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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자아여, 나는 너를 시험할 것이다. 네가 내 뜻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도를 할 때 좋은 느낌이 들고 경건하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 볼 것이다.
내가 너를 시험할 때는 네 기도가 무척이나 지치고 메마르고 무감각해져 있을 때다. 네 영혼의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발이 아프고 지쳐서 나를 갈망하고, 때로는 나에 대한 목마름으로 죽을 것같을 것이다.
너는 진리를 관상하고 싶어 한다. 나에게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고 너도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네 영혼의 고통은 벌어진 상처의 고통과 같을 것이다. 나를 믿어라. 이 순간에는 찬미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부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내가 네 기도를 만들어주겠다. 나를 믿어라.
이 시기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인내하려아. 네 메마른 의지밖에는 나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네 모든 고통스러운 너그러움으로 그것을 바친다면, 너는 나에게 한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면 나는 진정으로 너를 돕고, 네 고통을 연민으로 가득 찬 눈으로 애타게 바라보며, 너에게 보상해 줄 날을 기다리고, 네 고통이 너무 극심해 보일 때 그것을 재빨리 완화해 줄 것이다.
이때가 바로 기도 중에 인내하고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만족해야 할 때다. 생각할 수 없다면 생각하려고 애쓰지 마라. 말할 수 없다면 말하려고 하지 마라. 항상 평안하여라. 그순간에 바치는 평안함의 기도가 정확히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다.
너는 네 기도를 엿보고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고 싶을 것이다. 그 유혹을 뿌리쳐라. 너 자신을 버려라. 네 이해와 기억을 버려라. 그것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나에게 넘겨다오. 내가 너에게 주는 기도를 받아들이고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마라. 내가 부여한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기억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말해다오.
네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분심이 들면, 그저 부드럽고 차분하게 네 안에 있는 나에게 주목하여라.
프란치스코는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알아 이렇게 말했다. "기도 안에 머무르십시오. 분심이 들 때는 가능하면 그 분심을 부드럽게 외면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가장 좋은 표정을 짓고 그 해충들이 마음껏 괴롭히도록 놔둔 채 그동안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하느님은 그것을 괘념하지 않습니다. 그 해충들을 부드럽고 차분한 동작으로 쫗아버리십시오. 그러나 경고나 짜증을 담아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산란하게 할 것입니다.
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게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도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를 수 있지만, 한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당신께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분께 기쁨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편에서 기다리는 것도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 안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하나도 하지않고, 단지 그분께서 우리가 있기를 바라시는 곳에 머무는 것으로도 하느님의 현존 안에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네가 나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고행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후에, 현존에서 느끼는 기쁨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겟세마니에서 바친 고행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그곳에서 체험한 지복직관의 무한한 기쁨도 내 영혼의 영적 슬픔이나 인성을 가진 자로서 느끼는 내 고통을 막지 못했다.
나의 또 다른 자아여, 너는 메마름 속에서 경험한 황량함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조금은 나를 닮을 수 있다. 이 생애에서 위안이 되는 내 현존을 느끼는 기쁨을 두 번 다시 갖기 않는 것이 너를 위한 나의 뜻이라면 그것도 기꺼이 나에게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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