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중에 써서 환우카페에 실었던 글 붙입니다.
위대한 사람
나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큰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큰 아들을 임신하고 얼마 안 되어 지독한 감기가 걸려서 휴직을 했고, 작은 아들이 3살 때까지 6년간을 직장에 나가지 않고 애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며 지냈다.
결혼 전부터 나는 늘 아이들은 내 손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태교에 관련된 책을 읽기도 하고 아동 심리를 공부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는 그런 내가 별난사람이었다. 얼마나 극성스럽게 애들을 키우려고 결혼할 사람이 정해지지도 않았으면서 벌써부터 유난을 떠느냐고 했다.
애들에게 매일 밥해 먹이고, 좋은 책 읽어 주고, 좋은 음악 들려 주고, 잔소리도 현명하게 조절하고, 그런 사소한 것들을 즐겁게 생각하고 의미를 두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큰 의미나 업적은 되지 못할지라도 자식에게 바른 방법으로 애정을 쏟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도리이고 업적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애들을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고 어려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큰 아이가 태어난 후에 젖몸살을 지독하게 하면서도 모유수유를 18개월 동안 했다. 하지만 큰 아이를 제대로 먹이지도 별나게 가르치지도 못했다. 내 몸이 원래부터 약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잠을 잘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물한시간 이상을 잔다고 들었는데 큰애는 세이레도 안 된 아기적부터 어른들 보다 잠을 적게 잤다. 낮에는 자지도 않았고 밤에도 혼자 깨어 놀았다. 아무래도 어디 아파서 저러지 싶어 병원에 데리고 간 적도 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보시고는 체중은 정상적으로 잘 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두 돌이 될 때까지 낮잠을 안 자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밤에 스물 네 번 정도 깼다. 한 번씩 큰 아들과 같이 자본 적이 있는 친척들은 모두들 어찌 사느냐고 나를 위로했고 친정 엄마는 아들이 나를 고생시킨다고 투덜거리셨다. 낮에도 낯가림이 심하고 잘 안 먹어서 밥 먹이는 데 너무 애를 먹었기 때문에 동네 할머니들은 늘 “내 평생에 이렇게 키우기 힘든 애는 처음 봤다”고 하셨다. 나는 늘 잠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이유식은 물론이고 내 건강도 챙기기 힘들었다.
두 돌이 지나자 하루 밤에 열 번쯤 깨더니 세 돌 무렵부터는 하루 밤에 두 세 번씩 깰 뿐 잘 잤다. 하지만 잘 먹지 않는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전했다. 큰 애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한 때는 아이를 하나만 낳을까도 생각했었다.
큰 애가 두 돌이 지나니 아무래도 큰 애를 위해서는 하나를 더 낳아야지 하는 맘이 생겼다. ‘설마 큰 애처럼 잠 안자는 녀석이 또 나오랴?’하는 마음에서 둘째를 계획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가끔씩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는 잘 생긴 아기도 필요 없고, 똑똑한 아기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잠 좀 잘 자는 아기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시간 이상 통잠 자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잠만 잘 자는 건강한 아기라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확률상 큰 애처럼 잠을 안자는 아기가 또 나한테 생기기는 힘들 거라고 여겨졌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매일 밤마다 열두 번 이상씩 깨어서 젖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애 보다는 덜 깨고 조금 더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둘째인 점을 감안해서 키우기가 조금 수월한 아기를 보내주셨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몸은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고 오직 정신력으로 애들을 키우지 않았었나 싶다.
둘째를 낳고 잠 안자는 아이를 또 얻은 데 대해서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이유를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있었다. ‘아, 하느님께서 잠 안자는 아기를 어느 부모에게 맡길까 하고 고민하시다가 잠 안자는 아기를 잘 키워낸 경험과 실적이 있는 나를 딱 고르셨구나. 불공평한 일이긴 하지만 탁월한 선택이기도 하다. 내가 아니면 어느 엄마가 잠 안자는 아기를 둘 씩이나 참고 키워내리.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내가 참 대단한 엄마이긴 하지’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두 아들을 키웠고, 나는 휴직하고 아들 키우며 지낸 6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절이었다고 자부하면서 산다. 두 아들을 뛰어난 아이로 키워서가 아니라 ‘힘든 상황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가 4살이 되던 해에 복직을 했으니 한 숨 돌릴 만 할 때에 다시 힘든 직장생활을 시작한 셈이고, 애들을 전업주부들처럼 욕심껏 챙겨주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했다. 내가 암에 걸린 것도 한 해도 제대로 쉰 적이 없이 피로가 쌓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암에 걸린 후에는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편차가 너무 큰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에도 힘든 일이 있고 암 수술보다 더 많이 아픈 적도 많았었지만 하느님께 불공평을 호소하지는 않았었다. 그저 ‘예수님은 더한 고통이었을 텐데 어찌 견디셨을까?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의미로 잘 참고 봉헌한다면 좋을 일이겠지’라는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
전쟁의 고통이나 장기간 중병으로 누워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나 선천적으로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떤 유전학자가 말하기태어나면서부터 기형인 사람들은 인류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확률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질병을 어쩔 수 없이 짊어진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고. 세상에 있는 일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하느님이 그런 고통이 있도록 내버려 둔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고통도 사람마다의 견디는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다면 크고 긴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이야 말로 보통 사람들 보다 큰 능력을 발휘하는 위대한 사람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 별반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부족한 면을 많이 갖고 있다 할지라도 고통을 참아낸다는 사실 만으로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훌륭하지 않을까.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자폐아를 둔 엄마,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눈물나게 불쌍한 사람들, 너무나 가난해서 아파도 약도 못 쓰고 버티는 사람들, 버려진 고아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 안타깝고 안쓰러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런 엄청난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친구분 딸이 유방암 1기로 수술을 받고 얼마 전에 항암치료를 마쳤다. 길에서 우연히 그 분을 만났는데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딸이 의사선생님 다리를 잡고 애들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1년만 더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면서 빌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유방암이 다른 암에 비해서 생존률이 비교적 높은 암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 친구분 딸처럼 힘들지는 않았었다. 엄마 친구분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놀랬으면 의사선생님을 잡고 그랬을까 싶어서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가 처음부터 곧 죽을 것처럼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슬퍼했더라면 어쩔 뻔 했는가? 아마 못 견뎠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느님께서 나의 고통을 담는 능력이 그 분 딸에 비해서 적기 때문에 처음부터 암에 대한 상식을 알게 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암을 얻은 후에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생겼다. 세상에는 나 같은 암환자들 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경을 딛고서 큰 일을 해낸 사람들을 존경한다. 자신의 자고 놀고 싶은 욕망을 참아가며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도 부러워하고 칭찬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기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해낼 여력이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동정과 불평을 얻을 뿐이지만 진정 위대한 사람들은 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그들의 의지’야말로 가장 경이롭고 대단한 것이 아닐까?
친구들 중 몇몇은 투병중인 나를 보며 위로를 얻는다고 말한다. 내가 그들을 위로한 적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자신의 고통이 적음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이리라 생각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로 기쁘다. “어머, 그래? 좋은 일이네. 위로 많이 받고 즐겁게 잘 살아.”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세상이 얼마나 살만하고 아름다운지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실감할 수 있겠지’라고. 그리고 나는 친구들 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면에서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또한 나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이 정도의 참을 만한 고통 쯤이야 저들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얼마나 다행한 일이야? ’라고.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나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고통이 있는 의미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위로’를 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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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빙점]의 작가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코는 7년동안 대소변을 못 가리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가 쓴 [빛 속에서]라는 책에서 옮겨 적는다.
{성서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다가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걸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서 예수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로 그런 것입니까? 본인의 죄 탓입니까, 그렇잖으면 부모의 죄 탓입니까?” 이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무자비한 언사인가? 이 말을 자기 앞에서 하는 것을 들은 맹인은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며 슬펐을까? 소위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 이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 인간에게서 항시 볼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우리 마음 속에는 이들 못지 않게 이보다 더 비열하고 옹졸한 생각이 있지 않을까?
정신 박약아나 장애인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진실로 우월감 없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한다면 그 사람은 차별 감정이 없는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드물다. 또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정신 박약이나 신체 장애는 누구의 죄입니까? 본인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답하셨다.
“본인이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의 부모의 죄도 아니며 다만 하느님의 뜻이 그렇게 나타났을 뿐이다.”
이렇게 확실히 대답하시고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몇 번이나 되풀이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폐결핵으로 요양을 했다. 처음에는 걸을 수 있었지만 점점 심해지더니 척추카리에스가 생겨 마침내 깁스 침대에 누워 7년 동안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후 3년 동안 요양을 한 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폐결핵과 문둥병은 죄가 많은 사람이 천벌을 받아서 앓는 병이래요.”
또 이런 말도 들었다.
“교만과 거드름을 부리다가 왼편 폐가 나빠졌고 색정으로 오른 쪽 폐가 나빠졌다.”
나는 본래 두 남성과 동시에 약혼한 일이 있는 나쁜 여자라서 무슨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의 성서구절을 읽었을 때 느꼈던, 눈 앞이 환히 밝아지는 것 같은 기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의 병도 하느님의 뜻이 나에게 나타난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땅벌레 같은 나까지도 어디엔가 쓰시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기쁨으로 가슴이 떨렸다.
매일 그저 천장만 보고 누워 있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자신의 존재란 정말 비참한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짐만 지워주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이렇게 신세만 지고 살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런 서글픈 생각은 줄곧 누워 있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이나 오래 앓고 있는 환자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픔을 모르는 건강한 사람들은 쉽게 이런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업신여기며 귀찮게 여긴다.
심지어 병자는 버릇없이 제 멋대로 군다느니, 몸이 불편하니 마음도 비뚤어졌다느니 하며 갖은 악담을 한다.
그렇게 천대받는 약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하느님께 쓰이기 위한 연장과 같은 존재이니, 지금 그렇게 누워만 있다고 서러워 마시오. 고통스럽겠지만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그렇게 나타난 것 뿐입니다.”
옛날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위로를 받았으며 힘을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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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고을에 좋은 글이 실려서 소개합니다.
나의 부활
장인숙 율리아 / 경동본당 빛고을 2007.4.29/제 1420호
온 세상은 봄의 따스함으로 대지가 꽃을 피우고 주님의 사랑이 자연 속에서 빛을 발하며 주님의 생명을 노래하고 있을 즈음에 올해도 어김없이 재의 수요일과 함께 시작한 사순적이 다가왔습니다. 사순절 동안,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미리 준비해두었던 수첩 속 계획을 실천하며 사순절은 지냈고 어느덧 덤덤히 부활의 날은 다가왔습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기에 열심히 죽기를 주님께 청했지만 순간순간 살아있는 저의 이기심과 욕망에 그저 주님의 자비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제가 직접 십자가를 지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나은 존재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지나고 하루 이틀 …,제 마음 한 구석에서 제 안에서 무수히 죽였던 제 이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다르다고 판단하고 비판하며 미워했던 이웃들, 바로 그들이 저의 주님, 저의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이 느껴지며 제가 죽인 예수님의 실체로 점점 다가왔습니다.
벗어버려야 할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권력과 재물과 명예가 있는 사람에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함께 했던 제 자신, 저보다 약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우쭐해 하며 무시하고 있는 제 모습이, 제 이웃들의 고통을 구경하고 그들에 대하여 자기의 죄로 짊어진 십자가라고 함부로 판단을 한 저의 차가운 마음이,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하고, 못을 박은 사람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아픈 마음에 함께 기도하고 아파하기 보다는 함부로 판단하며 비판하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니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하염없이 울면서 제가 죽였던 그 예수님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 또 하나의 예수가 되어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들과 함께 하겠다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진정으로 청해봅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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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님들.
제가 아는 환우 한 분은 치료 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의 치료에 대해 친하게 지냈던 직장동료가 웃으면서 한 농담 때문이었습니다. 그 농담을 생각하자니 복직해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너무나 쉽게 말하거나, 생각하기도 귀찮아하는 동료들이 줄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었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주위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건강으로나 여러분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보십니까? 고통에 공감(독일어로 mitleiden-함께 고통을 겪는 것)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한지요?
장인숙 율리아 자매님은 부활을 체험하는 은총을 받으신 겁니다.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는 부활신앙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겠지요. 또 은총으로 받은 깨달음 대로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깨달음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신 마더 데레사님의 거룩한 영성의 그림자라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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