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이건 뭐지? / 밀알의 비유 / 이근덕 헨리코 신부님

김레지나 2015. 3. 23. 19:39

이건 뭐지?

 

                                                                                                 이근덕(헨리코) 신부 | 교구 복음화국장
 

  우리는 굳이 농부가 아니더라도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이미 씨앗으로서의 생명력  잃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씨앗이라야 자신을 자양분으로 제공해서 새로운 생명을 위한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자라난 싹은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공급받아 무럭무럭 자라 나서 수많은 결실을 봅니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더 많은 생명을 낳습니다. 이는 하느님 이 창조하신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그 섭리 안에 존재합니다. 자신 안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희생이요, 죽음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부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 는 창조의 질서입니다.


  어느덧 사순 제5주일입니다. 이제 곧 주님의 수난이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는 더욱 가까워진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질서만 놓고 보더라도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서는 희생과 죽음이 불가피한데, 하물며 세상을 구원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데 있어서 어찌 희생과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며 당신 수난의 당위성 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은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인간적으 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들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수난과 죽음을 결연히 받아들이시는 예수 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숭고한 선언 앞에서 도리어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남아 있는 밀알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투영되어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 마치도 저의 초라한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듯 말입니다. 제자들도 그랬을까요?


  주님께서는 이를 아시는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고 미리 일침을 놓으십니다. 잔꾀를 부리고 피해갈 생각이라면 빨리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것이지요. 일찍이 제자들에 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게 진짜 십자가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주님은 이미 단호하십니다. 아무도 그분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분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오히려 제자들이 더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다가오는 성주간은 제자들의 마음으로 따라가 보려 합니다.

                                                                                        2015.3.22 수원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