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마음 / 이근덕 헨리코 신부님 /
가엾은 마음
이근덕(헨리코) 신부 | 교구 복음화국장
예전에 어린이 미사 강론을 할 때 아이들이 욕을 하는 것을 경계하도록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가 욕을 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입에서 뱀, 구더기, 지네, 송충이 이런 것들이 막 나온단다.” 그랬더니 유치부 아이들이 눈이 똥그래지면서 입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모 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한껏 멋을 부린 아름다운 사람의 입에서 징그러운 벌레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아마도 좀비 영화가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더럽고 추한 것이 그 벌레들일까요? 보이지 않는다고 마구 쏟아내는 욕설과 비방이 훨씬 더 더럽고 추할 것입니다. 벌레는 피하면 그만이지만 한번 들은 욕설과 비방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듣는 이를 힘겹게 만듭니다. 그러니 벌레 보다 더 나쁜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합니다. 특히 육신의 건강과 생명에 해가 되는 것에는 아주 민감합니다. 그중에서도 즉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독을 지닌 벌레나 전염을 유발하는 질병을 지닌 동물이나 사람들은 격리를 통해 접근을 차단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당연한 조치입니다. 구제역, 조류독감, 에볼라 바이러스 등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아무리 과학과 의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다가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어찌할까요? 기겁하고 도망가거나,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욕설을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생명과 안전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 이성적 판단을 시도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나병환자가 다가와 도움을 청하자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치유해 주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물론 예수님이시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저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는 싶습니다. 나병환자를 가엾게 여기고 그를 깨끗하게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비록 예수님처럼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면서 직접 치유를 베풀지는 못하 지만, 그래도 그를 가엾게 여기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 그런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적어도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입에서 온갖 독충을 내뱉는 이기적인 마음만은 아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