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9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레11,18-20 요한7,40-53
"하느님 체험"
하느님 체험이 우리를 변화시켜 깊고 넓은 내적 삶을 살게 합니다.
비상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삶의 진선미,
신망애 체험들 모두가 익명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공동전례 기도 역시 하느님 체험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면서
자기한계를 넘어 부단히 하느님을 향해 업그레이드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은 순전히 은총입니다.
이런 은총이 아니곤
도저히 선입견이나 편견의 자기한계를 넘어 자유로울 수 없으며
참된 삶의 지혜를 지닐 수도 없습니다.
다음 분도 규칙의 말씀도 하느님 체험을 반영합니다.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규칙; 머리말48)
삶의 현실을 도피하지 말고 직면하면서 주님을 체험할 때
마음은 넓어지고 깊어져 사랑의 감미로써
감사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권위와 힘은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에서 나옵니다.
하느님 체험에서 절대적인 것이
바로 하느님과의 내밀한 대화의 기도입니다.
부단한 하느님 체험의 자기초월로 내적시야를 넓혀 주는 기도입니다.
오늘 1독서는 위기에 처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하느님 체험이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의 내적 힘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하느님 체험을 통한 내적 자유와 평화, 위로가
우리의 모든 내외적 역경과 시련을 통과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또한 주변인들의 반응을 통해
진정 하느님 체험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이시다.”
“저분은 메시아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이런 주변인들의 반응을 통해
예수님의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이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반면 신학 지식은 많았을지라도
율법과 선입견에 갇혀있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
바로 빈약한 하느님 체험을 반영합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니코데모에 대한 이들의 대답이 이를 입증합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바리사이들의 반응은 우리 모두의 한계요 영원한 숙제입니다.
진정 하느님 체험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선입견, 편견의 자기(ego)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을 체험한 우리 모두를
자기(ego) 감옥에서 해방시켜
새 하늘, 새 땅의 깊고 넓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다음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은
바로 주님께서 하시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겠다.”(에제36,26).
아멘.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이수철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은 발견이자 선택이다. (0) | 2011.04.17 |
---|---|
돌아가라, 그대들의 저 빛나는 일상으로 (0) | 2011.04.17 |
"봄(見 )-깨달음(覺)-앎(知)" (0) | 2011.04.09 |
진정한 배짱과 뚝심 (0) | 2011.04.09 |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 (0) | 2011.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