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힐링 좋지요, 하지만 살아가려면 깨져야 해요"

김레지나 2012. 8. 24. 22:52

"힐링 좋지요, 하지만 살아가려면 깨져야 해요"

'천주교 베스트셀러 작가' 영성 상담가 홍성남 신부, '화나면 화내고…' 펴내조선일보|이태훈 기자|입력2012.08.24 03:16|수정2012.08.24 11:33

"'힐링' '치유'도 '중독'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요. 자칫 자신이 직면한 세상의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자폐'로 흐를 수도 있어요."

사회 전체가 '힐링 앓이' 중이다. 서점에 가도, TV를 틀어도 모두가 갑자기 '힐링'과 '치유'를 말한다. 하지만 22일 오후 천주교 서울 가좌동 성당에서 만난 영성심리상담가 홍성남(58) 신부는 "휴식과 위안은 상처에 붙이는 반창고처럼 일시적 효과가 있지만 문제와 맞서 싸울 무기를 주진 못한다"고 강조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고, 책이나 대중 행사를 통해 감정적 치유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늘 그럴 수는 없잖아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밉든 곱든 이 사회 속에서 계속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보통사람이니까요."

↑ [조선일보]최근 책‘화나면 화내고 힘들땐 쉬어’(아니무스)를 펴낸 천주교 영성심리상담가 홍성남 신부는“최근 우리 사회의‘힐링’열풍이 위안과 편안함에 대한 일종의‘중독’을 만들어내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과 부딪혀 싸워 이길 수 있는 마음 근육(心筋)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마음 근육'을 길러라

홍 신부는 최근 새 책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아니무스)를 펴냈다. '불안과 분노의 뒤에 숨은 자신을 바로 보고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이 책은 한 달 만에 벌써 1만2000권이 나갔다. 5만3000권 넘게 나간 첫 책 '벗어야 산다'에 이은 '두 번째 속풀이 처방전'이다.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라'는 홍 신부의 이 단순한 메시지에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홍 신부는 천주교 교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다. 천주교 평화신문에 신자들의 일상 문제를 풀어주는 영성 상담 칼럼 '아 어쩌나'를 160회 넘게 연재하며 본당 사목을 하는 틈틈이 특강과 강연을 했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마음을 앓는 사람들과 만나 왔다.

홍 신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마음 근육(心筋) 운동'이다. 처음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관심과 인정을 받으며 마음의 체력을 회복한다. 그 뒤엔 불편한 사람이나 상황과 조금씩 관계를 맺으며 이겨내는 방식이다. "사람이나 상황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쪽으로 바꿔가는 거죠. 역도 선수들이 조금씩 더 무거운 것을 들어 근력을 쌓아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예요. 적절한 분노, 적절한 야망, 모든 감정을 골고루 발달시켜야 역경을 이겨낼 준비가 되는 겁니다."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라

마음 근육을 기르는 데도 전제가 있다. 먼저 자신을 바로 보고, 약하면 약한 대로 또 강하면 강한 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시련을 겪을 때마다 모든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려버립니다. '전생에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는 거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 원래 쫙 깔린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니까요."

그런 면에서 홍 신부는 힐링 바람을 타고 '마음을 비워라' '집착을 끊어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 같은 종교적·윤리적 '명령'들이 맥락을 잃은 채 전달되는 현상을 "위험하다"고 여긴다. "부상을 입어 몸을 가누기도 힘든 사람에게 전력 질주하라고 다그칠 수는 없지요. 역경이 있으면 인간은 당연히 약해집니다. 약해진 자신을 몰아붙이거나 단죄하면 안 돼요.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한 발자국씩만 나아가면 됩니다."

전쟁 같은 삶, 소리지르며 삽시다

홍 신부의 영성 상담이 힘을 갖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5년 반 동안 사목한 가좌동 성당을 떠나 다음 달 중순부터 중견사제 교육을 받는다. 가좌동 성당은 모래내시장 옆 뉴타운 개발지구, 집들이 철거된 커다란 공터 끄트머리에 있다. 재개발에 휩쓸린 지역에서 사목 하는 것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아는 심리치료기법을 전부 동원했지요. 전쟁 같은 현실을 이겨내는 데는 역시 '해소'가 최고 명약(名藥)이더군요. 그중에서도 '소리지르기'가 최고예요." 한밤중에 철거를 앞둔 빈집 골목을 걸으며 "야 이 나쁜 놈들아~" 하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미 아무도 안 살아서 다행이지 사람이 있었으면 '저 신부가 드디어 맛이 갔구나'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기도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불면증, 피부병, 대상포진에 시달렸어요. 근데 막 욕하고 소리질러 보니 몸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힘도 생기더라고요."

홍 신부는 "화나는 일, 미운 사람이 있으면 집에서도 두꺼운 겨울 이불 같은 걸 뒤집어쓰고 욕하고 소리질러 버리라"고 했다. "힘겨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고, 그 힘을 얻는 건 우선 앓는 마음을 해소하는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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