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스크랩]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김레지나 2016. 2. 17. 10:46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생일』(비채, 2006)

......................................................................

 

 비록 메아리 없는 짝사랑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요 사랑의 으뜸이라고 말했던 장영희 교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녀는 목발에 의지한 불편함보다 암과 싸우는 고단한 일상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랑 없는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랑에 익숙치 않는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세요!" 그녀의 마음에 기대어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여성시인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는다.

 

 디킨슨은 솔직 순수한 성찰에 비중을 두고 독신의 삶을 외롭게 살다간 시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건강악화로 학업을 중단하고는 집에 틀어박혀 오로지 독서와 시 쓰기에만 전념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막 사랑에 눈뜰 무렵 갑자기 나빠진 눈은 치료를 받았지만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어머니가 병으로 거동을 못하자 곁에서 간호하기 바빴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죽자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디킨슨은 44세 이후 일체 바깥출입을 삼간 채 고독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정원 가꾸기, 요리, 편지 쓰기,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같이 놀아주는 정도였다.

 

 시련은 계속되어 52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잃는다. 디킨슨은 식구들이 자신의 병에 옮아 죽는 게 아닌지 의심하며 괴로워했다. 그녀는 더욱 바깥출입을 삼가고 외롭게 살다가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교회 장례식 대신 집에서 장례를 치루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시신에다 평소 좋아하던 흰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에 바이올렛 핀을 꽂아주었다고 한다. 생전에 친구들이 시집 출판을 권했지만 디킨슨은 겨우 10편만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여동생이 죽은 언니의 방에서 찾아낸 원고뭉치가 10권의 시집으로 묶어도 될 만큼의 분량이었다.

 

 매우 지적이고 자유주의자이며 강한 개성의 디킨슨은 험난한 현실에서 느꼈던 갈등과 좌절 속에서도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아픈 마음 하나 달래려고 틈틈이 시를 썼다. 훗날 그녀의 시를 통해 누군가 함께 돋우어가는 삶을 살고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가 둥지로 되돌아가기도 하였을 것이니 정녕 헛되이 살다간 것은 아니리라. 그와는 삶의 방식이 많이 달랐지만 장영희 교수도 그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장영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살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고, 결국 삶이란 ‘사랑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배워가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음을 전제하면서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어요. 내가 남의 말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망했지만, 내가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더군요.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고 말했다. 누군가 "어머니가 그리 아프시다는데 글을 쓰고 할 정신이 있냐?"고 조롱하듯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으니 내 아픈 마음 하나 달래기 위한 선행이라고 소심하게 말해버렸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