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콜롬비아 의 커피를 생산하는 안데스 산 위에 작은 마을에서 열 아이 중 여섯째로 태어나 전통적인 카톨릭의 가르침안에서 성장하습니다. 제가 14살이 되었을때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그 무렵의 60년대는 변화의 시대였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비극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대에 사탄이 모든 곳에 성공적으로 침투하여 오늘날까지 지배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새로운 문명으로써 낙태를 비롯한 인류의 많은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난 10대부터 새로운 문화들을 받아들이면서 교회를 떠났으며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시작했고, 카톨릭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별점, 숫자점, 동양철학, 마술 ,미스테리 과학등 모든 뉴에에지 사상을 실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19세에 결혼을 하면서 독일로 이주하여 배우와 뮤지컬 작곡자가 되기 위해 함브르크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 곳에서 저의 두 아들을 낳았고 6년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앤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뉴욕의 CBS 레코드사로 알려진 소니 음반사에 들어가 전속 예술가로서 산타페라는 밴드를 조직하고 전세계를 다니며 작곡을 하고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엔터테인먼트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며 작곡을 하고 배우도 하면서도 계속 뉴에이지 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아시다시피 모든 뉴에이지 사상이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는 그곳이 마치 파라다이스로 여겨졌습니다.
제가 오직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어머니를 통해서 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년에 한번씩 저를 방문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나는 너의 성공이나 돈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나는 정말 네 영혼이 걱정이다. 네가 지금처럼 살다 죽으면 너는 심판을 받을것이다” 그 말씀은 제 영혼을 깊이 울렸지만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1997 년, 그 무렵은 저의 가족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 해 바로 전 4년동안 저희 가족의 5명이 사망을 하였는데, 저의 아내가 암으로 죽었고 몇 달 후에 저의 동생이 바하마에서 보트사고로 죽었으며, 곧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몇달 후에 저의 동생이 보고타에서 자살을 하였고 3개월 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저와 저의 여형제들만 남았고 저는 친지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다시 콜롬비아를 방문하였습니다.
저의 한 누이는 하느님께서 남은 우리 가족을 곧 다 데려가실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질병이 있던 본인이 다음 차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그녀는 저에게 아기 예수님의 9일 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성당에 갈 것을 청하였고 저는 누이와 함께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크리스챤을 핍박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죄와 지옥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본을 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 제가 성당에 간 것은 저의 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성당에 갔을때 그 곳 신부님께서 구일기도를 소개하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청하면 아기예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꽤 흥미로왔습니다. 어쩌면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받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그 구일기도는 하느님과 상관없이 제가 그동안 해 왔던 일종의 주술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저의 누이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이 아기가 능력이 있는데?” 그녀는 모든 기적에 대한 증언들을 저에게 말해주었고 저는 이 아기에게 나의 삶을 바꿔 달라고 청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많은 돈을 가지고 은퇴하여 제가 보았던 일부다처제인 인도네시아 섬에 가서 여러 여자들과 함께 살게 해달고 청했습니다.
이 구일기도는 12월 16일에 시작해서 12월 24일 자정미사에 끝이 납니다. 25일 크리스마스날 저는 제가 있던 곳에서 1시간 반쯤 걸리는 제가 태어난 마을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저에게 하느님과 상관없이 춤추고 마시는 파티하는 날일 뿐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한밤중에 저는 저의 짚차를 몰고 제 고향의 숙부 댁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날 밤부터 저의 삶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저의 계획과는 달랐지만 말입니다. 하느님은 기회를 놓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제가 숙부댁 농장 게이트에 도달하였을때 저는 숲 속에서 튀어나온 6명의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납치를 당하였습니다. 이야기가 깁니다만 그들은 콜롬비아 반군인 게릴라였으며 보상금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제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의 유머 감각을 아실것입니다. 상상이 가시겠지만 저는 너무도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저의 손을 뒤로 묶고 얼굴엔 후드를 씌운 채 허리에 로프를 묶고 정글로 끌고 가 가두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군대가 저를 찾아 모든 곳을 뒤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밤 그들은 저를 숨기기 위해 더 깊은 정글속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저를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한참을 들어간 후에 새벽녂이 되자 저를 동굴에 감금하였는데 그 곳에 있는 온갖 박쥐며 온갖 벌레들이 저에게 달려들어 물어도 저는 손이 묶여 있었으므로 긁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그렇게 15일을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번 동굴에서 저를 끌어내어 야생뿌리, 야생과일 등 그들이 찾아낸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비상시 그런 식으로 연명하는 것이 익숙해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점점 약해졌고, 분노에 찼고, 절박해져 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그들에 대한 미움으로 찼으나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 비참한 상황은 표현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납치당한 기간은 총 6개월이었습니다.
15일째 되는 날 저는 동굴 밖으로 끌어내어졌고, 많은 어린 게릴라들에게 둘러 싸여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 사령관이라고 하는 자가 저에게 매우 큰 금액의 보상금을 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의 여형제들을 죽이겠다는 온갖 정신적인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처음 저를 잡은 자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보상금이 지불되는대로 저를 죽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
바로 그날 밤 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신비체험은 여러분에게 몇 백년이 걸려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 체험은 인식의 각성 (밝힘) 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체험은 8 혹은 9시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만 영적으로는 시간을 잴 수 없습니다.
여러분께 전하는 이 체험은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지만 제가 이 체험을 한 것은 제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서 하느님을 말할 가장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서 말 그대로 교회를 박해했으며 크리스쳔을 조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느님을 등지고 살았으나 하느님께서 저를 영원한 심판 으로 부터 구해주셨습니다. 또한 게릴라들로부터 저를 구하시고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이자리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을 증거하기 위해 선 것이며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제 삶 안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는지 밖에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제가 이 신비한 체험인 의식의 각성을 체험하기까지 저는 완전히 망가진 인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동굴에서 살아날 가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그때까지 저에게는 돈이 하느님이었으나 그들이 저의 모든 것과 돈을 가져가 버릴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때 밑바닥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그보다 더 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이 제 삶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세살 의 자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집의 뒷마당에 세살인 제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정원의 모든 화초들을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정부가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동굴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 동굴 안에서 완전하게 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었으며 그 당시 47세의 제가 실제로 정확하게 세살짜리 자신이 되어있었습니다. 얼마나 이상한지 상상하실수 있을겁니다. 저는 동굴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그들이 제가 도망치는줄 알고 저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움직일 수도 없이 계속 그렇게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계속 조금씩 조금씩 제자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15일동안 너무도 많은 벌레와 동물들에게 물려서 제 피가 독에 감염되어 환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제자신의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속 저의 12 13 14 15세의 제 자신을 보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영적인 깊은 고통이었습니다. 죄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점점 더 나이가 들면서 어두움 속에서 행했던 모든 죄의 과정을 보며 저의 고통은 점점 더 깊어 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 온 생애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더욱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첫부분의 체험은 비록 알수 없는 신비한 일이었지만, 제가 의식이 있었고 깨어있는 현실이었으므로 어느정도 제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제가 깨어있고 의식이 있는 상태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번엔 풀밭에 얼굴을 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잔디밭은 꽤 높은 산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고요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완벽한 고요함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기쁨과 평화와 자유의 상태였습니다. 그 자유는 단지 게릴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이 지상에서의 삶으로 부터의 자유였습니다. 저는 마침내 자유를 느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산꼭대기에 있는 믿을수 없도록 아름답고 놀라운 빛의 도시를 볼수 있었으며 그 도시가 아주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그 도시의 안과 밖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그 도시는 어떤 방법으로도 여러분에게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저는 이 모든 체험을 하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지식을 가진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제 영혼이 그 도시로 가야 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크고 엄청나서 마치 온 우주의 모든 곳에서 나는 소리와도 같았고 제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였습니다. 너무도 큰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저를 태우는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 목소리를 거부하자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영혼이 육체를 떠났을때 하느님을 거부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랑이 없이 삶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사랑 앞에 설 수가 없게 되며 그것을 참을 수가 없게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멈추시자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두렵고 끔찍한 지옥의 꼭대기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것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33년 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해 왔었으나 제가 지옥의 꼭대기에 떠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저는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무언가를 읽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생 교회, 집, 학교를 통해 카톨릭 교리를 배웠을 때 그것을 비웃었으며, 다른 사람이 저에게 알려준 것도 아닙니다. 제가 그 곳에 가 보았기 때문에 그 곳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립니다. 제 체험의 이유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자연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분이 상상하실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경험한 것들을 완벽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오직 그중 아주 작은 부분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주 더럽고 두꺼운 안개가 있는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가까이 다가 가며 그것이 안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모든 입자는 지옥에 떨어진 심판받은 영혼으로, 죄로 인해 완전히 악의 형태로 변형된 인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정확히 누가 어떠한 죄로 인해 어떻게 변형이 되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분노와 미움과 절망을 느낄수 있었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려 하였으나 오직 짐승 혹은 맹수와 같은 소리가 났으며 그러자 그것이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는 그들이 하려는 말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더 깊이 내려다 보자 죄에 따른 여러 심판의 단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에는 그 곳을 지배하는 사탄의 집단이 있었으며 그들은 인간이 아닌 추락한 천사의 영의 형상이었습니다. 모든 사탄의 집단은 각기 다른 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33년을 살면서 지은 대죄가 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았습니다.
이 체험은 오래 지속되었고 그 후,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저는 다시 그 잔디밭에 얼굴을 향한 채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말씀드리자면 몇 년이라도 걸릴 것입니다.
저는 책도 출간하였고, 이사명을 수행하면서 체험과 관련하여 수많은 주제로 강연을 해왔지만 저는 아직도 겉표면 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어두운 영적인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매우 마지막 중 마지막 시기를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곳에 마지막 때의 메세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선과 악의 마지막 전쟁에서 지금 있는 군사들과 앞으로 올 군사들이 구원의 경제(economy of salvation) 를 완성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구원에 경제에 대해 말씀하셨고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주님께서 창조한 모든 인류에 대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대전에서 사랑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모든 인류가 그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힌두교인, 불교인, 유대인, 모슬렘,크리스챤에 관계없이 우리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오는 그 순간 우리는 주님의 대전을 마주하게 될 것이며 사랑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되돌려 주어야 함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카톨릭으로 창조하셨다는 말로 설명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카톨릭 교회는 당신의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이즘의 지속이며 유대인은 우리의 맏 형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유대이즘을 기초로 세워졌다고 말씀하셨고 유대이즘의 완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의 표징은 설명이 필요없이 한순간에 유대인이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선택된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들이 커다란 배교로부터 교회를 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카톨릭 교회가 영혼의 어머니이며 카톨릭인 우리가 온 인류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카톨릭 신자인 우리가 성체와 보속의 도구이므로, 성체로 인하여 우리가 생명의 빵이 되어 온 인류를 먹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사탄이 저의 나이 14세에 저에게 카톨릭 교회를 훔쳐갔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저에게서 고백성사를 훔쳐갔습니다. 성체와 보속의 도구로 창조된 저는 고백성사로 살아야 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이 그것을 유지하고 준비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고백성사를 통해서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고백성사에 의해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게 자신을 유지했어야 했었습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하여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님의 도구로서 자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백성사를 주셨으며 주님께서는 고백성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중재인을 주신 큰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는 자만심의 왕좌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만심의 왕좌를 물리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죄인인 사제 앞에 겸손되이 무릎꿇고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제를 선택하시고 도유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로 이끌어가는 사탄으로 부터의 구속을 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교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대죄는 타락한 천사에 의해 보호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천사는 오직 교회에만 복종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를 풀어줄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무릎꿇고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교회가 우리를 죄로 부터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탄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고백성사는 카톨릭에 주어진 큰 선물이며 동시에 큰 의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체를 영함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감실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얼굴이 매우 빛났으므로 히브리인들은 그의 얼굴에 베일을 씌었습니다. 그 하느님이 바로 성체에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해와 같이 빛나는 위대한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체를 영하는 순간에 우리는 평화와 화해로 하느님의 은총안에 있게 되어 살아있는 감실이 되며, 우리자신이 그리스도가 되는 그 순간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그 순간,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질 위험에 있는 영혼을 성체로서 완벽하게 준비된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그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3년간 제가 모시지 않은 영성체로 인해 제가 느낀 고통을 상상하실수 없을 겁니다. 제가 신앙을 지키고, 저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구했어야 할 영혼을 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카톨릭 신자가 죽어서 보아야 할 가장 큰 고통은 본인이 모시지 않은 낭비한 성체입니다. 우리의 삶의 가장 큰 사명은 단순하게 신앙을 지키며 성체에 대한 신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고 교회를 나설때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믿을수 없는 하느님의 능력의 빛이 나옵니다. 그것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께서 아픈이를 치유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지금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하느님 대전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큰 의무입니다. 성체보다 더 큰 은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지막 때로 갈수록 사탄은 더욱 심하게 성스러운 전통을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므로 영적전쟁은 더욱 심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교회의 교계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후계인 교황님을 알아보고 그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순종할때 사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유혹은 할 수 있지만 힘은 없습니다. 순종이 사탄을 이겨내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자만심의 왕이므로 겸손은 사탄을 물리칩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연옥의 상태에 있게 하셨으며 저는 허리까지 호수에 잠겨있었습니다. 호수 앞에는 매우 거대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호수와 거대한 바위와의 거리는 해와 지구사이 간격만큼이나 매우 멀었지만 모든것이 한 순간에 있었습니다. 그 바위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의 죄의 상태로 인해 그 곳을 바라 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물 안으로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때 저는 제가 33년 동안 지은 죄 가운데 서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각각의 사탄의 영을 보았습니다. 제 영혼은 그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 하나 하나를 볼 때마다 제가 사탄에게 유혹 받았던 순간, 그리고 그 유혹을 받아드리고 죄를 범한 순간과 그 각 결과가 어떻게 저의 삶과, 저의 온 가족과, 저의 다음 세대와, 연옥영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았고, 그로인해 성교회에 주어지는 은총이 줄어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연옥영혼이 겪게 될 일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평생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연옥영혼은 우리보다 한 단계 앞선 빛의 삶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곳의 삶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다시 어머니의 모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 지상의 삶에 잠겨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각기 다른 단계에서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연옥에는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깐이라도 영적인세계를 볼 수 있다면 너무도 많은 영혼들이 아직 천국으로 가지 못한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삶을 끊으면서 아주 천천히 올라갑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매우 깊은 고통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인식과 순수한 지식의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 더욱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옥상태에서 겪은 체험은 매우 길고 깊은 체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제가 그 바위를 보려 하였을 때 빛으로 인해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빛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그것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나타내기 시작하셨고, 제가 처음 본것은 예수님의 두 손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저를 부르고 계신 것을 알았지만, 저는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안에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이 열려있다. 나는 이곳에 너를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가 없구나.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나의 자비에 의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것이다. 너는 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한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저에게 놀랍도록 길게 사랑에 대한 교육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셨는지 설명해 주셨고 우리 영혼이 알 수 있는 지식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조건없이 사랑하지 않는 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흐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하고 살찌우게 하는 방법은 오직 우리가 서로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모태안에 있는것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임신했을때 9개월동안 매우 주의하며 아기가 잉태되어 나올 때까지 태중에 아기를 보살피고 먹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 영혼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영혼은 육체라는 모태안에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마치고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하느님의 시간이 되었을때 그 아기가 건강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아기와 같은 영혼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흘러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때 완성되는 것인데 저는 한번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수안에서 움직일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저에게 주님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을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통하여 저는 끝이 없는 순결의 바다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바다가 하느님의 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고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입은 사람들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본 하느님의 영광은 저의 죄의 상태로 인해, 아주 작은, 가장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가 보았던 하느님의 영광의 아주 작은 한 점이라도 본다면 여러분은 평생 하느님 앞에 무릎끓고 결코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다시 예수님의 눈을 통해 성모님을 체험하였고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한번도 저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저의 어머니임을 보여 주셨으며 제가 성모님의 모태 안에 있는 아기로서 영적인 탯줄로 연결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제마음에서 흘러나와 주님께 가는 모든 것은 성모님의 모태를 통하여 갔고, 하느님으로부터 저에게 오는 모든 것 역시 성모님의 모태를 통해 저에게 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저에게 놀라운 천사들에 관한 것들, 제 삶에서의 그들이 했던 일들을 보여주셨으며 겸손과 순종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고, 이 물질세상에서 우리가 맞서고 있는 영적인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변화되어 돌아오게 하셨고, 그 이후 5개월 반 동안 인질로 잡혀있으며 그 때 제가 주님께 청한 것은 고백성사를 받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설명 할 수 없지만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게릴라에 끌려 길로 나왔습니다. 게릴라들은 저에게 뒤돌아 보지 말고 곧바로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제 생애의 가장 긴 걸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뒤에서 저를 쏘아 죽이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풀어주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한참을 걸었고, 버스를 발견하고, 마침내 제가 구조되었을때, 저는 6개월 동안 같은 옷을 입고 수염은 어깨까지 길었으며 동굴에서 살다 나온 미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때, 프란치스칸 수도원으로 고백성사를 보러갔습니다. 고백성사가 얼마나 길었을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그리고 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저의 집으로 돌아가서 2년 동안 침묵하며 지냈습니다.
저는 교회로 돌아갔고, 카톨릭 교회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교리며, 성서,교회의 박사인 성인전등을 읽으며 주님으로 부터 배운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성지주일 날, 정오 미사에서 십자가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저의 사명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해야할 사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일을 그만두고 콜롬비아 보고타 교구하에 “사랑의 순례”(Pilgram of Love) 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선교 사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온 세계를 다녔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제가 가는 모든 곳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곳이며 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모두 주님께서 이름을 불러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2 부 –
제가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저는 순례를 시작하였고 저의 사명은 사랑의 순례 라고 불리웁니다. 그 의미는 제가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 임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신앙과 진리의 길로 되돌려 놓으셨고 제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스스로 그길을 가야합니다. 그것은 매일의 전투와도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회개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회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깨어서 회개를 위해 싸우고 싸워야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하는 일이 무릎을 꿇는 것임을 주님으로 부터 배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선 저는 무릎을 꿇고 제 자신을 땅에 내려놓습니다. 저는 주님께 머리를 숙이고 자비를 청합니다. “주님, 오늘 저에게 무슨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잘못을 할것입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저는 저에게 저의 죄를 인정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저는 제가 제 손에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이미 할일을 다한 사람처럼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 마음에 주님께서 진리를 심어주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저는 싸우며 걸어가야합니다. 말씀을 전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교회를 떠나서 부정하던 모든 것들을 저를 놀라운 세계로 이끌어 보여주셨던 것을 전해야합니다. 이제 저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체험한 것을 증거해야 할 너무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그리스도 몸의 신비를 더욱 깊이 알 수 있게 되므로 이것이 저에게는 크나큰 은총입니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앎으로써 저는 그리스도 몸의 신비를 더 깊게 보게 됩니다. 그로인해 참으로 저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교회안에서 그리스도 몸의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인류를 먹여야할 생명의 빵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성전을 이루는 살아있는 반석임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수 많은 영혼의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성체와 보속의 도구로서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계획을 완성하는데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단순한 믿음의 삶가운데, 성체의 도구로서의 믿음을 굳게 가질때마다, 우리의 심장이 뛰는 매순간 우리는 놀랍도록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믿음으로 돌아왔을때 제가 LA 성당에 있을때였습니다. 수녀들이 성당으로 들어와 제앞에 앉았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저는 그때 믿음으로 다시 돌아와 배우고 있었고, 그 전에는 수녀들을 보면서도 한번도 제 자신이 궁금해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돌아온 저는 모든 것을 주의깊게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수도생활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수도의 삶의 놀라운 은총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님께 봉헌함으로써 영혼을 구원하는 보속의 도구가 되는 삶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신비한 방법으로 수도자의 삶을 보여주셨는데, 가난과 겸손과 순종을 하느님께 천명함이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힘을 가질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으며 신앙에 굳건한 종교인의 심장이 박동할때마다 주님께서 어떻게 영혼들을 구원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어 흐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영혼을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을때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도 큰 책임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제가 성당밖으로 나오자 한 수녀가 다가와 “뵌적이 없는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녀는 계속 저에게 물어보며 귀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겸손하게 대답하여라. 이 수녀를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은 사실 그 수녀의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그녀의 코도 싫었고, 모든것이 싫었습니다.” (웃음)
그러나 주님께서 자꾸 저를 재촉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는 저에게 “당신은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것 같은데…말씀하세요!”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상관하지 마세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고 결국 저는 그 수녀원에 가서 2시간동안 저의 체험을 증언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상상이 가실겁니다. 그들은 매일 저에게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매우 친해졌고 저의 이 사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신비체험을 나누고 나왔을때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이 수도생활에 비젼을 잃고 위기를 겪고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저와 그들을 위해 일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회 신비체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으로 돌아오고 새롭게 되어 하느님과 허니문을 함께하고 있을 때, 그때가 확대경을 들고 남의 죄를 찾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것 같 습니다. 모든 사제는 약하고, 그들이 미사를 드릴때마다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저런, 저 성체를 드는 손좀 봐” “저것 좀 봐” 그리고는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주님께서 저를 길들이기 시작하셨습니다. 목소리를 낮추게 하시고 속도를 줄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가라앉히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남을 판단하게 되므로 입을 여는것이 두려웠습니다. 이것 저것 잘못된 것들이 눈에 띄고, 제가 마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하느님을 모욕하는 죄인들 사이에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주님의 자비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 판단하지 않고 조건없는 나눔으로 안정이 되었을때 비로소 이 순례의 사명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주는 사람, 시중드는 사람으로서 진정한 주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어머니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24 시간 우리 많은 가족들의 시중을 들면서도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저희 어머니가 아프거나 슬퍼했던 표정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직 계속 주기만 하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이시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은 받기만 하려는 세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합니다. 나누려 하지 않고 계속 주의를 받으려고만 합니다. 상대방이 계속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를 자신과 함께 울어주기를 바라기만합니다.
물론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하며 울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불평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치통을 앓고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고통에 대해 완벽하게 이야기 하여서 상대방이 결국 치통을 느끼도록 합니다. (웃음) 그들은 혼자서 고통을 느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온 주위 사람들이 눈을 뜨면 함께 그 고통을 겪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얼마나 은총을 낭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은총중의 하나는 고통과 아픔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랍도록 큰 보속의 도구가 되는지 모릅니다. 또한 연옥영혼을 도울수 있는 얼마나 큰 도구가 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커다란 도구가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계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참다운 주님의 종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지나실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희망을 발산 하고 기쁨과 평화를 발산하는 빛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위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있는 그대로 그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모든사람을 치유하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그리스도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것을 십자가에 내려놓기를 청하십니다.
삶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십시오. 못으로 내려치게 하십시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십시오. 모든 어려움과 고통과 시련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릴때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 시련과 고통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받아들이며 하느님께 봉헌할때 그것이 여러분 주위와 가족에게 치유와 은총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과 친구 친지의 회개를 걱정하며 묻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을 회개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거룩해지는것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거룩해지도록 노력하는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것만이 방법입니다. 걱정한다고 되지 않으며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도 도움이 안됩니다. 오직 자신이 변화될때만이 그것이 가능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이 변화되고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질때,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하는 모든일이 거룩해질때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의 빛을 발산할때 어두움을 향해 가고 있는 그들이 그 빛을 보고 따라올 수 있습니다.
저의 두아들은 믿음이 없이 성장했습니다. 제가 정글에서 회개하여 돌아왔을때 LA의 한 식당에서 그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저의 모든 체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지가 그들은 아무말없이 아래만 처다보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무슨생각을 하였는지 모릅니다만 그들은 아직도 믿음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의 매일 매일의 사명을 주님께 그들의 회개를 위해 봉헌합니다. 저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평생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회개하기전 1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해 내신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중 하나가 저희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걱정하며 하느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말합니까? 저는 생각을 달리 하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그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아버지의 집을 향해 순례중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지상의 잠깐의 삶에 대해 염려하지 말고 영원한 구원을 염려하십시오. 그것은 영혼을 하느님에게로 데려가기 위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그럴 때 우리는 많은 영혼, 죄인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것만이 우리가 걱정할 일입니다.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할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참된 믿음인, 영원한 삶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은데 그들은 매우 유식하며 매우 하느님을 잘 압니다. 매우 많은 것을 알고있어 거의 신학자 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전혀 영적이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삶에 대해 인식이 없으며 이 삶에서 다음 삶으로 넘어가는 삶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볼때마다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만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없습니다. 아무도 종교에 의해 구원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 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의 기초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기초로 우리의 영혼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영 적인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새롭게 교회의 복음을 전파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아실것입니다. 교회나 종교의 모양은 갖추었어도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모양이 좋질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입니다. 그곳은 카톨릭 대륙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톨릭입니다. 여러분이 그곳에 가면 매일 미사까지도 성당이 꽉 차는것을 보실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사람들은 아주 거룩한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보면 “아 거룩한 것은 아니구나. 굉장이 종교적인 사람들이구나” 하고 알것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며 종교적인 것과 영적이며 거룩한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종교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많은 영적인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것이 없다면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리사이파 일뿐입니다. 바리사이파는 여전히 존재하며 지금도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너무도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을 보지만 그들은 영적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동정심도 없으며, 용서하지 못합니다. 결국 텅 비어 있습니다.
카톨릭으로서 가장 큰 사명은 우리가 확실하게 우리의 신앙의 신비로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의 보물들을 깨닫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저는 사람들이 종말에 관한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의 박사에 관한 책이나 기본교리에 대한 것도 읽어본 적도 없으며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뿌리로 돌아가 배워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야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부터 시작해야합니다. 그러면 많은것이 변화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대전에 바로 오늘, 오늘 설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것은 종말이 오는 때가 아니라 우리에게 밝히신 것을 보게 되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며 오늘이 하느님의 날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야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영혼이며 하느님은 여러분을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우라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한 날임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 라는 말씀을 읽을때 여러분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므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여러분이 하느님께 순종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결혼을 했다고 합시다. 그는 그의 아내, 혹은 남편에게 충실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충실하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충실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이순간 여기서 죽게 된다면, 그순간 여러분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입니까? 돈입니까? 꿈입니까? 장래 목표입니까? 걱정 두려움 우울..등 뭔지 모르겠지만 세상적인것입니까?
저는 말합니다. 이순간,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그 것, 큰 걱정, 큰 일 등…그것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가는 것을 막을 것이며 여러분은 큰 곤란에 빠질 것입니다. 참으로 큰 곤란에 빠질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분이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그곳에 여러분의 마음(영혼) 이 있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세계를 잠시만 볼 수 있다면 너무도 많은 영혼들이 천국을 가지못하고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랄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저곳(천국)에 둘것을 듣고도 모든것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도 곁들어 얻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러합니다.
우리의 마음안에 얼마나 우상을 두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첫째 계명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첫째 계명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순간 여러분이 죽는다면, 여러분은 거꾸로 향하여 있게 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이 오늘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래로 향할 것입니다.
그렇게 단순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서에서와 같이 단순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셔야합니다. 복음서는 흑 과 백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색을 덧칠하려고 합니다.
때때로 제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묻습니다. “주님께서 혹시 이혼과 재혼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나요?”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그것에 대해 특별히 말씀하신것은 별로 없는데요. 하느님의 계명을 읽어보세요. 간음하지 말라는 것을 읽을 수 있을겁니다.”그게 답입니다. 다른 답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 입니다. 그계명을 지키던지, 지키지 안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께 속하든지 사탄에 속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때때로 사람들은 복음을 디자인 합니다. 복음서를, 십계명을 디자인하고는 말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며 사랑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어떻게 됬었습니까? 하느님의 정의는 완벽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것을 바꿀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내려와도 하느님의 말씀의 하나라도 바꾸면 불에 던져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때때로 놀라운 것은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신앙을 자기자신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자신도 예전에 지옥이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편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제 자신을 바꾸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삶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자신에게 맞춥니다. 그렇기때문에 개신교가 나왔고, 모든 이상주의며 많은 것들이 나와서 계명을 바꾸고, 전례를 바꾸고, 하나의 교리를 다른 교리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로서 지상의 순례를 하며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가기위해 싸워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지상의 삶은 큰 기회입니다. 이 소중한 삶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소중한 성체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이 크고 놀라운 선물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깨어난다면 우리의 삶은 즉시 완전하게 변화될 것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누구로 창조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저는 14살에 고백성사를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 어둠에 있었습니다. 고백성사의 중재인인 사제에 죄를 고백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를 파견하셨을때에 그 가운데 가리옷 유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왔을때 그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난 후였습니다. 가리옷 유다 역시 병자를 고치고 사탄을 몰아내는 등 다른 제자들처럼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느냐고 여러분을 말씀하실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신실하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 다른 곳에 가서 병자가 치유되고, 많은 기적을 보고와서는 왜 카톨릭 교회는 그런일이 많지 않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뭔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치유나 영의 드러남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와 영혼을 먹여살리는 도구라는 신앙의 신비를 이해해야 합니다. 기적이 다가 아닙니다.
두 세사람이 모여 청할때 내가 항상 그곳에 있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성령은 우리가 청할때 항상 일하십니다. 여러 종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도구로 쓰여지는 사람이 거룩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성령에게 기도하여 치유한다고 해서 그사람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의 자격증같은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여 가는 사랑의 순례를 하며 이해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사람이며 더이상 자연적인 이성이 있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초자연적인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은총이 주어진 많은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저역시 33년 동안 잠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낭비이고 얼마나 고통스런 현실인지 모릅니다. 저는 그 상태로 죽지 않은것에 대해 하느님께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카톨릭 신자가 죽어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하느님을 만났을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온 갖 낭비한 은총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대로 믿음을 지켰더라면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했을지를 보는 것입니다.
제가 성모님을 통해 본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수호천사가 있는 것을 아실겁니다. 모든 천사들은 빛의 왕국에서 온 빛입니다. 여러분이 이웃에게 선행을 행할때 마다 그 사람의 수호천사가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그 의미는 여러분이 그 수호 천사로부터 빛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대전에 나아갈때 여러분의 선행에 따라 받은 만큼의 빛을 가지고 나갑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한 사람, 도와준 사람, 시중들어준 모든 사람의 수호천사로부터 받은 빛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빛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죽는다면 얼마나 많은 빛을 가지고 있을것 같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잘못 한다면, 그 사람의 수호천사가 여러분에 대해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삶에 어두운 오점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을 제대로 해놓아야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책에 대해 알고 계실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다시 쓸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죽어서 여러분의 생명의 책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결국 더러워진 책을 펼 것을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페이지가 악몽일것입니다. 지금 기회가 있을때 페이지 한장 한장 다시 쓰십시오.
성요한의 복음을 읽으면 여러분의 죄를 고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행동을 가장 빨리 고치는 방법은 하느님에게로 돌아와 신앙을 지키고 자신이 사랑과 빛의 기둥이 되기 시작하여, 자선과 동정심과 용서로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항상 자신을 인류를 위해 봉헌하려하며, 매일 매일 잠자는 시간조차도, 피가 도는 매순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이용하시도록 성령께 말씀드리며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명의 책이 모두 다시 씌어질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앞에 갈때에 여러분이 깨끗하여 질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계속 죄를 지으며 고백성사를 보는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마 연옥의 가장 밑바닥이나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믿음으로 돌아왔을 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저의 과거를 결코 기워갚지 못할 것같아 낙심 하였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조금씩 조금씩 저에게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자비의 하느님이심을 우리가 알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하라고 호소하십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I trust in You: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크게 말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느끼며 그 말을 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바오로 사도의 복음을 읽으며 매우 힘이 있게 이해한 것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육체의 가시를 가져가시도록 하느님께 세번 청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탄이고 자신을 고통스럽게하기위해 보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치유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나의 권능은 약한자에게서 드러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의미는 하느님께서 바오로 사도의 약함을 통해 그를 정화시키시고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경멸하는 한, 우리의 죄를 증오하는 한, 우리의 죄가 삶의 고통이 되어 우리가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하는 매 순간 마다 우리는 점 점 더 깊게 자신을 정화하게 되며 어쩌면 살아생전 그 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증오 했던 순간부터 주님대전에 나가는 날에 우리의 약함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결심하며, 내 삶에서 죄를 짓기를 원치 않는다고, 죄를 경멸한다고, 죄를 짓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매번 넘어질때마다 울부짖으며, 고백소로 달려가서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때 그 약함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오로는 몇 교회에 서신을 보내며, 데살로니아의 성인들에게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의문을 갖습니다.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왜 성인이라고 부르는가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거룩함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진심으로 거룩함으로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이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성인들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들이며 훗날 하느님의 왕국의 시민이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가게 될것입니다. 주님께서 집으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체험에서 돌아온 이후로 제가 매일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곳에 오기 전에도 제가 주님께 간구한 것은 오직 “주님, 제가 그곳에 가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은 당신의 사람들입니다. 제가 오직 원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의 구원입니다.”
제가 제자신이나 저의 체험으로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고 놀래주기 위해 이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저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선 것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막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평생 연기자와 작곡가로 무대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과 명예, 향락등 잘못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강연을 할 때마다 주님께 진심으로 간구합니다. 사람들의 영혼 구원이 아닌 다른 이유로 제가 저곳에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천국의 집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도 지옥으로 가길 원치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 누구도 눈으로 직접 사탄을 보길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 그 누구도 제가 보았던 것을 보길 원치 않습니다. 모두 집(천국) 으로 가길 원하므로 제가 이곳에 선것입니다. 그것만이 이유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에게.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십니다.” 라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영을 가지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서로을 위한 일이 되고 우리 모두를 더 나아지게 하여야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안에서 더 나은 사람, 인류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일년 전보다 오늘 더 나은 인간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께로 향하는 순례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마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을 향해 순례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때 여러분이 일년전과 비교하여 여전히 고집세고, 이기적이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우울해 하고 있다면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갈 곳이 없습니다. 만일 오늘 죽는다면 아주 오랫동안 그자리에 멈춰지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하고 말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탄은 우리를 종교안에서도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은 기도도 아주 열심히 하는 신심깊은 카톨릭 신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며 영적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상태는 전혀 진보하지 않은 것이며 그자리에 멈춰진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종교가 매우 쉬운것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카톨릭은 매우 풍요로운 종교이므로 잘못하면 스스로 그 안에서 길을 잃기가 매우 쉽습니다.
저의 체험에서 배운 한가지는 카톨릭은 하느님의 교회입니다.우리는 오직 하나인 하느님의 종교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많은 종교, 이념, 이상주의, 너무도 많은 주장이 있으므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카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유일한 교회이며 유대이즘의 연장인 교회입니다. 그 이상의 다른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구원은 모든 사람, 인류 에 대한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커다란 신비이지만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해하여야할 한가지는 여러분이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것에 충실한 신자로서 교회에 순종하며 그의 성사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집으로 데려다 줄 모든 것입니다. 그 이상 덧붙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전부입니다. 더이상 할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순종과 단순함과 겸손입니다.
언젠가 오하이오주에 있는 작은 타운에 있는 한여성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갔을때 그 여성은 저에게 “한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요…아마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본당일겁니다…모든 사람들이 뉴에이지에요. 본당 신부님도 뉴에이지여서, 그들은 요가를 하고.. 이것 저것 모든 뉴에이지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요.뭘…온세상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저의 극적인 체험과 저의 연기 경력 같은것들만 이야기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제가 지옥과 사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들은 하나 둘씩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나간 사람은 신부님이었습니다 (웃음)..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여 한 반 정도가 다 나갔습니다. 저는 거의 순교를 준비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웃음)
그런데 제가 강연중에 주님께서 아주 명확하게 제일 뒷자리에 앉은 한여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본당 전체가 저 여성 때문에 지탱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성은 그 본당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저에게 전화를 하였던 여성에게 그 뒷자리에 앉은 여성에 대해 물으니 그녀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여성 하나가 그 본당의 가장 거룩한 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성이 그 본당의 기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하나로 인하여 그 본당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받을 형벌을 면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본당의 단 한사람의 진정한 카톨릭 신자로 인해 그 본당의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의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만일 여러분께서 저에게 저의 체험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전하시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오직 이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저에게 단 한가지 그것을 말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며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집으로 데려오기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집 이외에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 함께 집으로 갑시다. 우리만 가지말고 우리와 함께 많은 영혼을 데려갑시다. 또한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transcrip to Korean: wisdom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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