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침편지 고도원의 꿈 너머 꿈
지은이 : 고도원
펴낸곳 : 나무생각
출판일 : 2007년 4월 16일
2006년 말,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자리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불과 50여 년 전에 그 UN의 도움을 받았던 나라, 대한민국 사람이 선출된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교관의 꿈을 꾸었던 한 소년은 그렇게 자신의 더 큰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1944년 충북 음성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반기문 사무 총장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가 주특기였다. 모교인 충주고등학교에 보관된 생활 기록부에도 3년 내내 ‘수’만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공부가 주특기였던 그의 면모는 영어공부에서도 드러났다. 충주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 그날 배운 것을 무조건 열 번씩 써오라고 했는데, 그는 숙제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문장 전체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영어로 된 것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고 외워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영어에 미쳤구만, 미쳤어!”
그러다 보니 영어 실력은 자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고 1때는 같은 반 학생을 위한 영어 교재까지 만들 정도였다. 마침 충주에는 충주비료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미국인 엔지니어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미국인 엔지니어의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영어 회화를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반기문 학생이 가장 열심이었다. 당시 그를 가르치던 부인들도 영어로 된 것이면 뭐든지 달달달 외우고 다니던 그의 모습에 감탄 했다고 한다. 그가 미친 듯이 몰두했던 영어가 마침내 그에게 기회를 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고, 부상으로 워싱턴에 초청된 것이다. 미국 방문 중에 외국 학생들과 함께 워싱턴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만났다. 케네디 대통령이 장래 희망명을 묻는 자리에서 그는 “외교관!”이라고 크게 대답했다. 이듬해, 반기문은 서울 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하며 외교관으로 가는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외무 고시에 합격해 그토록 원했던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이에게 꿈은 두팔을 벌리고 다가온다.
‘내 꿈이 뭔가?’
‘내 꿈이 뭐였더라?’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조차 묻지 않았기 때문에 꿈은 잊혀져 있었다. 그러나 저 깊고 창고 속에서 잠자고 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잠자고 있는 그 꿈을 깨워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면, 분명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읽고 있는 것이다. 꿈을 잃어버린 것이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장님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 시력은 있으되 꿈이 없는 사람이다.”
꿈은 젊은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꿈도 사라진다고 믿는 것은 ‘꿈’과 ‘직업’을 혼돈하기 때문이다. 꿈은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후세에 남겨줄 유산이 될 수 는 있다. 그러므로 나이든 사람에게도 늘 꿈이 필요하다. 꿈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내 꿈이 뭐지?’
당장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그 대답을 준비해 보기 바란다. 꿈이 너무 작고 소박하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꿈이 너무 거창하고 황당하다고 민망해할 필요도 없다. 꿈이 너무 많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꿈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나이가 많다고 접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몸 한가운데에서 뛰고 있는 심장처럼, 당신의 가슴 속에 언제나 팔딱거리며 숨쉬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잠시 언급했던 카이스트 대학원생 강연장으로 다시 가보자. 나는 이 날 적잖이 실망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젊은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조차 “내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대답은 커녕 “백만장자가 되어 (나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한 학생의 대답이 나를 실망시켰다. 나는 소리 높여 말했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부터 꿈 너머 꿈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시대의 대통령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 중 한 대통령은 중학교 2학년 때 책상머리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적어놓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역정 끝에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만 있었을 뿐, ‘대통령이 된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꿈 너머 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IMF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과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보다 앞서 또 한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로인해 커다란 고초를 겼었습니다.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꿈 너머 꿈이 있었습니다. 5천년 역사를 이어온 이 나라의 가난을 털어내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하면 된다’는 꿈 너머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대통령이 된 그에게도 꿈 너머 꿈이 있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갈라진 이 한반도가 전쟁이라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 다시 통합되는. ‘평화통일’이라는 꿈 너머 꿈이 있었습니다.”
꿈 너머 꿈은 그런 것이다. ‘무엇이 되느냐’를 넘어서 ‘무엇이 된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왜’ 그것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이다. 장래 희망으로 의사나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된 다음에 뭘 하려고 하는가 ?”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다. 어쩌다 나오는 대답도 “돈을 많이 벌려고” “편하게 살려고”와 같은 자신의 안락과 평안만을 위한 답변이 고작이다. 꿈 너머 꿈을 꾸는 것은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나’에서 ‘이타적인 나’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백만장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타적인 발걸음을 한 번 더 내딛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 인류의 난치병을 없애는 데 일조하겠다는 포부도 좋겠다. 무엇이 됐든, 그것은 내 배 불리고 내 등 따뜻하게 하는 정도의 꿈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꿈 너머 꿈이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만 가졌을 때는 대입에 실패했을 때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되어 가난한 이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의사가 되지 않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길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무지개를 보는 사람이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을 내다보며 묵묵히 빗길을 가는 사람이다.
당신의 꿈 너머 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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