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이반 루프니크의 <식별> 5장 유혹 중에서
사명에 대한 집착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진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악마가 놓는 덫은 다름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고 있는 선행, 사명,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열심을 가장한 덫>이다.
악마는 그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무엇보다 자신들이 일구어 내는 성공에 관심을 쏟게 한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자신이 하고 있는 봉사가 중요하다고 느끼면서 애착을 느끼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그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만큼 그 일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을 느낀다.
언뜻 보기에 이런 애착은 반드시 행해야 할 사명과 선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만족, 자신의 일에서 얻는 쾌감에 대한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종의 관능적 쾌락 또는 자기애의 형태에 속한다.
어떤 집착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좋은 일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나선다. 그들은 도덕적 이상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이 매우 유용한 인물임을 내세우거나 거의 모범적이라 할 만한 순종적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계획하거나 바라는 대로 금방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불안한 상태는 비록 그들이 나름대로 열성을 다해 그 일을 계속한다 할지라도 지속될 것이다. 조만간 자기애의 진실과 개인적 만족과 책임의식에 대한 열정적인 세속적 집착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흔히 그들의 활동을 지속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를 거의 언제나 그들이 이미 행한 선한 일과 그들이 일구어 낸 성공의 결과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그들이 악마에게 얼마나 속았는지를 입증할 뿐이다.
특히 강한 성격의 소유자는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가 쉬운데,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도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행하는 선한 일도 그 일을 자신들의 만족을 찾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결합시키게 되면 악마에 의해 그 의미가 애매모호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그 일을 계속하는 때라도 악마는 그들의 시선을 주님으로부터 떼어내 다시 그들 자신을 향하게 한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열정과 그분을 섬기고가 하는 열정 속에서도 그들 자신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내 기분은 어떤가? 나는 무엇을 체험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받아줄까?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얼마나 얻고 있나?’ 이렇듯 그들의 열정은 분명 주님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죄의 성향이 담겨 있는 마음자세, 곧 옛 인간의 마음자세를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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