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7년

기도에 업혀 살다

김레지나 2017. 9. 3. 13:41

기도에 업혀 살다

 

 

 

  한 달쯤 전에 흉부외과 진료를 보았습니다. 제게 정상인 호흡량의 반도 안 되는 심각한 폐 기능 장애가 있는데, 오른쪽 횡경막이 최대로 올라붙어서 폐가 찌그러진 탓이라고 합니다. 외과 선생님은 수술은 불가능하고 왼쪽 폐의 횡경막 신경 옆에도 암이 자라고 있어서 그마저도 마비되면 숨을 못 쉬게 되어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거라고 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숨쉬기 힘든 증상을 호소했었는데, 심부전이 악화하여서 더 힘들어진 줄로만 알다가 이제야 주된 원인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 번 마비된 신경은 회복되지 않는다 하니 인공호흡기를 하게 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되는 셈이라, 미리 호스피스 의사선생님에게 거부 의사를 전해놓기로 했습니다.

 

 

  두어 달 부터 프란치스코 형제님과 카톡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며 위로하는 글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만든 순례길이 있어요. 안양시 비산동 성당에서 저녁 7시 반 토요특전미사를 드리고, 안양천을 따라 걸으며 묵주기도를 해요. 신도림에 도착하면 새벽 2시경, 이후 눈을 붙이고 아침 8시에 묵주기도를 시작하며 다시 안양천을 출발하여 한강 합수부-샛강-서강대교를 건너 합정동 절두산 성지 성당에서 주일 3시 미사를 드리는 것을 끝으로 순례길은 끝납니다. 이번에는 레지나 자매님을 위한 순례였습니다. 힘내시기예요.”

  기도에 빚지는 일은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몫이라고 애써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그분의 순례길이 잦아질수록 민망함과 걱정이 커져서, 적당히 하실 것을 에둘러서 권하기도 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저보다 더 급한 분, 더 귀한 일을 지향하시와용.^^ 영웅적인 양보이지요?” “힘들면 중간에 택시 타세요.”

  저는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해져서 그분의 블로그를 뒤져보았습니다. 그의 수필집에 실린 글을 몇 편 읽었는데, 분신 같은 두 형제를 잃은 시퍼런 아픔이 뚝뚝 떨어지는 듯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긴 투병 기간 동안 제법 많은 환우를 떠나보냈는데, 그들의 마지막까지 아파하며 살뜰하게 보살피는 가족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그분의 슬픔이 더욱 귀하게 여겨졌고, 저를 위한 기도가 그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내지는 것이겠기에 더욱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얼마나 많은 기도를 받았는지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윤0희 님은 파킨슨병을 앓으시면서도 매일 아침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나 그분이 마침 서울 병원에 진료 오신다고 하여 뵈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항암 때문에 몹시 힘들었지만, 그분은 손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고 눈꺼풀마저 내려앉아 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셨습니다. ‘세상에, 이 몸으로 기도해주시고 위로의 글을 남겨주시다니.’ 그분의 기도는 오롯한 사랑이기에 저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기적이 되었을 거라 믿으며 그분을 생각하는 아픔을 달래곤 합니다.

  마흔을 넘긴 초임 때 제자는 개신교 신자인데, 저를 위해서 백 일 새벽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그가 동창 밴드에 남긴 글들을 보내주었는데, 그가 매일 긴 묵상 글을 올리며 동창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권한다고 했습니다. 그와의 인연이 30년이 다 되어가고 그가 대학 다닐 때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으니, 저를 위한 정성이 믿기지 않아서 미안했고 저는 그렇게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을 할 줄 모르기에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주일 미사 때에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분들을 생각하며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기도하게 하시다니, 하느님께서 부족하기만 한 내게 과분한 은총을 주시기 위해 명분이 필요하셨을까? 내가 뭐라고? 예수님은 우리 기도의 양과 질을 저울질하고 계실까? 아니다. 기도가 사랑이기에, 당신의 마음을 나누어 갖자는 것일 거다.’ 성체를 모시는 행렬에 서서 십자가를 다시 보았는데, 세상에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아, 예수님도 기도하셨지.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하고. 나는 수많은 사람의 기도에 업혀 있고, 그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에 업혀 있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구나.”

 

  제 기도를 바라는 아픈 이들은 많은데, 저는 요즘 요양병원에서 퇴원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느라 기도할 시간도 체력도 없습니다. 급한 마음에 프란치스코 님에게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분노조절 장애를 앓는 요셉, 말기암으로 두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비아,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난 영숙 언니…. 하루는 진통제 탓에 혀가 굳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라파엘라와 전화통화를 한 후 마음이 아파 울다가 프란치스코 님에게 알렸습니다. 그분은 당장 직장 근처 성당에 가서 네 시간 동안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라파엘라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란치스코 님의 기도 덕분에 라파엘라의 마음도 떠나보내는 제 마음도 위로를 받았고, 예수님께서 라파엘라를 당신의 기도로 업어 데려가셨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은 제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제가 받는 기도는 저를 기도로 업고 계시는 성자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성사이고 표징입니다. 저는 저를 구하신 예수님의 기도에 업혀 살고 저를 지으신 하느님의 자비에 업혀 삽니다. 제가 세상과 작별하는 날에도 예수님께서는 저를 기도로 업어주실 것입니다.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2017년 9월 3일, 기도에 업혀 사는 행복한 레지나 씀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평화가, 그리고 믿음과 더불어 사랑이 형제들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불멸의 생명과 더불어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기를 빕니다.”(에페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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