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13 사순 제1주일
창세2,7-9;3,1-7 로마5,12-19 마태4,1-11
"사탄아, 물러가라"
어떤 고승의 깨달음의 말씀보다
절절히 와 닿는 어느 세 분 자매님들의 말씀이
지금도 화두처럼 뇌리에 생생합니다.
말 그대로 인생광야 한복판에서 치열히 살아가는
‘믿음의 戰士’인 자매님들입니다.
“앞으로는 기도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매일 남편과 하루의 일이 끝나면 함께 기도합니다.
수녀원에 있을 때 보다 더 기도 많이 합니다.
낮 12시부터 3시까지 매일 3시간씩 성체조배를 합니다.”
“몸 하나 먹고 생존하는 게 이리도 힘듭니다.”
저희 수도원에는 금요일 꼭 시간에 맞춰 오시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행려자분들이 있는 데
저는 이분들을 대할 때 마다 구도자들을 대하는 듯
산다는 것의 엄숙함을 깊이 배우곤 합니다.
어느 분의 고백과도 같은 한 구절의 글도 생각납니다.
“세상을 살면서 참 막막할 때가 있다.
밥벌이가 곤란해서 그럴 때도 있고,
하는 일에 신명이 돋지 않아서 그럴 때도 있다.”
모두가 고단한 광야 삶에 대한 토로입니다.
살기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일해야 함은 엄숙한 현실입니다.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사는 것, 먹는 것, 일하는 것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여 세상 널려있는 게
일터요, 밥집의 식당이요, 밥벌이의 수단이 된 교회당들입니다.
이 세상 광야에 희망을 잃고 좌절하여 방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빛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사순 1주일,
주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광야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살아야 합니다. 광야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 광야인생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인적이 없는 외딴 곳만 광야가 아니라
막막하고 암담할 때의 마음의 광야, 삶의 광야도 있고,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도 있듯이 도시의 광야도 있습니다.
옛날 수도승들은 순교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
하느님을 만나러, 악마와 싸우러 광야에 나갔지만
우리는 굳이 광야를 찾아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비단 수도자들뿐 아니라 깊이 들여다보면
하느님을 찾는 모든 구도자들이 ‘광야의 은수자’들입니다.
광야의 은수자들처럼 살지 않으면
참으로 살기 어려운
수도승 영성의 보편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바로 내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가 광야입니다.
내 마음 속 깊은 고독과 침묵의 자리가 광야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하느님 못 만나면 밖에서도 하느님 못 만납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샙니다.
지금 여기서 악마와의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밖에 나가도 이기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 광야에 하느님도 계시고 악마도 있습니다.
광야가 하늘나라입니다.
광야를 떠나선 하늘나라도 없습니다.
하여 광야 같은 수도원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수도원 광야에서 끊임없이 꽃처럼 피어나는 수도자들의 찬미입니다.
모든 ‘찬미의 사람들’은 그대로 광야세상의 꽃 같은 이들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수도원만이 광야가 아니라 온 세상이 광야이니 온 세상이 수도원입니다.
내 삶의 자리가 광야 수도원이니
모두 광야세상의 수도자 되어 기도 바쳐야 하늘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눈만 열리면 광야가 바로 하늘나라 수도원이요,
무수히 널려있는 하느님 축복의 선물들입니다.
얼마 전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저는 이를 감히 하느님 체험이라 명명합니다.
맑고 푸른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가슴 벌려 심호흡을 하는 중 떠오른 글에 참 행복했습니다.
“가슴에/담고 담아도/끝없는 별들,
가슴에/담고 담아도/끝없는 행복”
정말 이 행복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십자가의 길 중,
몰아치는 쌀쌀한 바람이 지난 후
쏟아지는 밝고 따뜻한 햇볕을 통해 체험한 하느님 사랑입니다.
“참/밝다/따뜻하다/위로부터 /쏟아지는 햇볕 사랑/
참/밝다/따뜻하다/위로부터/쏟아지는 하느님 사랑”
우리가 살고 있는 광야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광야에서 하늘나라를 살게 합니다.
겪어야 합니다. 악마의 유혹을 겪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신 주님처럼
성령의 인도 따라 살 때 악마의 유혹에 백전백승입니다.
도대체 유혹을 떠나 살 곳은 이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사실 유혹이 없이는 내적성장도 성숙도 없습니다.
평생 철부지, 미숙아로 살아야 합니다.
그 유토피아 이상향으로 꼽는 에덴동산에도 뱀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악마는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자리에, 십자가 뒤에, 내 마음 안에 숨어 있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도가 높은 곳에 악마의 유혹도 많습니다.
교활한 악마들은 결코 매력 없는 게으른 이들을 유혹하느라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고 충실한 매력적인 이들을 유혹하기위해 전력투구합니다.
유혹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열심히 산다는 반증입니다.
한 쪽 어깨 위에 천사가 있다면,
한 쪽 어깨 위에는 날 유혹하는 악마가 있습니다.
하와나 예수님이 들은 악마의 유혹은
바로 내면에서 들려온,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습니다.
우리도 때로 내면에서 이런 악마의 유혹의 소리들을 듣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우리 내면은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고
천사와 악마의 싸움터와도 같습니다.
하여 악마의 '유혹을 겪지 않게' 가 아닌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바치는 주의 기도입니다.
바로 이 광야 유혹의 중심에
악마의 온갖 유혹을 이기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자리 잡고 계심이
참으로 큰 위로와 힘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유혹과 수난을 당하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 드리세”
바로 이 주 그리스도님이 고마워
새벽 성무일도 시 우렁차게 초대 송을 노래한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창세기의 하와와 아담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예수님은 지체 없이 세 차례나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하와와 아담 부부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가
자기 식대로의 이분법적 선악의 판단 잣대입니다.
이 평생 원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악마의 유혹을 겪지 않게 해 주십사 기도할 게 아니라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악마가 유혹해도 거들 떠 보지 않으면
악마도 힘쓰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정 위태하다 싶을 때 예수님처럼 일갈하여 악마들을 퇴치하는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래서 평생 말씀 공부와 실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거룩한 교회의 성사들을 통해
하느님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광야에서 악마의 모든 유혹을
하느님 말씀의 무기로 물리칩니다.
하느님 말씀의 무기가 아니곤 악마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악마의 정체는 낱낱이 폭로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보다 더 좋은 분이 없는 데
도대체 하느님과 사는 분을,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어찌 사탄이 유혹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돌들로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악마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기 좋게 물리친 주님이십니다.
밤낮 사십일의 단식으로 시장하실 때에도
하느님으로, 하느님 말씀으로 충만하셨기에
빵의 유혹을, 탐욕을 이기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라는,
한 번 기적을 일으켜 보라는, 허영을 부추기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신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이시지
결코 우리의 욕구 충족의 수단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아끼시는 예수님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얼마나 통쾌한 주님의 승리인지요.
예수님의 3전 3승이요 악마의 3전3패입니다.
자기에게 절하면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교만의 유혹을 극복한 예수님입니다.
악마의 유혹에 빠져 밥에, 돈에, 기적에, 부귀영화에 영혼을 판 사람들,
영혼 없는 사람들 날로 늘어나는 추세가 아닙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살 때 이 말씀의 힘이 악마를 물리칩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곤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는 없습니다.
인생 광야 중심 한 복판에 유혹을 이기신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인지요.
만일 이 광야 인생 중심에 바라볼 희망의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어둡고 춥겠는지요.
그러니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힘없이 늘어진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다.
악마의 온갖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신 그분을 생각하면
낙심하여 지쳐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악마의 유혹을 이겨 낸 우리 모두를 천사들을 통해 시중들게 하시며 천사의 양식인 말씀과 성체로 배불리시어
광야의 사순시기를 풍요롭게 지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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