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11년 만에… '천사 할매'가 소록도에 다시 왔다

김레지나 2016. 4. 21. 17:32
[돌아온 마리안느 수녀… "보고 싶었어" 울음바다]

40여년 한센인 위해 봉사하다 2005년 모국 오스트리아로 귀국

- 11년 前처럼…

처음 먹은 건 구수한 된장찌개, 처음 한 일은 환자들과 인사

내달 병원 개원 100주년 행사… 수녀의 삶 다룬 영화 제작 중

1962년부터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2005년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던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가 지난 14일 11년 만에 소록도를 다시 찾아 꽃바구니를 받고 있다. /소록도성당 제공

지난 14일 오후 7시 30분 전남 고흥군 소록도성당. 미사가 시작된 직후 은발의 한 외국인 할머니가 조용히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43년간 이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2005년 모국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던 '할매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81) 수녀였다. "마리안느" "할매" 미사가 끝나고 나서야 할머니를 발견한 참석자들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몇몇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다들 잘 계셨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마리안느 수녀는 1962년 2월 스물일곱 처녀의 몸으로 한센인을 돌보기 위해 소록도로 왔다. 친구이자 동료인 마가렛 피사렛(80) 수녀와 함께였다. 두 수녀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한센인을 '문둥병자'로 부르며 접촉을 꺼리던 시절,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43년간 한센인 6000여 명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일흔이 넘은 2005년 11월에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 부담이 될 때는 떠나야 한다"며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몰래 소록도를 떠났다.

국립소록도병원과 소록도성당, 고흥군은 다음 달 17일 병원 개원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두 수녀를 초청했다. 하지만 마가렛 수녀는 치매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마리안느 수녀만 소록도를 방문했다.

1960년대 전남 소록도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안느 수녀. /고흥군 제공

11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할매 수녀'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1주일을 보냈다고 성당 측은 전했다. 성당 옆 낡은 숙소에 있는 10㎡ 남짓한 방에서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하고, 낮에는 한센인 환자와 의료진 등 그리웠던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한센인 120여 명이 입원해 있는 병동 2곳도 들러, 병상에 누운 한센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한센인들은 "할매 보고 싶었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박형철 소록도병원 원장은 "워낙 격식을 싫어하는 분이라 병원을 찾은 줄도 몰랐다"며 "계속 한센인들을 조용히 만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2년 전 퇴직한 박성이(62) 전 소록도병원 간호팀장이 지난 13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동행하고 있다. 박씨는 "26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마리안느가 갑자기 떠나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며 "10년이 넘어 다시 만나다니 꿈만 같다"고 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전라도 할매'로 통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고, 된장찌개를 즐겼다. 소록도에 다시 와 처음 먹은 것도 된장찌개였다. 두 수녀는 40년 넘게 한국에 있는 동안 거의 한국 사람이 다 돼 오스트리아에 돌아간 이후 한동안 현지 젊은이들의 말을 못 알아듣기도 했다고 한다.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은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 중이다. 올해 말쯤 상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 신부는 "우리는 두 분으로부터 받기만 했다. 빈손으로 돌아간 그들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다음 달 말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다.

[고흥=조홍복 기자 powerbok@chosun.com]

 

3월 29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요한 8,51-59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선하고 겸손하신 두 수녀님>

 

 

    다시금 선거철에 접어들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는 광경을 또 보게 되는군요. 제대로 ‘포샵’한 얼굴 명함 자랑스럽게 내밀며 ‘내가 누군데!’ ‘나, 이런 사람이야!’를 외치며 사방천지를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의 얼굴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60년대 초 꽃다운 나이에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당시 양성 한센병 환우들로 가득 찼던 소록도로 건너온 두 분, 마리안 수녀님과 마가렛 수녀님.

 

    두 수녀님은 10년 20년이 아니라 장장 43년 동안 상처 입은 사람들의 외로운 섬 소록도를 한결같이 지켜왔습니다. 수녀님들은 당신들이 처음 소록도에 도착했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하셨습니다.

 

    “소록도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환자가 6천명이었습니다.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주면서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수녀님은 그야말로 한센인들의 친어머니가 되셨지요. 수녀님들의 평생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한센인들의 고통과 신음을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수녀님들의 단골 기도 주제는 한센인들의 치유였으며 한센인들의 자립이었습니다. 정성어린 치료와 보살핌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소록도를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주머니에 수녀님들은 아끼고 아낀 용돈을 찔러 넣어주곤 하셨습니다.

 

    두 수녀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했었는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전해진 소록도 주민들의 편지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큰 할매, 작은 할매,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곱던 젊음을 다 바쳐 소록도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 평생을 보내신 할머니 두 분께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수도자로서의 삶에 충실했던 두 수녀님은 철저하게도 자신들의 선행을 감추면서 모든 영광은 오로지 주님께 돌렸습니다. 수녀님들이 가장 싫어했던 것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상(償)이나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번 제대로 떠볼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볼까, 안달복달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정말이지 너무나 차이가 났습니다.

 

    병원 측이 회갑을 맞이한 수녀님을 위해 잔칫상을 차려 초대했습니다. 수녀님들은 기도시간이라며 성당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43년간의 묵묵하고 충실한 봉사 끝에 두 수녀님은 또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제대로 된 봉사를 하기도 힘들어질 것이고 오히려 이곳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

 

    두 수녀님은 요란한 송별식이 싫어 관할 구역 주교님께만 자신들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수신처가 소록도 주민들인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겨두고 섬을 떠나셨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43년 전 도착했을 때와도 똑같았습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20Kg짜리 여행 가방 하나씩이었습니다.

 

    소록도를 떠나는 새벽 두 수녀님은 멀어져가는 섬과 소록도 특유의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록도는 그분들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20대부터 70대까지의 인생 전부를 바친 소록도는 고향과도 같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녀님들께서 몰래 떠나신 것을 알게 된 한센병 환자들과 소록도 주민들은 얼마나 서운하고 또 한편으로 감사했던지 열흘 넘게 소록도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있는 수녀님들의 작은 방문 앞에는 수녀님들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어로 붙여져 있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수녀님이 얼마나 소록도를 사랑했던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답니다.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철저하게도 수도자적이고 참으로 겸손했던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겸손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원과 소명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당신이 오고 싶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그분께서 원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영광은 털끝만큼도 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했습니다. 이런 겸손하신 아들 예수님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흐뭇하셨습니다. 얼마나 대견스럽고 든든하셨기에 겸손하신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