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6.3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신명4,32-34.39-40 로마8,14-17 마태28,16-20
삼위일체 하느님
오늘 6월 예수 성심 성월 첫 주일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계속되는 대축일 축제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란 체험적 고백입니다.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해 성부를 만난다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가슴으로 체험하여 깨닫는 진리를
사랑 없이 머리로 해명하려하니 힘든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은총 가득한 6월 예수성심성월에
삼위일체 대축일과 더불어 저희 수도공동체에 참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서울 대교구장님으로 임명되신 염 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님께서
저희 수도원에 피정을 오셨습니다.
어제 대주교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눈 유쾌한 덕담도 참 즐거웠습니다.
“대주교님은 하느님께서 예수성심성월에 저희 수도공동체에게 보내주신
참 좋은 선물이십니다.
저희에겐 큰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주교님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Amen. veni, Domine Jesu, 묵시 22,20)’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멘. 오십시오, 염 대주교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사랑의 가슴 활짝 열고
대주교님을 환대하는 공동체 형제들의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이십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 사랑의 선물들입니다.
이 신록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자연 역시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감사와 찬미입니다.
사랑은 개방과 소통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바로 개방과 소통의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개방과 소통이 살림의 길이라면 반대로 폐쇄와 불통은 죽음의 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을 낮추어 활짝 개방하여 소통하십니다.
오늘 1독서의 하느님의 개방과 소통이 놀랍습니다.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개방과 소통으로 세상에, 나라에, 교회에, 공동체에, 또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하시는 성부 하느님이신지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대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는 자체가 참 은혜로운 기적입니다.
비상한 기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음이 하느님의 은혜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라.”
상처나 나쁜 기억이 아닌
주님께서 행하신 크고 작은 사랑의 기적을 마음에 새기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마음의 치유와 평화요 행복과 기쁨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성부 하느님 사랑을 깨달아갈수록 개방과 소통의 문이 되고
반대로 하느님 사랑에 무뎌질수록 폐쇄와 불통의 벽이 되어버립니다.
문이 되어갈수록 영육의 병도 줄어들지만 벽이 되어갈수록
영육의 병도 늘어납니다.
하느님 사랑의 개방과 소통으로 우리 모두 활짝 열린 문이 되어
영육의 건강을 회복하는 이 거룩한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시간입니다.
사랑은 나눔과 비움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바로 나눔과 비움의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나눔과 비움입니다.
하느님 나눔의 절정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칭호는 인간존엄성과 품위의 기초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아주 분명해 지는 신원입니다.
바로 성령의 선물이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성령입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 역시 성자 예수님처럼
“아빠! 아버지!”하고 외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성자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하여 우리가 겪는 고난은 그분과 함께 겪는 고난이요
장차 그분과 함께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이 모두가 성령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나누시고 비우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매일 미사를 통해
사랑의 주님은 끊임없이 당신 사랑을 나누시고 비우십니다.
어제 실상사 주지이자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 본부장’인
도법 스님의 인터뷰기사가 신선한 통찰이었습니다.
“인생은 원래 고단하고 아파요.
부처도 아프고 고단했어요.
그렇다고 부처는 불안해하지 않았지요.
그게 우리와 다른 점인데 아픔이 없으면 인생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게 진리입니다.
그러니 애써 살아야 한다고 받아들이세요.
그럼 한결 가벼워집니다.
저는 농반진반으로 그래요.
난 자포자기한 인생입니다.
…쉽고 편안한 인생은 없어요, 다 망상이에요.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 우리를 속게 만든 거죠.
무소유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꽃은 향기로 비우고 향기로 충만하다.
나비는 춤으로 비우고 춤으로 충만하다’는 말이 있어요.
꽃이 향기를, 나비가 날갯짓을 독점하지 않고 나눈다는 뜻입니다.
비우고 나누는 게 무소유죠.”
부처 대신 예수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비우고 나누는 것이 무소유라는 통찰이 참 은혜롭습니다.
아무 것도 갖지 않는 정태적인 무소유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누고 비우는 역동적인 무소유의 개념이
저에겐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바로 비우고 나누는 무소유의 하느님이요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의 은총이
우리 또한 주님을 닮아 나누고 비우는 역동적 무소유의 삶을 살게 합니다.
사랑은 환대와 섬김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바로 환대와 섬김의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를 잘 환대하시기 위해 모든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을 개방하여
우리를 환대하시고 섬기시는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심부에
24시간 가슴 활짝 열고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를 환대하는 예수부활상이
바로 환대와 섬김의 모범이신 성자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은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시며
마음의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또 주님은 이 거룩한 삼위일체 미사를 통해 우리를 환대하시고 섬기십니다.
사랑으로 환대하시고 생명의 말씀과 성체로 섬기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 복음의 백미이자 결론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늘 우리의 영원한 길 벗, 도반이 되어
우리를 환대하고 섬기시겠다는 주님의 결연한 약속이십니다.
바로 매일의 은혜로운 미사를 통해 깨닫는 진리입니다.
바로 주님의 환대와 섬김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주님께 대한 환대와 섬김이요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에 대한 환대와 섬김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당신 수도형제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성규53,1a).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개방과 소통이 성부이신 하느님 사랑이요,
나눔과 비움이 성령이신 하느님 사랑이요,
환대와 섬김이 성자이신 하느님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목되는바 모세와 예수님의 공통적인 명령입니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갈수록 저절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마침 어제 읽은 중국의 고전 <사기>에 나오는 좋은 글귀가 생각납니다.
바로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心知其意;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학(好學)’은 하는데 ‘심사(深思)’가 부족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창의성 역시 호학(好學)과 더불어 심사(深思)의 집요함에서 나온다 합니다.
즐겨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하느님 사랑을 깨우쳐 알 때
저절로 말씀의 실행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고백에 성호경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온 몸과 맘에 각인하며
성호경의 기도를 바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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