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관계 속의 인간 - 머리말, 남녀 창조의 근본원리와 그릇된 성차별

김레지나 2012. 10. 7. 15:50

 

송봉모 신부님의 책 <관계 속의 인간>에서 발췌

 

<머리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을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많은 장소를 여행했지만 모든 길이 당신을 향해 곧바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아득히 먼 우주에서부터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공간대와 무한한 시간대를 거쳐오면서 때로 방황하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으나 나는 언젠가는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당신을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완전히 외롭지만은 안았으며 공허한 밤에도 눈물이 내 가슴을 채우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신을 만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내 자신이 될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류시화.<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완전한 존재가 된다.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 말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관계적 존재임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친밀한 관계를 누리시는 존재이다. 인간도 자신과 타인, 하느님과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친밀한 관계 경험이 없이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의도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1. 남녀 창조의 근본원리와 그릇된 성차별

 

  "하느님께서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슨 짐승을 부려라!" (창 1:26-28. 강조 표시는 필자에 의한 것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 그것은 히브리어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이 문장은 남자와 여자가 '지어내다' 하는 동사 앞에 도치되어 강조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적 구분이 축복보다 앞서 강조되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기에 서로 필요 불가결한 존재이며, 서로 밀접한 결합과 일치를 이우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곧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태초부터 함께 태어났기에 둘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이 창세기 2장에 나오는 또 다른 창조 이야기를 근거로 하여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주장을 한다. 먼저 관련된 성서구절을 읽어보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는,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이렇게 아담은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리라.!'

  이리하여 남자는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몸이 되게 되었다.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창 2:18,21-25 일부 구절은 필자의 번역임.)

 

  성차별론자들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나중에 태어났고, 그것도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며 여자가 생긴 이유도 남자를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열등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남녀는 근본적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 관계이지만 둘 사이에 평등성은 없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일까? 여자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창조되었다는 이야기와 관련된, 랍비들이 전해주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 하와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아담의 갈비뼈를 세어본다.

혹시 외출한 사이에 또 다른 갈비뼈로 다른 여자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해서.

  - 여자가 독을 품으면 남자보다 오래 가고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까닭은

뼈가 흙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여자는 단단한 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왜 여자 목소리가 남자보다 고음이고 날카로운가? 인간의 몸을 빈 통이라 간주하고, 그 안에다 흙과 뼈를 담아 흔들어 보라. 통에다 흙을 담았을 때 나는 소리와 뼈를 담았을 때 나는 소리 중 어느 소리가 더 날카롭겠는가?

 

성차별론자들이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이다.

1)여자는 남자보다 늦게 창조되었다

2)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3)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4)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5)여자로 인해서 원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

이 다섯 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과연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인가를 증명해 보자.

 

1)여자가 남자보다 나중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인가?

  여자가 아담. 동산. 나무. 동물들이 다 만들어진 다음에 창조되었다고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열등하다는 논리를 첫번째 창조 이야기에 적용해 보자. 첫번째 창조 이야기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맨 나중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기 보다 앞서 창조된 것들인 해. 달. 물고기 짐승들에 종속되는 열등한 존재여야 한다. 통상 첫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인간이 제일 나중에 창조된 것은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맨 나중에 창조된 여자는 창조의 결정이요 남성보다 탁월한 존재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남자가 여자 창조와 관련해서 어떤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없다. 하느님의 의논 상대자가 된 것도 참여자가 된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목격자 노릇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느님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분이 다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하느님이 여자를 만들기 전까지 아담은 성의 구분이 없는 양성 구유자(androgyne, 兩性具有者)였다. 아담이 남자로 구분되는 것은 여자를 창조한 이후부터이다. 여자가 창조되기 전까지 아담이란 말은 인류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다. 남자라는 단어 이슈( )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여자(이샤)가 창조되고 나서이다(창 2:23). 창세기 1장 27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에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히브리말 자카르( )와 네케바( )는 생물학적 용어이지 사회학적 용어가 아니다. 이것은 동물의 서로 다른 쌍을 지칭하는 데 쓰이는 용어들이다. 인간이 아닌 경우 통상 '수컷과 암컷' 으로 번역된다. 한편 2장 23절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히브리어 이슈와 이샤는 사회학적 용어들이다.

  성이 구분되지 않았던 아담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성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남성으로 의식하며 외친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리라!(창 2:23) 아담이 여성에게 반응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남성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갖는 자의식과 이성 앞에서 갖는 자의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동물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인식한다. 하지만 이성을 대할 때에는 우리 자신을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성의 구분이 없이 창조된 아담은 자신을 인간으로 즉 식물과 동물 등 창조세계와 대비된 존재로 보았다. 그러다가 여성이 태어나면서 비로소 남성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2) 여자는 남자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남자를 돕기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인가?"

  "(아담)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2:18)라는 구절에서 "거들 짝"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애째르( )는 하느님과 관련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거들어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는 것이다.(예를 들면 출애18:4, 신명33:7,26,29 시편121:2, 124:8, 146:5, 115:9-11) 여자가 남자를 돕는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한다면 하느님이 인간을 돕는 분이시라고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아니다. 애째르라는 말은 호혜적(互惠的)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이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아담을 돕기 위해서 먼저 창조된 새와 들짐승이 아담에게 적당치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동등한 존재인 여자를 지은 것이다.

 

3)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인가?

  만약 그렇다면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흙보다 열등한 존재인가? 굳이 자료의 우월성을 가지고 보자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나은 자료로 더 많은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남자는 흙과 먼지에서 창조되었지만 여자는 뼈와 살로 창조되었다. 또 남자 창조 이야기는 딱 한 구절로 묘사되지만 여자 창조 이야기는 무려 여섯 구절로 묘사되고 있다.

  여자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진술은 여자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이 흙으로 아담과 갖가지 동물을 만들었듯이 여자도 흙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굳이 흙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은 남자와 여자가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나왔다는 것은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갈비뼈는 심장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는 둘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를 상징한다. 그래서 혹자는 "하느님이 여자를 아담의 머리나 발로 만들지 아니하고 갈비뼈로 만든 것은 여자가 아담의 팔에 안길 수 있고, 아담의 심장으로부터 사랑 받게 하기 위해서다."고 말한다.

  나아가 갈비뼈로 번역된 히브리어 첼라()의 보다 적절한 번역은 '옆, 측면' 이다. 아담의 측면에서 여자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한 존재의 두 부분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배우자를 가리킬 때 나의 반쪽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간 정체의 반쪽인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함으로써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4) 아담이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인가?

  어떤 사람들은 아담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리라." 라고 했다는 구절을 갖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2장 19-20절에서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면서 동물에 대한 지배권을 드러냈듯이,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우월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말은 없다. 다만 "여자라고 부르리라." 했을 뿐이다. "부르다." 라는 동사가 이름이 될 수는 없다. 또 "여자"가 이름이 될 수도 없다. 아담이 여자에게 어떤 구체적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자와 대비되는 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통명사이다.(주: 나중에 하와라는 이름이 남자로부터 주어지기는 하지만(창 3,20) 그것은 창조 때가 아니고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죄스런 인간이 되고 난 후이다. 죄스런 인간의 처지가 되면서 남자가 여자를 돌보게 되며 하와란 이름을 주게 되었다.) 아담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리라." 한 것은 이름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필로서 여자를 발견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담이 첫 에로스를 느끼면서 외친 기쁨의 소리다.

 

5)여자로 인해서 원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아야 하는가?

  흔히 하와가 유혹해서 아담이 죄를 짓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먹었느냐고 꾸짖자 아담은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가(당신이 내게 준 여자가 나무에서 과일을 따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창3:11) 주목해야 할 점은 아담이 하느님에게, 하와가 과일을 주어서 먹었다고 할 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하와를 아담의 '유혹자'라고 부른다.

  뱀이 하와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아담은 어디에 있었는가? 창세기 3장 6절에서 뱀과 하와의 대화가 끝나고 하와가 금지된 과실을 따먹는 장면을 보면 아담이 처음부터 하와와 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하와와 뱀이 이야기를 나눌 때 말없이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화에 끼어들어 뱀에게 도전하거나 하와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와가 아담을 대신해서 뱀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아담의 침묵은 하와의 의견에 대한 동의로 보아야 한다. 동의가 있었기에 하와가 과일을 내밀었을 때 아담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은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창조 이야기에는 성에 대한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엄청난 성차별이 존재하는가? 옛적에 우리도 그랬지만 유다 사회에서도 여자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예속된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남자에게 팔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여자는 남편을 주인이라 불렀는데, 이는 노예가 자기 주인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성을 노동력의 하나로 간주하였기에 경제력이 하락되는 만큼 일부 다처제를 이용하여 아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성차별은 인간의 역사가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정신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힘의 역사를 따랐기 때문이다.

  1세기, 팔레스티나의 성차별은 매우 심해서 여자들은 회당 구성원에 끼지 못하였고, 안식일 규범도 적용되지 않았다. 여자들은 토라를 배울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미슈나는 "딸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은 음행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규정하였다.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은 아내가 아닌 여성과 마주치는 것조차 수치로 여겼다. 유다 남성들은 매일 아침기도 때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남편은 아내가 밥을 태웠을 경우에도 이혼할 권리가 있었다. 이러한 성차별 전통을 물려받은 초대교회는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할 것과 외모에서는 단정할 것이며, 공적모임에서는 입 다물고 잠잠히 있을 것을 명령하였다.

  "여자들은 정숙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금이나 진주로 치장을 하거나 비싼 옷을 입지 말고 오직 착한 행실로써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립니다.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녀를 낳아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1디모 2:9-15)

  (주: 앞서 언급한 성서구절은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 1세기 말엽 바오로를 추종한 제 2 세대 인물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그러니 바오로가 여성들을 비하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바오로 서간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고린토 전서이다. 바오로는 1장에서 여성들이 공적 모임에서는 입다물고 잠잠히 있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 또 여성은 공동체 모임에서 머리를 드러내면 수치스러운 것을 한 것이니 수건을 쓰라고 명한다. 하지만 이 구절들도 바오로 이후 그 누군가가 첨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초대교회 모든 이가 여성 차별적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예수님과 바오로는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의 안성 문화권을 뛰어넘은 인본주의자로서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했다. 예수님은 남녀관계를 창조의 근본원리로 끌어올리신다. 그는 세리와 찬여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선언하였고(마태 21:31), 당대 랍비들과 달리 여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그들을 가르쳤고 제자로 삼으셨다. 그토록 정결법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예수께서는 혈루병을 앓는 여인을 딸이라 부르면서 평안히 돌아가라고 다정하게 위로해 주시었다.(루카 7:36-50) (주: 당대 어느 정로도 혈루병을 경원시했는가는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가까이 오면 발효 전의 과즙이 시어지고, 정원의 나무는 시들며.. 심지어 쇠까지도 녹이 슬고 공기에서도 불쾌한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바오로도 예수님의 본받아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갈 3:28) 그런가 하면 많은 여성을 선교 동지로 삼기도 했다. 최초로 그리스 땅에서 신도가 된 리디아는 훗날 티아디라 교회를 개척하였고, 바오로의 2차, 3차 선교여행에서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던 브리스킬라는 에페소 가정교회와 로마 가정교회를 세운 여성이다. 또 바오로가 개척한 고린토 교회에는 클로에란 여성이 지도자로 있었고, 겐크레아 교회에는 페베란 여성이 지도자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