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돌보심과 먹이심 - 차동엽 신부님

김레지나 2012. 7. 6. 20:56

오늘 제 졸글 하나를 마무리 작업했습니다.

조금 더 손봐서 낼이나 모레 중에 발표하겠습니다

제목은 '마중물 신앙체험'입니다.

제가 만든 신조어인데, 그 용어를 키워드로 삼아 주절주절 글을 썼는데,

솔직히 메시지가 일관되는지 왔다갔다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수정하면서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주일 복음묵상 테잎에서 들은 이야기였지요.

복음묵상 책자를 한 권 빼서 펼친 첫 페이지에 짠~ 나타나네요.

그래서 기분 좋게 옮겨 적습니다.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복음묵상 2012년 나해 연중 제 11주일 - 말씀의 겨자씨가 이룬 기적

테잎에 딸린 소책자 p,16

 

 

2) 돌보심과 먹이심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이럴 때는 공짜 은총을 받았다는 생각에 연일 싱글벙글하며 신앙생활 할 맛이 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기도 응답을 받으면, 이럴 때는 보통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 그때 내게 답을 내려주셨구나!"하는 깨달음에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어느 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남자는 그 바위 떄문에 집 안팎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남자는 희망을 갖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이 들고 회의감에 빠진 남자가 바위 위치를 측량해 보았더니 단 1cm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남자는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고 물으시자,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당신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했는데도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네 모습을 보아라."

  남자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더 이상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그때 그는 속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래!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하느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병약한 사람을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주님의 지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차원과는 현격히 다르게 역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기도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할 때조차도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응답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미 답을 누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마치 씨앗 하나가 어떻게 터서 자라는지 알 수 없던 오늘 복음에서의 씨 뿌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비록 '어떻게 그리 되는지'는 모른다 해도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품고 사는 우리들은 늘 최고의 사랑둥이들입니다. 그것이 어느새 주님 은총으로 움트고 자라서 온갖 축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지고 있으니까요.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저희 복음 묵상 가족이야말로 '말씀의 씨앗'을 목숨처럼 여기고 있사오니, 그 믿음에 걸맞은 은총 내려 주소서.

  주님, 저희로 하여금 말씀이 씨앗을 싹틔워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옥토이게 하소서.

  주님,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르는 주님의 돌보심과 먹이심으로 저희가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