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레지나 2013. 9. 10. 18:34

    <이 시대 위선자들>
 
    한없이 자비하시고 끝없이 인내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시지만 마냥 좋으신 분, 속없이 마음 좋으신 분만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애끓는 사랑의 경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들, 그 좋은 산상수훈을 듣고도 삶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을 향한 질책의 말씀은 무척이나 준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고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낸 대표적인 인물이 있었으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경고를 받은 사람들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여러 부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엘리트 집단의 사람들이었으며 나름 하느님과 신앙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대 유다 백성들 가운데 잘 나가던 주류층 사람들, 지도급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의외였습니다. 그리스도 심판의 번갯불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집 위에 떨어졌습니다. 하느님 그리고 율법과 가장 가까이 있던 것처럼 보이던 그들은 하느님, 그리고 구원으로부터 가장 멀리 내쫓기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멀리 있던 사람들이 가장 하느님과 구원에 가까이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은총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분 구원과 생명의 말씀을 수용할지 말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만, 각자가 선택한 결과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신 동시에 심판지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복음은 평화롭고 고요하지만은 않습니다. 수용과 응답에 대한 강한 요구와 함께 우리에게 던져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시대에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늘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하늘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영혼의 의사여야 하는데 영혼들을 악으로 인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협력자가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그분의 훼방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이 생각을 받쳐주지 못할 때, 강론이 생활을 뒷받침하지 못할 때, 말과 행동이 유리될 때 준엄한 예수님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나를 돌아봅니다. 신심 없는 신앙,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 구체성 없는 결심, 본질과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는 아둔함, 공연한 선민의식... 나 자신에게 요청되는 의무나 요구들에는 불성실하면서 이웃들의 어깨에 무거운 십자가를 올려놓은 위선과 이중성, 허례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