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조명연 신부님

동정마리아 탄생축일/내가 틀렸어

김레지나 2016. 9. 8. 16:30

동정마리아 탄생축일


며칠 전, 갑곶성지에는 귀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바로 전국 주교님 영성모임을 갑곶성지에서 한 것입니다. 교회의 큰 어른들을 모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런데 몇몇 주교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건네주십니다. 또 몇 분의 주교님께서는 제가 ‘빠다킹 신부’인 것을 알고 계셨고, 제 책을 직접 사서 읽었다는 말씀도 해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저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는데, 교회의 어른들께서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고 응원까지 해주시니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알아주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더욱 더 신나게 그날 하루를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주교님들께서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데, 만약 주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또 칭찬해주시고 인정해주신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묵상을 하다 보니 주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를 지지해주셨고 또 응원해주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하나의 죄를 물어서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웃을 보내주셨고, 많은 환경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손길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분명히 매 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각자도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삶에서 벗어나, 주님을 닮은 모습인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모님의 수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성모님께서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고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받아들이시지 않았다면 주님의 사랑이 이 땅에 펼쳐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떻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이었는데도,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을 우리 역시 마음 안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고서는 마음도, 정열도 전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대화로, 글자로, 생각을 모두 표현해야 비로소 사람과 유대도 생긴다(이케다 다이사쿠).

 
내가 틀렸어

세상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틀렸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공유하면 상대방은 진솔함을 느껴 그 사람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고, 말하는 사람 역시 공개 과정에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난다. 이를 ‘공개의 효과(Effect Of Disclosure)‘라고 한다.”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저는 커다란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용기가 아니라, 커다란 지혜라고 할 수 있네요. 그 지혜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잘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겠죠?


빠다킹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