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Lady, the Virgin Mary
전세계 가톨릭신자들이 그렇지만, 특히 남미에서는 성모 신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성모 신심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과 관련하여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는 성모신심이 마치 이방인들의 신앙처럼 되어버려 몹씨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성모님을 신처럼 여기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룰수 있는 가장 최고의 거룩함에 이르셨지요. 우리는 성모님이 어떤 분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때로 성모신심에 있어서 개신교 형제들과의 이견이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모신심을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주제에 대한 나눔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히 주의를 기울이며 그에 대해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스폐인에서 남미로 이주해온, 대를 이어온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저의 성장 과정중의 성모님과의 관계는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에서의 성모신심은 거룩하고 명확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거룩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모님과의 건강한 관계입니다. 저는 14세까지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자랐지만, 아시다시피 그 이후에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의 회개 과정을 통해 제가 다시 성모님의 현존 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동안 천상의 어머니를 잃어 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영적으로 둥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불안전한 관계와 불완전한 신심을 우리의 어머니를 통해 완전하게 만들어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중재라는 무한한 은총을 통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 아래에 있는 우리에게 어머니를 내어 주신 것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방법으로 어머니를 마음 안으로 모셔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간적인 족보에 대해 자연스럽게 듣습니다. 이분이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이고, 삼촌이고, 형제고…등을 들을 때 그런가 보다하고 당연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 주신 모든 것들과 하느님과 관계된 영적 관계에 대해서 그들이 정말 누구이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얼마나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 우리의 천상의 어머니는, 이 지상의 어머니 만큼이나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지상의 어머니는 우리가 이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우리 존재의 중심이지요. 그 모태에서 우리가 나왔습니다. 분명히 모든 사람,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방법이든 자신이 나온 그 모태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동정 마리아, 천상의 어머니가 우리 존재의 더 높은 단계의 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더 높은 단계의 사랑이지요. 주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가 되도록,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가 되도록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더 높은 단계의 자신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것 이상으로 들어 올려져 더 높은 영적 단계를 목표로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단계에 주어진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오게 될 것들을 묵상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성바오로는, 지금은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 때가 되면 분명하게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지나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게 될 때를 말하지요.
성모님에 대해 이해하려면 성모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천상의 어머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 안에서의 새로운 이브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 모두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 안에서의 새로운 이브임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고 사실임을 깨달으면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무엇이며 새로운 이브가 무엇인지, 새로운 아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게될 운명을 가지고 지상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즉시 우리는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뛰어 넘을 수 없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죽음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 안으로 태어났지만 왜 태어났는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곧 그에 대한 인식을 뒤로 밀어버리고 더 이상 다루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은 원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화가 나면 엄마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 고 불평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거스르고 나쁜 상황에 몰려 있을 때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불평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갈등을 겪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지만 결국 죽습니다.
그것을 치유시켜 주시는 분이 성모님입니다. 원죄로부터 치유시키는 것이지요. 물론 분명히 신적인 치유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을 통해 우리는 죽을 운명의 모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모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가져다 줄 모태인 것이죠. 이제 우리의 삶의 모든 사이클의 반전이 옵니다. 지금 우리는 죽을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받아 성모님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도록 태어날 것입니다.
저의 신비 체험을 통한 성모님의 어머니로서의 현존은 매우 큰 것으로서, 그분은 태어난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였습니다. 성모님은 단지 가톨릭 신자나 그리스도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의 모태를 통해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특히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은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천상의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아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천상의 어머니를 증거해야 할 책임 또한 주어졌습니다. 그분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 가운데에 오신, 우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영적 단계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우리들에 대한 가장 높은 단계의 하느님의 사랑이 성모님을 통해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티 없으신 성심으로 들어갈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그리고 성모님에게 주신, 그 티없는 사랑의 폭포수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하나 하나의 은총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이 바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모셔다 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고, 성모님은 도구였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어머니께 기도할 때, 마음으로 모태 안에 있는 십자가를 그릴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모태 안에서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께서 세계 여러 곳에 나타나셔서 슬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곤 합니다. 그러나 가끔 완벽한 상태에 있는 성모님이 어떻게 슬퍼하실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 때가 있지요. 또한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왜 슬퍼하시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상태에 있는 그분들은 자신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지요. 거룩한 삼위일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주어졌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완전함을 그분을 통해 완벽하게 만들어 하느님께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성인들 가운데 계십니다. 성인이 시성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실 성인들은 시성이 되기 전에도 이미 성인입니다. 예를 들어 과달루페의 성모님의 발현을 본 후안 디에고 같은 경우에도 그는 죽음과 동시에 천국으로 간 성인이지만, 후에 시성을 통해 그것을 확인 받은 것이지요. 사람들은 때로 성인들이 시성을 통해 성인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그러기 전부터 성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우리를 위해 중재하도록 교회에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을 통해 그러한 은총을 받는다면 주님 자신의 어머니였던 우리의 어머니를 통해 받는 은총은 어떨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모든 성인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 안에 모든 성인들이 있습니다. 시성으로 확인된 모든 성인을 통해 받는 은총에 촛점을 맞추어 보면, 그들 모두 성모님의 모태 안으로 이어집니다. 성모님은 성화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성인들의 모든 성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모태 안에는 십자가의 예수님,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님이 계십니다. 또한 마리아의 베필이신 성령으로 인하여 하느님이시며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그러한 신비가 모두 성모님 안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있어서 창조주와의 완벽한 소통의 궁극적인 실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가 인간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성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동시에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해 영적인 세상에 대해 볼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그들은 이 곳에 현존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앙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지혜입니다. 영적인 눈과 마음으로 그들을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이는 복되다” 라고 말씀하셨듯이 주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미스테리이지요.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되었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외에는 다르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캐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원죄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브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서를 통해 이브가 보여주는 것은 자신에게 금지된 내용을 알기 위해 뱀에게 귀가 솔깃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를 캐내려 할 때 이브처럼, 신비를 캐내기 위해 뱀에게 속아 잘못된 곳에서 캐내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원죄의 본성 안으로 넘어져 선악과 나무의 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자신의 원죄로부터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깨닫고 새로운 삶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려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부터 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해 졌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그 모든 신비 가운데 바로 성모님이 서 계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기가 자신의 아들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고 또한 삼위일체 안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지혜의 은총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머니 마리아가 우리에게 묵주를 주실 때,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큰 은총을 주시는 겁니다.
또한 성인의 시성 역시 우리를 위한 큰 은총입니다. 성인의 은총의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인간적인 죄를 가리고 기도를 완벽하게 만들어 그 성인을 통해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 제의를 입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의를 입음으로서 사제 자신의 인간성이 사라지고 예수님 자신이 되어 우리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지요. 그처럼 우리도 성인의 옷을 입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인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의 은총으로 옷을 입는 것이지요.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묵주기도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편을 기도할 때 묵주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점차 주님의 기도, 성모송으로 바뀌면서 은총이 배가 되어 발전되었지요. 교회를 통해, 즉 수도자들이나 종교단체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점 점 큰 은총이 되어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성령의 감화로 그것들을 집결했습니다. 교회내의 모든 신심들이 그런 방법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작은 기도를 통해 작은 은총을 가져다 주기 시작하여 점점 더욱 기도하게 되고 더욱 큰 은총으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지요.
역사를 통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했던 은총들의 결과가 묵주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주님께서 악마에 대항하는 완벽한 무기로 주신 것입니다. 수세기에 걸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얻어진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모든 것들도 수세기에 걸친 기도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것에 믿음을 가지고 충실하다면 더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회는 그렇게 하느님 안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몹씨 어둡고, 위협적이며, 파멸로 향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든 어두움과 죄 많은 인류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보여주고, 교회의 기둥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지옥의 문은 결코 교회의 문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건너 올 수 없습니다. 절대로 우리 교회에 대해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이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께 순종하며, 과거의 죄를 깨닫고 매일 더욱 나아지도록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우리들 각자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통회를 하고, 형제들 앞에서 얼마나 자신이 잘못 했는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잘못을 하였을 때 통회를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했던 모든 사악한 행위들을 멈추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단계의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주님을 떠나 방황하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설 수 있는 용기와 결심이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는 그러한 모든 행위의 결과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성 바오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쫓아 다니며 죽였던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친지들 앞에서 설교를 하도록 주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의 친지들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요? 아주 놀라운 일이지요.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 잠깐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주님께서 부르신 후에도 예루살렘에 가기까지 삼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그가 하늘에 올렸던 기도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친지들에게 간다는 것을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주님은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많은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정 반대의,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메신저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죄인들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건강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치유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내의 증언과 가장 큰 말씀은 회개한 죄인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 안에서 찾고 있는 힘은 묵주기도가 수많은 죄인들이 회개하여 거룩하게 된 것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성심에 강하게 이르러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탄에 대항하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묵주기도가 주어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신 묵주기도의 방법은 우리 주위에 일종의 울타리를 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뚝 울타리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할 때의 각 성모송은 울타리의 말뚝 하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시작해 나가면서 각 묵주알 하나 하나는 울타리의 말뚝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에 집중하여 확실하게 말뚝을 박아야합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박는 것이 다 끝났을 때는 거룩한 울타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날 어떤 악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묵주기도의 각 신비가 지옥 문을 막고 천국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하루에 20 신비를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 교회, 가족들에게 은총을 가져다 주고 자신의 모든 죄를 보속 하는 것입니다. 참된 거룩한 상황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미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이야기 입니다. 통회하고 회개하고 신앙의 은총에 대해 약속한 사람이어야 그 무기가 작동을 하는 것이지요.
만일 대죄가 있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쟁중에 탈영한 군인과 같습니다.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지만, 불순종으로 인해 그 군복과 무기가 제대로 일하고 있지 못한 것이죠. 무기를 가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총을 발사한다면 감옥에 가겠지요. 탈영한 그는 군대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터 탈영을 하여 대죄를 짓는다면 하느님으로 부터 받은 무기를 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 감옥에 넣는 자가 그를 고발하여 가장 먼저 그를 감옥에 넣을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고발하는 자입니다. 그가 “이 사람은 탈영하고도 그 무기를 사용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는 사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삶에서도 많은 악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불순종의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무기가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그것이 작동하도록 하려면 참된 하느님의 군사가 되어 하느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성인들은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느님의 도구로서 그들을 통해 하느님이 하신 것이지요. 충성과 믿음으로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위해 전쟁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을 때 많은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을 할 뿐 아니라 더한 일도 할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 성인들이 믿을 수 없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일들을 한 것을 보아 왔습니다. 성녀 아크의 요안나 (잔다르크), 성 루시아를 보십시오. 많은 성인들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있는지 놀라워 하지요. 그러나 하느님께 충실할 때 우리 모두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했는지는 상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주님의 군사로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주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제복을 존중하고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이 잘못한 모든 것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과거의 여러분을 고발하려고 다가오는 자들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묵주기도 안에서 성모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가져다 준 은총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대항하는 군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군대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매일 자신을 군부대에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일 매일 성당에 간다면 주님께 자신이 군사라고 보고하는 것이겠지요. 성당에 가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사가 끝나서 사제가 평화를 가지고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할 때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께 순종하는 줄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며 주님께서 나가서 하루동안 당신의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순종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하루 동안의 모든 작은 일에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성체를 모신 것 위에 묵주기도와 같이 무기로 주어진 신심들을 더함으로써 자신을 주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 자신의 주변에서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중재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죄의 보속을 위해서, 모든 사랑하는 사람의 지향을 위해서, 국가나 정부, 모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위한 지향으로 기도를 하며 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해야하고 전구를 해야할 아주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중재가 아주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해야하며, 순종이라는 것은 이웃과,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은총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동정과 자비, 용서를 위해 일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사랑을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변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한가지를 기억하여라. 아직 내가 그 사람과의 일을 끝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죽는 순간까지 그 일을 끝내지 않으십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악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사람들의 구원을 원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를 위해 하느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단계의 하느님으로부터의 자비와 동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사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다 하느님의 동정과 자비를 필요로 하는, 어느 정도의 어두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과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로부터 동정과 자비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항상 잘못을 하게 하는 죄에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가 말한 것 처럼 나는 항상 하고 싶지 않는 잘못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의 삶과 행위에는 신중, 식별, 정의와 같이 불리우는 것들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무슨 행위를 하든 그 일의 결과를 갚아야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전구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리아를 주셨을 때, 마리아의 모태 안에 모든 은총이 있음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가장 큰 중재자로서의 천국의 문이며, 또한 아직은 반론이 있고, 가장 신중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로서 논쟁이 있긴 하지만, ‘공동 구속자’입니다. 모든 신비가들과 교회의 학자들이 항상 말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분별에 신중을 기울여온 교회는 현재 그 단계에 이르러 있습니다. 마리아론이 그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각 은총 모두는 기도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라는 은총을 받게 될 때, 우리 모두가 더 높은 영적 단계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교황님을 통해 마리아를 ‘원죄없이 잉태된’ 무염시태를 인정하였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단계로 올라갔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이전 보다도 더욱 강하게 교회에 나타났고 아주 강한 성모신심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것이 지구의 멸망이나 파괴, 혹은 끔찍한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요.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간과 연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의 마지막 때는 오직 하느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지막 때라는 것은 미스테리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이 일어나길 기다리며 집 안에 들어 앉아 있다면, 그것은 도피일 뿐이지요. 우리는 바로 오늘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주님은 한밤 중에 도둑처럼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을 세상이 끝나기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인류의 사이클 안에서 점점 더 마지막 때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더욱 다가 가면서 우리는 더욱 많은 은총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 더욱 힘들고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을 아는 사탄이 더욱 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무기와, 더욱 많은 정보를 주십니다. 더 많은 지혜를 좀 더 명확하게 주십니다.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시지요.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사탄의 군대는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발사하며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변에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요. 동성결혼과 같은 것들이 교회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법을 통과시키려 하면서 동성관계가 죄라는 것조차 말할수 없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러한 거룩하지 못한 일들이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런식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더 강하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충실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한다면 그러한 모든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리움을 받은 대로 증언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과거과 어떠 하였든, 남들이 우리의 과거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악마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굳건하게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에게 그분이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예수님 안에서 영원히 살것 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은총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므로 비유로 말하였다’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공평하기 못하다고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아들이 돈을 나쁜 곳에 잘 못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들은 그것을 다룰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므로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우리의 삶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우리가 하는 작은 일들도 은총의 결과입니다. 그 작은 모든 것들로 부터 새로운 교훈이 다가오고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기도를 하고 성서를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시련과 고난이 오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적에 대한 사랑을 받고 어느 순간 우리를 미워하는 그들이 웃으며 다가 오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입니다. 매번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은총 안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장하게 되면 주님께서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항상 하느님 안으로 성장하는 그일은 결코 끝이 나지 않습니다. 천사들과 성인들도 매일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보며 경이로워합니다. 그들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을 보고 가장 먼저 놀라워하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하느님의 창조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어느 천사도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도 주님께서 오늘 아침에 하실 일들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여러분이 이 순간 무슨 말을 하게 될지 그들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을 말할 때 그들 모두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러한 은총의 톤에 자신을 맞추어야합니다.
성모님에 대한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천상의 어머니에 대해 깨어있는 것이 우리 삶에서 매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그만큼 거룩한 아기 예수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 마리아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 그분의 팔에 아기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발현과 마리아의 개념에는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님도 더 깊이 나아가면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태에 예수님이 있는 것이지요.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원죄로 인해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합니다. 호기심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허세와 가식, 그리고 교만때문입니다. 자신을 정보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과 사교를 할 때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정보를 쏟아 냅니다. 모든 뉴스와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과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자신이 작아 보이고 두려움을 갖기 조차 합니다. 와우 저 사람은 정말 많이 알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작아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에게는 그 모든 지식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선한 것을 행할 수 있지요. 그러나 단지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이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을 받은 것처럼 느끼고 세련됬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라면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허영심과 가식을 쌓은 거대한 독수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두려움을 주려 하는 것이지요. 살면서 가장 불편한것이 자만심으로 가득 찬 사람 주변에 있는 것이지요. 그의 자만심이 온 방안을 차지하고 있어서 모두가 그 앞에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말을 잘못할까바, 무식하게 행동할까봐 두려워하지요. 그러기에 아이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낮추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가장 큰 가르침을 주고 있는 아기 예수님에게 가십시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지식은 하느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오직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사랑, 이해, 용서, 인내, 동정, 자비,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 나머지 것들은 주변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상처를 주는 단지 껍데기이고 허영이며 허세일 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청합니다. 이 거룩한 아기 예수님께 기도함으로써 인간적인 지식에 대해 목소리를 낮추고, 겸손해지고 단순해지도록, 사랑하고 용서하며 아이와 같이 될 수 있도록 청합니다. 아이와 같은 기쁨을 갖도록 청합니다. 또한 우리의 고통이 고통스럽지만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항상 깨달을 수 있도록 청합니다. 아이들은 놀다가 넘어지면 웁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장난감, 축구공을 가지고 다시 놀지요. 우리도 아이처럼 다시 일어나서 계속 달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따라 가야합니다. 주님께서 아기예수님을 통해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와 함께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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