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조명연 신부님

주님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 주님의 가치도 발견 -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김레지나 2012. 5. 6. 22:09

2012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I came into the world as light,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me might not remain in darkness.
(Jn.12,46)




제1독서 사도행전 12,24─13,5ㄱ
복음 요한 12,44-50

수표를 제외하고 지폐로 된 우리나라의 화폐 중에서 가장 큰 액수는 오만 원 권입니다. 그런데 이 오만 원 권 한 장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100원 조금 넘는다고 하더군요. 이는 문방구에서 A4용지 복사 한 장 하는 가격인 100원과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복사된 A4용지 한 장과 오만 원 권 한 장의 원가 가치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할까요?

아마 백이면 백, 모두가 오만 원 권 한 장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A4용지 한 장의 가치보다 오만 원 권 한 장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똑바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앎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제 등산을 다녀오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산은 해발 2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낮은 산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산을 좋아하더군요. 저 역시도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어제 찾아갔습니다.

사실 반신반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소풍을 가던 곳이기에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식목일에는 이곳에 와서 나무를 심어야만 할 정도로 벌거숭이 산이라는 기억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초라했던 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빽빽한 나무들로 인해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장소가 되어 있더군요.

만약 어렸을 때의 기억만 가지고 있다면 이 산의 가치를 계속 몰랐을 것입니다. 직접 등산을 하면서 보고 느꼈기 때문에 그래서 알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알아야 그 가치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절로 알 수 있을까요? 자기 스스로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알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앎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단순히 성당에만 간다고 주님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성당만 다니다보면 주님께서 어느 날 당신에 대해 직접 가르쳐 주실까요? 그래서 주님의 가치를 깨닫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님께 대한 관심을 갖고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 주님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에 대해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을 믿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을 내세워 주님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빛이신 주님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며,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실 주님인데 말이지요.

주님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내가 주님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많은 방법들에 더 이상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계획한 삶을 기꺼이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삶을 맞이할 수 있다(조셉 캠벨).


어제 등반했던 문학산 정상에서. 인천의 곳곳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비교는 행복에서 나를 멀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지옥은 ‘천국이 보이는 창문을 가진 지옥’이라고 합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천국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불행을 곱씹어보게 하는 지옥이 가장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이 미국의 알카트래스 교도소라고 하지요.

얼핏 보기에 알카트래스 감옥은 휴양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끼고 있고, ‘금문교’와 2층으로 만들어진 ‘베이교’가 걸린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수감생활을 한다면 호사스러운 감옥생활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밤이면 황홀한 야경을 보여주는 샌프란시스코를 바라 건너 지척에 두고 있는 알카트래스의 수인들은 갇혀 있는 자신들이 얼마나 불행한 지를 날마다 깨닫게 됩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그곳을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야말로 ‘천국이 보이는 창문을 가진 지옥’이 바로 알카트래스 감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슴속에 그런 감옥을 가끔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바로 비교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감옥의 수감자가 되고 맙니다.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 상처받고 열등감에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비교하면서 지쳐 절망에 빠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행복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큰 선물입니다. 하지만 비교하는 순간, 행복이라는 선물은 내 곁을 떠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