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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심기일전, 애통을 수습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며 차분히 우리들 모두의 문제를 곰곰이 성찰해 보고 싶어진다. 이 대목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약속해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렬한 자성이 생각난다.
“한 도시의 모습은 그 안에 사는 구성원 모두의 얼굴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같은 것이다. 지도자나 관리들이 보다 큰 책임을 지고 있겠지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시민도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남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나 자신의 책임부터 추슬러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오늘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관련해 나에겐 과연 어떤 ‘책임’이 있을까. 나는 그 책임만큼 행동했던 사람인가, 아니면 입만 살아있던 사람인가. 치열하게 짚어보자니, 얼마 전 홀연 세상을 뜬 한 신부가 생각난다.
그 신부는 성금요일, 바로 예수님께서 숨지신 날 새벽녘에 홀로 운명했다. 부고를 접한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 착한 신부님이 돌아가셨다고? 그 착한 신부가 벌써!”
그는 내가 한평생 만난 신부 중 가장 착한 신부였다. 그는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나무를 심어주는 신부로 유명했다. 그는 평소 사비를 털어 여러 종의 나무를 확보해뒀다. 그러고는 자신의 트럭에 싣고 다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 심어줬다. 나무뿐 아니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나눴다.
한번은 그가 관장으로 있던 복지관에 특강 품앗이를 해줬다. 돌아오는 내 차 안에는 누룽지를 비롯한 선물 보따리가 한 가득 실려 있었다. 내가 미얀마 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현지 신부에게 전해 달라며 돈이 든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그는 2000년대 초 미얀마 교민 사목의 소임을 맡아 헌신하다 당뇨병을 얻었다. 전언에 따르면 몸을 사리지 않고 일만 해서 그랬단다. 우리를 놀래킨 돌연사의 원인도 과로란다.
나는 평소 그가 누구를 험담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사회 비판도 모른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을 뿐이었다. 없는 사람은 도와주고, 필요한 곳엔 나무를 심고,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퍼줬다. 입은 다물고, 책임만 다한 신부님!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숨은 덕행을 기렸다.
미얀마에서 조문을 왔던 한 형제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유영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미얀마에서도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았다’고 하시며 나무심기와 목수 일을 좋아했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무로 책상·걸상과 신발장을 만들어 고아원 보내시고 남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셨지요.”
그는 그러면서 “장례 미사에서 한 신부님이 조사를 읽다가 ‘세월호 사고로 죽은 어린 학생들이 하도 딱해 하느님이 그 인솔자로 유 신부를 고르셨나 보다’라며 애써 위로를 삼던 말에 저도 큰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정말 유 신부가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인솔하고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