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조명연 신부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김레지나 2018. 6. 29. 16:36

2018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친구 사이인 두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고 또 한 분은 무신론자였습니다. 무신론자인 형제님께서는 열심한 신앙인인 친구를 향해 하느님을 믿는다고 더 잘 되는 것 같지 않다면서, 오히려 믿지 않는 자신이 더 잘 살고 있지 않으냐고 따지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님의 사업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교만했었다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더욱 더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형제님이 건강진단을 했다가 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고 말하면서 남을 계속해서 원망하고 화를 내면서 추한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가능성이 많아도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작은 시련에도 좌절해서 결국 실패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시련 중에서 아주 작은 가능성만 보여도 곧바로 일어나서 성공적인 삶을 이뤄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외판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문 앞에서 거절을 당할 때마다 오히려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거절을 당하는데 왜 웃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제 경험에 의하면 평균 15번 정도 거절당해야 물건이 팔리더군요. 그래서 거절당할 때마다 물건 팔 때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삶은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삶입니다. 작은 가능성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기쁨의 삶입니다. 남과 비교하며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더 성장시키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고, 이 믿음을 통해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요. 그 믿음이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내용을 깨우쳐 주신 분입니다. 이렇게 두 분은 우리를 더욱 더 신앙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두 분의 모범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내 자신을 믿음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 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신용과 체면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그만큼 서로의 믿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앤드루 카네기).

 

인생에도 색깔이 있습니다("행복한 바보의 지혜로운 삶" 중에서)


인생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온종일 내리던 비가 멎은 다음에 찬란하고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만의 색깔이 아닌 일곱 색깔의 무지개처럼 사노라면 기쁨과 슬픔, 절망과 환희 그러한 것들을 겪게 마련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두렵다 해서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힘든 절망의 순간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의 존재와 가치는 더욱 성숙해지고 절망의 순간을 잘 대처하고 나면 삶의 지혜와 보람이 한 움큼 쌓이게 됩니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절망과 환희도 모두 나의 몫이라면 꼬~옥 끌어안고 묵묵히 걸어야 할 길입니다.


빠다킹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