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E.M.아렐야노의 <고통의 가치>중에서 -추가

김레지나 2016. 5. 17. 16:29

고통에 대한 해결책은 더욱 큰 고통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일부가 되어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에데 영혼들을 얻어드리는 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떻게 성사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씀 안에서 현시되고 교도권에 의해 해석된 대로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삶을 살아가며 체험할 때 가능합니다.p.138

 

그녀는 하느님이 자기를 버리셨다는 것과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생각,

그럼에도 그것을 견뎌내야만 하는 크나큰 고통의 상태를 증오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한 사제가 와서 두 귀로 듣고는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희망섞인 메시지를 안겨주었습니다.

"당신의 성소를 뚜렷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고,

당신이 저지르지 않은 과실을 배상하고, 숭고하고 참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라며 그녀를 위로했습니다.

"예수님께 말씀드리세요."

사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십자가 위에 제 자신을 얹고 싶습니다. 저는 못 박히신 당신이길 원합니다."라고.p.169

 

 

세상을 버리고 영혼이 하느님 품안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슬픔의 극비입니다.

당신 아드님을 포기하는 것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때,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기쁨과 온갖 고통을 모두 합친 십자가와

당신의 드높은 사랑의 증거로서 치욕과 쓴맛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희생물의 산 제물로 바치셨고 또 그렇게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위한 그분의 최고가는 드높은 사랑의 선물은 다름 아닌 그분의 슬픔과 십자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셨다.”(요한 15,9)

이제 영혼으로서는 하느님 아드님으로부터 품어 안은 동일한 슬픔과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최고가는 사랑의 선물을 하느님 아버지께 표현할 차례입니다.   

                                                   -E.M.아렐야노의 <고통의 가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