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마리노 레스트레포 강의

[스크랩] 세 교회 - 마리노 레스트레포

김레지나 2017. 5. 29. 21:49

 


The Three Churches

  

 

교회

2007 5 9 미국

말씀: 마태오 16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터인데, 때에 각자에게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말씀에서 묵상하기 좋은 귀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천년 전에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상의 삶을 지나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곳에 있게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교회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들의 교회이며 투쟁의 교회인 지상의 교회, 승리의 교회인 천국, 그리고 고통의 교회인 연옥이 하나로서 예수님의 몸을 이룹니다.

 

이제 하나를 이루는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영적세상과의 관계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곧장 승리의 교회인 천국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연옥의 상태인 정화의 불로 이어지는 군사들의 교회에 대해 묵상함으로써, 어떻게 우리에게 지워진 책임을 깨닫고 참되게 하느님을 믿을 있는지, 그로써 연옥을 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배우게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부임을 깨닫고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연옥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입니다. 형제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여성, 남성의 성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육체가 없는 하느님의 영으로서 이상 우리들과 인간적인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육체를 떠나게 되면 이상 지상에서의 부모나 형제 자매와 같은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혈연으로서의 관계를 갖지 않는 하느님의 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육체를 떠나게 되면 주변에 지상의 삶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영혼이 오는 것을 것입니다. 지상의 삶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사촌 ... 우리가 물질세상으로 부터 영적세상에로 넘어가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현존할 것입니다. 바로 순간 우리는 개인적으로 직접 예수님을 뵙게 되며 완전한 진리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또한 영들이 이상 자신과 혈연관계로 연결되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하게 것입니다. 때에는 그들과의 관계가 영적인 것으로서, 결코 죽지 않는 우리 모두는 이상 육체에 갖힌 인간적인 수준의 사랑, 애정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적인 사랑은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상태입니다. 지상의 삶에서의 사랑관계는 죽을 운명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혈연관계는 죽음과 함께 끝이 납니다. 죽음과 함께 이상 죽을 운명의 한계에 갖혀 있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상 관계에 묶일 필요가 없는 것이죠. 오직 하느님께 속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만이 남습니다. 하느님을 통해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며, 하느님을 통해 완벽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속하게 됩니다. 관계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서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이 머물도록 것인지를 결정해야합니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오늘은 하느님께서 안에 계셨다가 내일이 되면 하느님이 머물지 못하도록 결정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멈추어야합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결정함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죠.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사랑, 아니면 어두움과 연결되는 방향을 따라갑니다. 끊임없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지요. 우리는 선과 악의 나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안에서 수액을 통해 방향을 잡으며 나아갑니다. 액은 혹은 악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떠나기 전까지는 완전한 , 혹은 완전한 악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에 결정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 안에서 악보다 선을 더욱 많이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갈수록, 육체를 떠났을 , 선한 나무가지를 통해 영원한 삶의 나무 안으로 들어가게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선을 찾아 방향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집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것은 오직 선함입니다. 우리 안에, 사탄의 , 나쁜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을 때는 온몸에 퍼져있는 죄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오로는 안에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악을 행하게 만듭니다.’(로마서 7)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결코 그것에서 벗어날 없습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선과 악의 나무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주고 계시며, 구원의 왕관은 삶이 끝났을 차지할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죽음의 운명인 육체를 떠났을 비로소 완전한 성령의 은총이 있는 영적인 세상으로 들어가게 것입니다.

 

우리는 귀양살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사실임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네가 잘못한게 아니잖아. 아담과 이브가 정말로 존재했다면 그들이 잘못한 것이지 네가 것이 아니야. 그러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없어. 그런 말도 안되는 말에 신경쓰지마.” 이것이 모든 지성이 우리에게 밝혀진 모든 진리를 부정하며 전하는 사상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도 알고 있지요. 모세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 있는 동안, 하느님께서 그에게 창세기에 나온 배경, 세상의 시작, 아담과 이브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셨고, 그것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인류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정말 그것을 믿는가? 정말 모세가 실존 인물이었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모든 율법과 모세오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믿는가?” 그것을 사실로 믿고 받아들일 비로소 지상의 삶을 이해할 있습니다. 지상의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영적 안으로 있겠습니까? 영적세상의 기초를 놓으려면 우선 물질적인 삶의 기초를 놓아야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귀양살이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귀양살이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다시 천국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러나 뒤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구원의 법칙을 채워야합니다. 구원에는 원칙이 있으며 원칙이 우리에게 밝혀졌습니다. 원칙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구원을 얻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밝혀진 원칙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에 대한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믿고 있는가?’ 그것을 믿는다면 나의 삶은 자동적으로 바뀌어야한다. 그리고 말씀을 읽음으로써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배우게 것이다. 그러면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떻게 행동 해야 하는지 알게 것이다. 모든 것이 이미 우리에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러분은 말씀을 읽어도 대부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로 되돌아 가야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말씀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입니다.

 

사순기간 동안 저는 페루의 리마라는 곳에 있는 성당에서 피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주게 되었는데 여성이 저에게 다가 오면서, 그녀에게 들려있던 마귀가 드러났습니다. 마귀는 비명을 지르며 저에게 끔찍한 저주를 하기 시작했고, 평신도인 저는 마귀에게 명령할 있는 권한이 없었으므로 사제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고백성사를 주던 명의 사제들이 나왔습니다. 사제들이 여성에게 구마기도를 시작하였고 저에게도 기도로서 도와주길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두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신자들이 묵주기도 시작하였을 , "하하…. 묵주기도는 나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 못해….믿음도 없으면서하하하…" 그것이 곳의 삼사백명의 신자들에게 마귀가 말입니다. 그러자 사제가 “나와 함께 기도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라고 하였고 마귀가 대답했습니다. “ (장난치듯..) 은총이~ 가득하신 ~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있어그녀는 매일 기도를 한거든… “… 그런대도 그녀는 마귀에 들린것이죠그러니 그녀가 하던 기도는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귀에 대해 거룩한 것을 하면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 마귀를 쫒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믿음없이 하는 묵주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기도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잔뜩 진다고 해도 하느님과 가깝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귀가 십자가로 여러분을 놀랠킬 것입니다. 모든 성사와 성물은 믿음에 충실할 때만이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두시간 반이 지났을  저에게 요한 묵시록 12장을 펴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묵시록 12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중간쯤 읽었을 결국 마귀는 여성으로 부터 떠났습니다. 곳에 필요한 것을 저에게 알려주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제가 읽었던 단죄하시는 하느님의 말씀만이 마귀를 쫒아낼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여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여성의 믿음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날 밤 그녀가 구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들은 다시 돌아올 기회를 노립니다.  그녀의 믿음이 약하다면 마귀들은 되돌아오려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묵주기도와 모든 기도, 신심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써 모두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심이 복음말씀과 구약에서 나왔지요. 우리는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부터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해도 괞잖습니다. 제가 요한 묵시록 12장을 읽을 , 여러분은 주님께서 요한에게 밝혀준 모든 신비를 이해하기 못하지 않습니까? 너무도 신비합니다. 그러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마귀들은 그것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마귀를 태우므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견딜수가 없는것이죠. 하느님의 사랑의 불이 마귀들을 섬멸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괴수들을 쓸어내어 깊은 곳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알고 선포하여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어떤 선한 일을 때에도하느님의 영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무엇을 나누거나 자선을 , 이웃을 위해 시간을 때에도 사랑을 가지고 하는것이 아니라면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바오로가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자선할  아무것도 가진것도 없는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주자. 보아라, 우리들은 모든 재능을 가졌고, 모든 것을 가졌으며, 모든 특권을 가졌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자만심일 뿐입니다.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는 기분을 느끼려 하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많은 거짓된 자선단체가 있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한다는 듯이, 떠들썩하게 자선을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떼어주고 그것을 즐기자,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구원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하느님을 얻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하게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이해하고 깨닫도록 하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며, 우리가 그분에게 속해 있다면 우리 각자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속해 있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은 희망이며, 자비이며 용서이시므로 원하기만 하면 모두 하느님께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이시지만, 모든 사람 안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라고 응답하지 않고, 문을 열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머물러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 오는 것은 은총이며 그것은 신비입니다. 우리가 원하여야만 하느님께서 머무시지만, 하느님께서 그것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누가 설명할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대도 하느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무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우리는 하느님의 방법을 절대 알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의문을 갖지않고 시험하지 않으며 순종하는 뿐입니다. 그것이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법칙입니다. 누구도 하느님의 방법을 설명할 없습니다. 그것이 완전함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연옥과의 관련을 깨닫는다면 지상의 삶에서 우리가 해야 첫번째는 성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군사로 불리워져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체성사에로 불리워졌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도록 견진성사에로 불리워졌으며 교회를 통해 주어진 모든 것을 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견진성사 때에 했던 말씀들을 기억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견진성사 때에 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성사를 되돌아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혼배성사를 깨고 싶어하는 위기의 부부와 이야기 때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상관없이 우선 교리를 다시 읽어보고 혼배성사에 대해 다시 읽어보라고 말합니다. “말씀 하나 하나를 다시 보고 결혼할 선포하였던 말들을 다시 보십시오. 그리고나서 결정하십시오. 그래도 성사를 깨고 떠나고 싶습니까? 사람과의 약속이기 전에 하느님과의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헤어지는 데는 많은 상황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판단 없으며 교회만이 특정한 상황에 대한 식별의 은총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의 은총이 주어졌다는 것과 각자의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언제 신자가 되었는지에 상관없이 가톨릭 신자로 선택되어 태어났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50 60 80세에 이든,  1, 7, 9 이든, 일단 영성체를 하게 되면 주님의 도구, 성체의 도구로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삶의 신비에로 불림을 받아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모시고 교회 밖으로 나왔을 일어나는 일은 여러분이 상상조차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빛을 견딜 없어 달아납니다. 믿음에 충실한 가톨릭 신자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대죄 상태에서 성체를 모심으로써 스스로를 단죄합니다. 혹은 미지근한 신자는 성체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성체를 영합니다. 그러나 믿음 깊은 신자가 성체를 모시고 나왔을 사탄들의 눈을 멀게 만한 빛을 냅니다. 만일 지상에 성체의 군사가 없었다면 지금쯤 수조차 없는 세상이 됬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우리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랄 때를 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때까지 우리 모두가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시기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후에도, 지금 장소에서 제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때 쯤에도 우리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을 근거로 말씀드리면 매우 끔찍한 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진이며, 산불, 홍수, 화산 폭발등, 자연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매우 탈선할 것이며 밖에 다니는 것도 위험하여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삶을 걱정하게 것입니다. 모든 세상이 위험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무슨 비밀은 아니지 않습니까? 멸망의 예언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이 끔찍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학교에 강연을 위해 적이 있었습니다. 곳의 겨우 여덟살 짜리 남자 아이가 벌써 피어싱을 하고 손을 잡고서 공개적으로 게이라고 선언을 한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앞에서 입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장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 어린 아이들이 게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합니까? 도덕관념이 어디로 간겁니까? 가톨릭 학교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겁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버려 두지 않으면 고소를 당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어요. 아이는 게이 커플에 입양 아이입니다.”

 

한번은 남미의 매우 작은 시골 마을 학교에 간적이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 여덟 살에서 열두살 정도의 남자아이들이 화장실 앞에 줄을 있었습니다. 교사가 무슨일인지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러자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고, 열한살, 열두살 여자아이가 레즈비언 쇼를 하며 남자아이들에게 요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남미, 아주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 아주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일들을 상상할 있겠습니까? 그것이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낙태아를 요리해서 먹는 레스토랑 사진을 적이 있으십니까? 본적이 있으세요? (참석자: 누가 보내 주어서 봤어요.) 알겠습니다. 저는 사진을 기도 지향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징표입니다. 레스토랑은 프랜차이즈로 것이라고 합니다냉동태아를 중국에서 콘테이너로 받아서, 그것을 요리해 손님에게 내어 준다고 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아는 말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이 사람을 먹을 것이다. 서로를 먹을 것이다여러분은 우리가 지금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는 시대에 살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징표는 분별하지 못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징표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려고 하지 않지요. 그러나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풀어졌습니다. 모든 지옥이 풀려 났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그토록 사악한 것들이 드러난 적이 없었습니다. 두려움을 주려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거룩해져야 때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해지고 거룩해지고 거룩해져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큰 어려움을 겪게 것입니다. 성인이 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해야 일은 주님께 무릎꿇고 나아가 성인이 되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해야합니다. 그것만을 원해야합니다. , , 인간관계의 애정 .. 세상적인 것을 청하지 마십시오. 가지고서도 달라고 청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인 만을 청하십시오. 다른 악마가 되고 싶지 않다면요. 우리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야합니다. 지금 순간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거룩해지지 않는다면, 결코 그것을 멈출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성인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럴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인이 되려면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되는 것을 멈추어야 하고 자기 자신 밖에 모르고 이기적이 되는 것을 멈추어야합니다. 종교를 치료법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짓을 멈추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치료법으로 생각하고 종교적이 됩니다. 묵주기도의 힘이 자신에게 미치게 해달라고 빌고,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마다 거룩함을 느끼며 안도감을 느끼고, 마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약처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이 성인이 되게하거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가 된다는 것은 성체 안에서의 성령의 은총을 이해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거룩해져야 하는 것이지 자신이 감정이나, 충동, 바램, 기분을 좋게 해주고, 자신을 크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저절로 금방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있어야 하며 자신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편안해지고자 하는 것을 멈추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너무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내면의 싸움이 있고, 어떻게 할지 모르게 우울감에 빠져있다면, 옳은 것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합니다. 육체의 쾌락을 주는 모든 것들과 식탐을 멈추고 생존을 위한 기본 영양만 취하라고 말합니다. 편리함을 멈추라고 합니다. 항상 가장 소파에 편안히 앉고 싶고아프지도 않은데 쿠션을 뒤에 놓고 눕고 싶고, 침대에 누워 묵주기도를 하고 싶을 .. 그러한 것들을 멈추십시오. 무릎 꿇고 옳은 것을 하십시오. 음식으로 쾌락을 느끼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들을 멈추어 영적인 삶을 있도록 자신에게 힘을 주십시오. 너무 육적으로 되어 모든 편리함을 잃을까 불안한 것입니다. 너무 편해졌기 때문에 너무 약해진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편안함을 찾고 고통을 갖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아프면 약을 찾느라 정신이 없고.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합니다. 자신은 어떤 고통도 역경도 시련도 없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을 , 심판을 받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 바로 그것을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희망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일이 될때 만이 아니라 항상 하느님을 신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거룩함을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연옥에 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을 갖도록 힘써 노력하십시오.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는 성인이 되어야합니다. 모든 사람이 악마가 되지는 않겠지요. 성인이 여야합니다. 입니다. 불평하고 치를 떠는 것을 멈추고, 세상의 성공만을 찾는 것을 멈추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작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아주 눈부신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함이나 하느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단한 가운데 우선 자신이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이 먼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거룩함의 길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길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지 자신을 잘못 길들여서 전혀 희생하지 않고 오직 받으려고만 하며 잘못된 방법으로 주님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을 위해 잔뜩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삶은 순종과 겸손의 삶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주님, 저는 제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할 모르고, 믿음이 없는 종입니다. 매번 저의 편안함만을 위해 일할 뿐입니다. 무슨 일이나 먼저 자신이 무엇을 얻을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이익을 취합니다. 것은 제가 취하고 나머지를 줍니다. 부분이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저를 위해 그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구원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자신이 어떤지를 깨달아야합니다. 지금 세상은 성인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어야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성인이 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지상의 삶을 지나게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참을 없고, 견딜수 없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세상은 영적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더할 나위없이 유혹적이고 매혹적으로 되어지므로 매우 조심해야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온갖 주술이 성행하는 것을 아십니까? 모든 종류의 주술이 대단합니다. 온갖 주술, 온갖 철학, 온갖 이념, 온갖 방법론, 수많은 목소리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빈치 코드와 같은 가짜를 믿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댑니다. 거짓말에 시간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경계해야합니다. 삶은 일시적인 삶이며, 삶의 오직 한가지 답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천이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 기도회에 나오면서 조금 변했어요. 저의 삶이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에게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나중으로 미루지요.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인이 것인가, 아니면 사탄이 될것인가 지금 결정해야합니다. 오늘 성인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주님께 속해 있다고 스스로 거짓을 말하지 마십시오. 자신과 절대 속일수 없는 하느님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무릎꿇고 성인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면 아직 가톨릭 신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가톨릭 신자란 오직 거룩함만을 위해 힘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저절로 성인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연옥을 피할 있을까요? 어떻게 정화의 불로 겪는 고문을 피할 있을까요? 지금 하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결심은 우리가 창조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수해야하는 사명은 성인입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든지 악마가 되든지 둘중 하나가 있습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결심을 하고 하느님께 성인이 되도록 달라고 청함으로써 그분께 속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인이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기 때문입니다다른 방법은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무슨일이 있었습니까? 다들 달아났지요. 두려워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힘도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고 나서는 어땠습니까? 그들 모두 주님의 빛을 전했습니다. 요한을 제외한 그들 모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갈바리산을 오를 이미 순교한 것이나 마찬가지 였지요. 그는 스승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예수님과 함께 죽은것과 같습니다. 십자가 아래 있던 성모님이나 마리아 막달레나, 다른 여인들도 육체적으로 순교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순교를 했지요. 예수님과 함께 갈바리산을 올랐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순교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성령을 받았으므로 우리 안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핑게를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 순교를 하거나 성인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성인이 되기 위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연옥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완전한 성인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개입이 있어야하지요. 하느님의 개입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주님에게 라고 말할 , ‘ 주님, 당신은 저를 성인이 되도록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혼자 없다는 것을 알고 당신께 의탁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가능케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거룩하시므로 당신이 그와 같은 성인을 창조하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것이 가능해 질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성인이 있는 모든 기회를 주시고 있음을 믿고 의탁하며 순간 자신을 봉헌하면서 성인이 있도록 힘을 주시도록 간청하십시오. 그것이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좋은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해 왔지만, 주님께 성인을 청한 적이 없다면 마음을 굳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결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오직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되어야 하고, 해야 것을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오늘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무릎 꿇고 성인을 청하는 사람만이 참된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과의 참된 관계를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연옥의 불로 가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지상의 삶에서 곧장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끌어 주는 것입니다 (역: wisdom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출처 :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글쓴이 : Wis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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