 나눔입니다.

  순교성인들께서 어느 날 갑자기 칼을 받게 되어 순교하신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순교의 영성을 살아내시다가 마침내 순교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순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잘 한 후에야 순교할 수 있습니다. 순교성인들은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신 분들이셨습니다.

비움

  순교영성을 살아내려면 내 안에 가진 것이 많으면 안 됩니다. 내 안의 교만, 미움, 시기, 질투..를 비워내야 합니다. 비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령을 채우기 위해서 비우는 것입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성령을 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칼을 쥐어야 합니다. 성령의 칼은 바로 성경입니다. 비움을 잘하기 위해서는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순교하며 지내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기쁘고 행복하다면 순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다 비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어둠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내 안의 어둠의 요소를 다 없앨 수는 없지만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옴으로써 어둠을 비워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약점, 모순 등등 어둠의 요소들을 빼내려고 애쓰기 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희망적인 것, 긍정적인 것들을 내세워 성령을 모셔와야 합니다.

비울 때 회개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왜 미워하는지.. 원인만 들여다만 보고 있으면 그것이 걸림돌이 됩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용서는 성령께 의탁해야 합니다.

감사

  성령의 빛으로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긍정적인 것들을 우리 마음 안에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매 순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비우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어둠의 요소를 다 비워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루 중에 5분이라도 한적한 시간을 갖고 예수님과 대화하도록 애써보시기 바랍니다.

나눔

  비우고 채웠으면 육화적인 나눔을 해야 합니다. 나눔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나눔과 영적인 나눔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서로 기도해주는) 영적인 나눔을 참 잘 하는 데 물질적인 나눔은 잘 못합니다. ‘물질적인 나눔은 몸의 기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은 것을 구체적으로 잘 나누는 것이 육화의 영성, 순교의 영성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순교의 삶을 살아야

  감사, 비움, 나눔이 잘 된 사람은 우울할 수가 없습니다. 밝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나누어주셨으니 신앙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 이 자리가 천국일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정약종(丁若鐘) 순교자는 현재 한국 주교회의가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해 교황청에 서류를 제출하고 그 절차를 밟고 있는 125분(최양업 증거자 포함)의 ‘하느님의 종’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돌아가실 때, ‘나는 땅을 보고 죽지 않겠다. 하늘을 보고 죽겠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칼 한 번에 죽지 않으니, 다시 일어나셔서 성호를 긋고 두 번째 칼을 받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형장으로 끌려갈 때 그의 얼굴은 아주 빛났다.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로 줄곧 예수를 스승이요 모범으로 삼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고자 했던 그는 형장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잊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스스로 존재하시고, 무한히 흠숭하올 천지만물의 대주재이신 천주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여러분은 모두 회개해서 여러분의 근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근본을 어리석게 멸시와 조소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당신들이 수치와 모욕으로 여기는 그것들이 나에게는 곧 영원한 영광이 될 것이오!”-2007년 의정부교구 주보 최홍준님의 글에서 발췌)

  그분 일상의 삶은 대학자이지만 평범한 사람들 수준에 맞추어 주교요지를 쓰시고 누구한테나 교리를 가르쳐주시고 그 사람 수준에 맞추어 이해할 때까지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정약종 순교자는 한글로 쓴 상·하 두 권의 교리서 “주교요지”를 펴낼 만큼 교리에 밝은 신자였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바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 순교자였다......교회의 여러 책들을 인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태서 아주 명백하고 알기 쉽게 쓴 이 교리서는 부녀자나 어린이들까지 펴보기만 하면 환하게 알 수 있고, 의심나거나 모호한 데가 없었을 정도였다. 2007년 의정부교구 주보 최홍준님의 글에서 발췌)

  황일광 알렉시오 성인께서는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인은 백정출신이셨는데 정약종을 만나서 천국을 본 것입니다. (중략) 정약종님은 이렇게 훌륭한 관계를 맺고 사셨던 분입니다.

우리도 정약종님처럼 일상의 삶 속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순교는 일상의 삶에서 민감하게 깨어서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인내하고 극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우리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 안에서 민감하게 깨어서 성령의 힘을 입어 감사, 비움 나눔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번 순교성월에는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십시오 자신과의 화해를 먼저 하십시오. 내 잘못도 부족함도 상처도 다 지나간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이태석 신부님처럼 순교의 삶을 사신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 8월 16일에 선종하신 대전교구의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님도 순교의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수녀원 공문에 별첨으로 그분의 유서가 왔는데, 그분의 순교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이렇게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두메꽃 외딴 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지금’, ‘여기서’ 잘 살아야겠습니다.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남기셨던 글을 읽어드리면서 강의를 끝낼까 합니다.

여러분, ‘미소치명’하십시오.

 

 

  (고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천국 가는 여행 준비 피정을 마치면서' 를 올립니다.
이 편지는 선종하시긴 전 5일전(8/11) 작성하시고 하루전(8/15)에 추가, 수정하신 것을 편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수정, 추가내용을 말씀하실 때는 기력이 다하셔서 말씀하시기가 힘들어 내용만 말씀하시고 잘 편집해 줄 것을 원하셨으므로 겹치는 부분만 편집자가 임의로 편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천국 가는 여행준비 피정을 마치면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드리는 글

 

서산석림동 본당 주임신부 / 방윤석 베르나르도

 

사랑하는 서산 석림동 신자 여러분,

 

여러분이 보고 싶어 8월 19일 제 영명 베르나르도 축일 행사를 하려 하였으나 의사의 권고에 따라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2012년 4월 11일 정기진단 시 대전성모병원에서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본당 설정 25주년을 맞아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저를 건강체로 알고 있던 모든 신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암이 거의 스무 군데나 퍼져 1년 생존율 40% 이하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와 방사능치료를 하느냐 아니면 자연 치료방법인 활원운동으로 하느냐는 큰 갈등에 빠졌습니다. 병행치료가 안 된다 하여 활원운동으로 과감히 택했습니다. 저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암으로부터 오는 통증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제 일생동안 베풀어 주신 무한한 사랑에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저는 6. 25 전쟁 중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피난 가시다가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가를 모릅니다. 수백만 명이 죽어가는 전쟁 중 어린 갓난아기를 살려주신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드려야 되겠습니까? 저는 소년 시절을 시골에서 지냈습니다. 땔감을 마련할 때면 독사, 송충이, 벌이 우글거리는 데서 나무를 했습니다. 그런 위험에서 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시골 생활을 통하여 일생 아름다운 추억과 마음의 고향을 갖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학교를 고등학교 때 입학했습니다. 77명이 입학하여 졸업자는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수시로 쫓겨났습니다. 저는 여기서 자신을 억제하는 것과 인내력을 키웠습니다. 이 얼마나 큰 덕행입니까? 대신학교 입학하자마자 아버님의 실직으로 부제가 될 때까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방학 때 공사장을 다니며 막노동도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날품팔이로 벌어다 주시는 돈으로 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난을 체험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느님께서 저를 사제직에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군종교구에서 군종장교 후보생 제도를 신설했으니 지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사병으로 군대 안 가고 신부 된 뒤 장교로 임명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 때 군대 3년 안 가고 6년 만에 신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25세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감사할 일입니까?

 

저는 사제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리고 사제생활 37년을 통하여 따뜻한 마음과 온갖 열정으로 사목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청양 줄무덤 성지 조성 작업과 해외교포사목도 했었습니다. 홍보국장 교구 산하 12개 사도직 단체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쌍심지 초를 만들어 특허청에 실용신안 등록도 했습니다. 대전평화방송FM을 설립하였고, 천주교 주일 강론 ‘3분간 전화로 듣는 말씀의 전화’를 개설해서 94년부터 암 판정 시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운용해 왔습니다. 아무도 이루어낼 것 같지 않았던 사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 암 투병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느님과 나와의 만남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근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면형무아((麵形無我: 성체 안에 내가 녹아듦)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하느님 품 안에서 만날 것입니다. 저는 일생을 하느님의 은총과 감사에 싸여 지냈습니다.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아직은 하느님께서 부르시지는 않는군요. 그동안 천국 가는 준비 피정을 충분히 했으므로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우리 본당신자 여러분 그리고 저를 사랑하시는 주교님들 이하 교구 신부님들과 저를 아는 모든 신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기도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성화같은 기도 때문에 하느님께서 머뭇거리시는 느낌입니다. 저는 더 있다가 오라면 더 있다 가고 천국에서 너 같은 사람 필요하니 당장 오래도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조선시대 순교자 백정이었던 황일광 알렉시오는 ‘세상에서 나는 이미 천국을 맛보았는데 순교하면 그보다 더한 천국이 영원히 지속된다니 얼마나 그 기쁨이 크겠는가?’ 하면서 웃으면서 순교했습니다. 저도 그런 믿음으로 하느님께 갑니다. 저를 위해 그동안 기도를 드려주신 분들과 헌신적으로 수고해 주신 간병인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루카 22,42)

아멘. 감사합니다.

 

여러분 천국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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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윤석 신부님의 주일강론 한 편 옮겨 붙입니다.

 

제1독서 : 지혜서 3,1-9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8,31ㄴ-39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 음 : 루카 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제 목 : 순교자들의 유언

 

우리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순교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굳건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과 죽은 다음 내세가 분명히 있다는 철저한 믿음입니다. 순교자들은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려도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러기에 늘 은총의 이끄심을 체험하였고, 고문과 협박을 이겨내고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순교자들의 편지와 유언 등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 우선 어머니가 아들에게 타이르는 말씀입니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처녀로서 충남 덕산(德山) 사람 홍 지영의 후처로 들어가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전처 소생의 아들 홍필주(洪弼周) 필립보를 영세시키고 나중에 아들과 함께 잡혔습니다. 고문을 받아 아들의 마음이 약해지려 하자 감옥 앞을 지날 때 창살 앞으로 손을 내밀어 멈추게 한 다음, ? 얘야, 우리 필주야, 오주 예수께서 너의 머리 위에 계시면서 너를 내려다보신다. 네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 소경과 같이 어리석게 네 영혼을 마귀에게 주려고 하느냐? 너와 내가 주를 위하여 이렇게 벌써 여러 달째 고생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올 영원한 天福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나와 함께 영원한 천국으로 먼저 가서 할머님과 네 누이와 처를 기다리자. 사내가 용맹하고 굳세어야 하지 않겠느냐? 보아라, 여기 많은 여자들이 다 우리 主를 위하여 감심으로 죽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다. 너도 잠깐 지나가는 세상을 생각치 말고 영원한 天福을 생각하라. 오늘 형리 앞에 가서 지금까지 약하게 먹었던 마음을 굳세게 증명하여라.? 이 말을 들은 아들 필주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잠시 제가 마귀 유혹에 빠졌나 봐요. 관장 앞에 가서 그전과 같이 견디겠습니다.? (그리하여 필립보는 어머니 뒤를 이어 28세에 순교하였습니다.) 강완숙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훈장-여교사-이며 주문모 신부를 모셨던 분으로 교회사에서 별칭 여걸로 통합니다. 40세에 순교하셨습니다.

 

* 딸이 친정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순이(李順伊) 루갈다가 옥중에서 쓴 글입니다. ? 어머니, 저에게 죽음이 닥쳐왔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천주의 사랑에서 나오는 명령에 거스르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딸인 저는 어머님을 위하여 천국과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열어서 무한한 즐거움의 값을 미리 가져다 드리려고 먼저 가려 합니다. 이제는 모든 친척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영원히 즐기게 될 것을 바라는 것 외에 무슨 희망을 갖겠습니까? 머리에는 영원한 행복의 관을 쓰고 마음은 천상의 모든 즐거움을 맛보면서 어머님을 이끌어 영원의 고향으로 모셔 들일 것입니다. 할 말 많으나 경황이 없어 이만 붓을 놓습니다. ? (이 루갈다는 꽃다운 나이 20세에 순교하였습니다.)

 

*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루갈다의 동생 이경언(李景彦) 바오로가 아내에게 쓴 옥중편지입니다. 그의 아내는 외인 출신으로 시댁 식구들이 잡혀 순교하여 패가 망신하게 되므로 자주 가출하여 남편을 무던히도 괴롭혔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쓴 편지입니다. ?나의 아내여, 다 용서해 주오. 나를 용서해 주오. 나 같은 남편이 또 어디 있겠소? 당신에게 사죄할 말은 붓으로도, 말로도 다할 수 없소. 이제 나는 죽음 앞에 다다랐소. 이제부터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소. 뉘우치고 한 되는 생각만 가슴에 가득할 뿐이오. 비록 내가 당신의 남편된 의무를 옳게 다 못했다 하더라도 만일 내가 천국에 올라가면 당신을 위해 전구해 드리고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도록 기구해 드리리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허락된 행복을 전하기 위한 심부름꾼으로서 당신을 맞아 손에 손을 잡고 영원한 즐거움에로 인도하리다. 내가 또 한 가지 당신에게 간절히 권고하고 싶은 것은 무슨 일에든지 천주의 명령에 복종하고 지나간 일을 통회하며 이 세상을 꿈세상으로 여기고 영원한 세계를 참 고향으로 여기시오. 여보 당신도 지내 보았으니 알겠지요.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귀하게 알 것이 또 무엇있겠소 ? 며칠이 지나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마지막이외다. 이제야 나는 처음 깨달았소. 무엇이든지 조그마한 일에라도 천주의 섭리대로 할 것이지 사람의 계획이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소....... 이 세상에서 당신의 지팡이가 되고 기둥이 될 아들 정의와 그 누이를 부디 잘 기르고 가르쳐서 나의 뒤를 따라 오도록 해주시오...... 머지않아 주의 곁에서 영원히 만날 것이니 쓸데없이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재판소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오. 이만 붓을 놓소. 당신의 지아비 바오로?

 

* 순교를 앞둔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이르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역시 이경언의 편지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천주의 은혜로 내가 너희들의 아비가 되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철나기 전에 이 아비는 허물이 많아서 너희들에게 아비노릇을 다 못하였다. 너희들 앞날을 위하여 끼쳐 줄 아무런 덕도 없고 재산도 없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그러나 두어가지 유언만 남기고 가노니, 충실하게 천주의 명령을 잘 따르고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 하도록 힘쓰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공손하고 친절해야 한다. 만일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착한 길을 닦았다면 반드시 아버지가 가는 천당에 올 수 있다.......할 말은 많으나 종이와 붓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심한 형벌에 내 다리는 으스러지고 머리에는 형틀이 씌워져 있어 고개를 들 수 없고 손이 떨려 이 이상 더 쓸 수가 없다. 다시 말하노니 착하게 한평생을 마치고 거룩한 죽음을 맞기를 천만 번 바라마지 않는다.? (이 바오로는 37세에 순교하였습니다.)

 

* 다음은 파리외방전교회 불란서 신부님이 이역만리 본국에 계신 부모와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성 정 샤쓰땅 신부님께서 자수하시기 직전에 쓰셨습니다. ? 가장 사랑하올 부모님, 주의 평안을 비옵나이다...... 저의 영혼은 천주께 바쳐진 것이오니 만일 이때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것이 될 수 있다면 ! 부디 저의 행복을 슬퍼하지 마시옵고 천만 번이나 감사하여 주시옵소서. 아, 사랑하올 아버님, 어머님, 형제, 자매, 친구들이여, 아마도 이것이 저의 마지막 편지일 것 같사오니, 부디 저의 마지막 인사를 받아 주시옵소서......이 세상의 재물에는 혜택을 받지 못하였사오나, 십자가에 가득한 이 축복받은 전교지방에 저를 불러주신 천주님의 섭리를 천만 번이고 감사하고 있나이다. 이제 곧 떠나가야 하겠기에 자세히 쓸 수가 없나이다. 죽기 전에 붓을 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즐겨 상서하오리다. 천국에서 기다리오리다. ? (36세에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본국에서 뒤늦게 전해들은 들은 그의 절친한 친구 구노는 친구의 순교를 기리는 뜻에서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는데 그 유명한 ‘구노의 아베마리아’입니다.)

 

* 이번에는 어린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리델 신부가 안드레아라는 교우집에 들어가려 할 때 안에서 어린이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역시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12세된 장녀 안나가 어린 남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얼마 안 있으면 신부님하고 아버지, 엄마를 잡으러 올꺼야. 그리고 우리들도 데리고 가서 ‘천주교를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거다.’ 하고 말할거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니? ” 그러자 장남이 말했습니다. “난 이렇게 말할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할 거예요. 저는 천주를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제 목을 베면 천주께 갈 거예요.’ ” 작은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관장에게 이렇게 말할거야. ‘난 천당에 가고파요. 나으리도 교우면 천당에 갈텐데 교우들을 죽이니까 지옥에 갈 거예요.’ ” 그러니까 안나는 두 동생을 껴안으면서 말했습니다. “좋다. 우린 모두 죽어서 아빠 엄마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천당에 갈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려면 천주께 기도해야 된다. 매를 많이 맞을테니까 말야. 우리 머리칼과 이와 손을 뽑고 굵은 몽둥이로 때릴거야. 신부님이 그러시는 데 기도를 잘하지 않으면 그걸 견디지 못할거래.” 얼마 후에 두 동생 중의 나이어린 동생이 엄마에게 가서 “엄마 ! 애기도 죽일꺼야 ” (그의 어린 동생은 생후 14개월 밖에 되지 않았었습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역본 下 448쪽> 참으로 기특한 아이들입니다.

 

*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보내는 당부말씀입니다.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인 ?교우들 보아라.?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大事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賞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라노라. 잘 있거라. ? (25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순교자들의 유언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순교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순교자의 원형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순교란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 즉 수고·수난·죽음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도 이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우리 한국 순교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순교자의 전 생애는 순교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잡히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 순교자들은 어려움 중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가산이 몰수되고 산중으로 쫓기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중에서도 애덕을 실천하여, 다른 비신자 동네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생겼어도 신자들은 굶어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 교회 공동체와 흡사하였고 이에 감동받은 외인들이 자진 입교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셋째로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가 많을수록 신자가 더욱 많이 늘어났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테르툴리아누스 교부가 말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박해란 무엇일까요? 천주교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들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으십시오. 그들은 박해자들을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했으며 끝까지 인내로이 설득했습니다.

 

* 현대적 의미의 순교란 무엇일까요? 순교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기꺼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바칠 일은 없으므로 작은 순교를 해야 합니다. 본능의 유혹 앞에서 참아야 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으로 견디어 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부부부터 시작하여 자녀, 형제, 친구, 교우들 간에 서로가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아집과 편견, 폭력 등으로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 9월은 이 땅의 순교자들을 더욱 기억하고 공경하는 달입니다.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을 비롯하여 성인반열에 오르지 못한 순교자들을 기억위하여 기도하며 그분들의 삶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때입니다. 순교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교 영성은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순교의 기본자세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매일의 기도와 선행, 그리고 성사생활에 충실함으로써 그분들의 삶을 본받기로 합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