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4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이사65,17-21 요한4,43-54
"새 하늘과 새 땅"
인터뷰 기사 중 어느 개신교 신학자의 교회비판에 공감했습니다.
“성서 안의 두개의 큰 수맥은 ‘계약 전통’과 ‘창조 전통’이다.
계약 전통의 전승은 가난한 자의 해방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고,
창조 전승은 자연이란 생태계에 임재한 신을 훼손하지 말고
찬양하고 노래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가 가져야 할 것은
계약 전통 못지않게 창조 전통에 입각해서
피조물의 신음에 대해 예민한 감성과 자기 절제, 비움,
고통 받는 생명에 대한 연대적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자랑은 이 두 전통과 더불어
교회전통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 전통을 통합하여 하나로 살았던 성인이
종파를 초월해 존경 받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만일 계약전통, 창조전통, 교회전통이 결여된 기복적인 교회라면
그리스도교의 교회로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세 전통을 고스란히 구비한 우리 수도원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마음 편히 찾는 수도원이요,
자연의 땅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여 노동하는 수도승들이요,
전례를 통해 교회전통에 충실한 수도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역시 성무일도를 통해
자연만물과 함께 피조물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함으로
시작한 수도승들입니다.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모든 것과,
섬들과 거기 사는 모든 이들도 함께 주님을 찬미하라.”
“주님은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에서나, 깊은 물속 어디서나 이루시도다.”
창조와 진화, 창조와 구원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적 진화요 창조가 바로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우주만물이요,
창조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니
창조가 바로 구원입니다.
한 번으로 끝난 창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진정 창조의 하느님을 믿어 새롭게 된 자들에게는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입니다.
끊임없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을 감지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한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믿음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침묵 중에 일하시는 하느님의 표징들을 보며
저절로 샘솟는 기쁨의 찬미와 감사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참 고무적인 주님의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이어
우리를 즐거움과 기쁨으로 창조하리란 말씀이고,
바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수도원을 당신의 즐거움으로,
우리를 당신의 기쁨으로 창조하시는 주님이시며
바로 이게 주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한 창조와 구원입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났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는 살아났으며 그와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합니다.
말씀-믿음-구원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창조와 구원활동을 펼치십니다.
사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표징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세상과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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