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얼굴은 언제 빛나는가 - 한비야
“와, 얼굴 좋아졌네요.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요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좋은 일이 있긴 하다. 올봄 학기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에서 국제구호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뭐든 처음 하는 일은 이렇게 설레는 걸까? 연애하는 것처럼 들떠있다. 그
러나 국제구호를 대학교의 정식과목으로 강의하는 건 처음이라 강의 전날이면 교안을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
치느라 날 밤을 새우기 일쑤다. 피곤해서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도 충혈되었는데, 얼굴이 좋아졌다니? 사람들
말에 슬며시 거울을 들여다보니, 표정이 밝고 환하다.
이런 내 얼굴, 전에도 본 적이 있다. 2004년 이라크 전쟁 후 긴급구호현장에서 일할 때다. 어느 날 아침, 동료직원이 사진기 테스트를 한다며 연습 삼아 내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날 저녁,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방탄조끼를 입고 손에 무전기를 든 채 환하게 웃는 얼굴, 내게 그런 표정이 있었나 할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얼굴이었다. 정말 신기했다. 살인적인 더위와 늘 모자라는 잠, 불안한 치안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만족스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웬수 같은’ 방탄조끼까지 입고서 말이다. 영상 50도가 넘는 더위에도 치안 때문에 자는 시간 빼고는 늘 입고 있어야 했던 방탄조끼는 입을 때마다 고역이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통풍이 전혀 안 되는 통에 온몸에 콩알만 한 땀띠가 돋았는데, 그것 때문에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서 자야만 했다. 아침에 방탄조끼를 입을 때면 밤새 성이 난 땀띠가 눌려서 벌에 쏘이는 것 같이 따가웠고 터진 땀띠에 땀이 들어가면 베인 상처에 식초를 쏟아 붓는 것보다 더 쓰라렸다. 그래서 방탄조끼만 입으면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곤 했는데.
대답은 딱 한 가지다. 몸은 고달파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 열정 그리고 기도와 땀, 그 외의 내가 가진 어떤 것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렇듯 충만하니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로 예쁜 얼굴이 나올 수밖에.
그런데 최근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지난 주말, 머리를 식힐 겸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
다. 까맣게 물오른 나무와 막 틔우려는 봄꽃봉오리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넋을 놓고 있는데, 혼자 울고 있는 3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얼른 다가가 아이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아가, 울지 마. 여기 있으면 엄마가 금방 올 거야. 아줌마가 같이 있어줄게.”
그 말에 꼬마 아이는 오히려 몸부림까지 쳐가며 목청껏 엉엉 울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엄마가 아이
이름을 부르짖으며 저쪽에서 미친 듯 달려왔다. 엄마를 보는 순간, 이 꼬마, 속눈썹에 굵은 눈물방울을 매단 채
로 얼굴 가득 광채를 뿜으며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었다. 아, 그 얼굴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던지.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얼굴은 언제 이 아이처럼 빛날 수 있을까? 아이가 잠시 잃어버렸던 엄마를
만날 때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딸이니 우리 아버지,주님을 만날 때 저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다.
오늘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님의 얼굴을 다시 뵙는 부활절이다. 그래서 우리 얼굴이 최고로 환하게 빛나는 날이다. 참으로 기쁜 날이다.
2012년 4월 8일 서울교구 주보말씀의 이삭
한비야 비 아┃UN자문위원, 이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