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 하루만 삐칠게요.

김레지나 2011. 10. 9. 17:24

 

하루만 삐칠게요.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오늘은 다시 시작되는 항암치료 계획이 나오는 날이다.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체중과 혈압을 쟀다. 피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서 배가 고팠다. 집에서 가져온 포도를 병원 성당에 갖다 드리고 나서 뭘 좀 사먹기로 했다.

  암병동과 본관이 연결된 통로를 걷다가 ‘10월 4일, 1004 데이’ 행사 광고를 보았다. 야외에서 간호사님들이 천사 복장을 하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는 듯 했다. 무엇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건.. 맛있는 음료수와 과자~~띠용~~ 쪼르르 나가서 음료수를 두 잔이나 먹고, 과자도 한 컵 먹었다. 즉석사진 찍어주는 간호사님에게 한껏 애교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저도 찍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앉아서 폼을 잡았는데, 간호사님이 "잠깐만요~~ 머리띠 해보실래요?"하시더니, 천사날개 모양의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짜잔~ 사진이 잘 나왔다. 천사 머리띠 덕에 내 동안 미모가 돋보였다. ㅋㅋ(집에 와서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받았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근엄한 표정이셨다. 한참을 컴퓨터를 들여다보시더니 걱정스러운 듯이 말씀하셨다.

  “환자분은 HER2 수용체 강한 양성입니다. 0이 정상이고 1+, 2+, 3+로 나뉘는데, 3+입니다. HER2 수용체는 세포막에 있는 여러 수용체들 중 하나인데, 암을 빨리 성장시키고 전이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1년간 허셉틴이라는 항암제를 3주 간격으로 17번 맞으셔야 하는데, 림프절 전이가 되었기 때문에 보험처리를 받으실 수 있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AC 라는 항암제와 같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AC 항암제를 5년 전에 4회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 또 맞게 되면 위험합니다. 몸에 쌓이는 양이 일정량을 넘게 되면 10명에 한 명은 심부전증이 옵니다. 심장이 커져서 회복이 잘 안되고, 그렇게 되면 손쓸 수가 없게 됩니다. AC가 아니면 다른 약(이름을 잊어버림) 6번을 같이 맞아야 하는데, 그 약도 보험이 안 돼서 한 번 맞는데 200만 원쯤 듭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AC와 허셉틴을 맞으실 건지, 아님 보험이 안 되는 다른 약과 허셉틴을 맞으실 건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나는 보험처리가 안 되어도 덜 위험한 약으로 맞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심장초음파도 해봐야 하니까 1주일 더 생각해보고 오라고 하셨다.

 

  1년간 맞아야하는 항암주사약값만 4000만원에서 5000만 원쯤 든다고 한다. 처음 허셉틴 치료 받으면 AC주사와 함께 맞을 수 있으니 보험처리가 되고, 나처럼 재발한 환자는 보험처리를 받기 힘들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 규정이다.

 

  집에 돌아와서 잠을 좀 자고 싶었다. 너무 피곤하고 맘도 심난해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거의 잠에 빠져들 무렵,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어제 집주인이 우리에게 집을 살 의향이 있는지 전화로 물었었다. 집주인에게 시세대로 충분히 전세금을 올려주겠다고 했는데도 집을 팔겠다고 했었다. ‘내년 3월 초가 전세만기인 집을 벌써 내놓다니. 누워서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람.’ 짜증이 확 났다. 후닥닥 이불을 개고 집을 치우면서 비참한 생각이 들어서 울컥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오후에 한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내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하나님께 전세 안고 집 살 사람 있거나 집주인 마음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라고 하셨다. ‘맞다. 사람 마음 움직이는 건 하느님께 식은 죽 먹기이니 기도하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나도 하느님께 떼써보기로 했다. “하느님, 제가 지금 이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전세금 올려주는 것이나 항암치료비 보험 안 되는 것만도 벌써 넘치게 힘들거든요.”

 

  저녁미사에 갔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지쳐서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미사 후에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언니에게 하소연했다. “하느님께서 이사하는 번거로움 쯤은 막아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너무 하시네.” 언니가 기도해주마고 하셨다.

 

  다른 부동산에서 전세 2년 안고 살 사람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휴~ 다행이다. 필시 하느님께서 그 사람들 마음을 움직여주실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2년만 더 살면 된다. 2년 있으면 첫째는 대학교 갈 거고, 둘째는 형처럼 기숙사 고등학교에 보내면 되니까.

 

  세탁소에 가다가 앞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우리랑 같은 동 어느 집도 봄부터 집을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았다고 했다. 저녁에는 수단 돕기 물품을 내러 성당반장님 댁에 들렀다. 반장님도 “요즘 집이 팔리나? 안 팔려.”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집은 쉽게 팔리지 않을 거고, 팔리더라도 전세 안고 살 사람한테 팔릴 거야. 또 이사가야한다면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잖아. 짐 정리하는 수고는 둘째 치고, 도배에, 중개수수료에, 에어컨 설치비에, 이사비용에, 몇백만 원은 쓸 데 없이 나갈 텐데...하느님께서도 그건 낭비라고 생각하실 거야. 하느님께서 거들어주신 것임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잘 되게 해주실 거야. 주워들은 풍월로 고통 운운하는 글을 써대면서 폼 잡고 까불 때가 아니다. 그러느라 더 외로워진 것 같다. 남편이 명퇴한 후로 수년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나도 복직하지 못할 상황인데,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 이제부터는 하느님께 악이라도 써대야겠다. 끌어안을 십자가가 따로 있지, 이사 가는 것만은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다. 하느님께서 의미 없는 낭비는 하지 않도록 막아주시겠지.’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전세 안고 집을 살 사람이 11시에 오기로 되어 있다. 그에게 집이 팔리기를 기대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치웠다.

 

 

  집안 청소를 하고 나서 10시 미사에 갔다. 오늘만큼은 다른 지향은 다 미루어두기로 했다. “전세 안고 집 살 사람에게 집이 팔리게 해주세요. 하느님께서 해주신 건 줄 알게요. 미리 감사드려요.” 하고 기도했다.

 

  세 명이 집을 보러 왔다. 중개사님이 “2년 전에 내가 봤던 집이 아니네요. 집이 아주 깨끗하네요.”하고 말했다. 집 살 사람들도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분 남편이 꼭 우리 동만을 고집한다고도 했다. 나는 부동산에까지 따라가서 기한이 되지 않았어도 전세금 인상분만큼 먼저 줄 수도 있으니 꼭 좀 성사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리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막 자려고 하는데, 어제 집을 봤던 사람들한테서 다시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몇 시간만 있으면 전세 안고 살 사람들이 계약하게 될 것 같은데, 설마 그 전에 나가지는 않겠지. 집을 다시 보고 간다고 해도 한 두 시간 안에 결정이 나겠어?‘

 

  세 명이 집을 보러 왔는데, 집을 깨끗이 치워놓은 덕? (탓?)에 어제 보다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결국 그 사람은 남편에게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서 집주인과 계약을 해버렸다.

 

  집 내놓겠다는 전화를 받은 지 하루 만에 부동산에서 오고, 또 하루도 안 되어 집이 팔리다니. 집을 싸게 내놓은 것도 아닌데,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었다. 황당했다. 어디서 날아온 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물체로 갑자기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느님께 악쓰고 따지기로 선전포고해놓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는데 싱겁게 끝나버렸다. 내 장점이자 단점은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라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별 도리 없다 싶으면 바로 “예”하고 체념한다는 것이다. “예”를 빨리 못하면 나만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집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 때, 그 원인에 대해서 심사숙고할 필요는 없다. 일단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으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 상황에서도 ‘암에 왜 걸렸을까, 왜 집에 이렇게 빨리 팔려버렸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만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이유를 따져보고 삐쳐있기로 했다. “예”라는 대답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왜?”하기로 했다.

 

  이번엔 하느님께서 나를 도우실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집주인이 한쪽 부동산에만 집을 내놓을 맘을 먹게 하셨거나, 전세 안고 사려는 사람을 하루 먼저 집을 보고 가게 하셨거나, 집을 산 사람이 하루 늦게 결정할 상황을 만들어주셨거나, 오늘 집을 산 사람들에게 내가 집에 없다고 하고 내일 보러 오라고 거짓말을 할 생각이 들게 해주셨거나.....등등......

  작년 3월에 갑작스레 도간내신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집을 보러 다닐 여유가 없었는데, 학교 근처의 학군 좋은 동네에 있는, 융자 없고 안전한 이 집을 구하게 되었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던 거라 생각한다. 우연한 일에 불과한 일을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던 거라고 억지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확실히 드러나는 기적을 내게 보여주신 적이 많기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때는 2년간 허리가 심하게 아파서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많았다. 10분 넘게 앉아있는 것도 무척 힘들었었다. 그러던 중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안수봉사자가 내 허리에 손을 대고 기도하자 따뜻한 기운이 허리 깊숙이 들어왔다. 그 후로 나는 허리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다. 대학 졸업하고는 겉으로 보이는, 대수술이 필요한 질병이 하루 만에 나아서 의사 선생님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글을 쓸 때 인용할 성경 말씀을 한 번도 예외 없이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주신다.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한 적이 없는 엉터리 신자인 내 힘만으로는 한 달을 뒤져도 내가 쓴 글들에 꼭 맞는 성경구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 번째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나는 하느님께서 어떨 때는 기적적인 치유를 베푸시고, 어떨 때는 질병을 허락하시는지 잘 모른다. 어떤 기도는 잘 들어주시고 어떤 기도는 모르는 체 하시는지 잘 모른다. 이번 경우에도 내가 청하는 것이 옳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이토록 빨리 일이 진행되게 내버려두신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면 내 영혼을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교만에 빠지거나, 내 노력보다는 하느님을 이용하는 법을 즐기게 되거나,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에 눈이 멀어서 하느님을 쫓아다니게 될 위험이 있다.

 

  내가 추측하는 다른 이유는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더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환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를 선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록 신앙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 같은 상황에서라면 절박함으로 인해 하늘을 향해 간절한 호소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가 하는 호소도 기도임에는 틀림없다. 하느님께서는 나만 특별히 더 사랑하시지는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신다. 이번에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으로 어쩌면 하느님의 공평하심이 드러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만의 하나라도 우리 집이 빨리 팔리도록 방조하셨다면, 나를 덜 힘들게 하시려는 배려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매일 집 보러 오는 손님들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집을 치우면서 서러워하지 말라고 최대한 빨리 집이 팔리게 도우셨을 수 있다. 그것이 나와 집을 내놓은 사람과 집을 산 사람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실 수 있는 최선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집주인도 집을 팔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집을 산 사람도 마음에 드는 집을 사고 싶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만 돌봐주셔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쩌면 내가 지인들에게 우리 집 안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하면 할수록, 하느님 입장이 난처하게 될까봐 겁이 나셨는지도 모른다. ^^

 

  아니면, 하느님께서 나를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하고 싶으신 건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까 고민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고집 피우면 하는 수 없으실 테지만.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다.

미사참례 후 성소분과 모임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큰아들 학교 학부모 회의에 가야 한다.

 

  오늘 미사의 복음말씀은 루카복음이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나한테 주시는 말씀 같았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성령을 청하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암의 재발과, 암 치료 비용의 부담과 이사하게 된 손해 때문에 평화를 잃지 않으려면 성령을 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떼쓰는 기도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게 닥친 모든 시련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시라고, 어려움 속에 숨어 있는 주님의 은총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라고.

 

  이어서 박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있었다.

(전략) .....제 어머님은 18년 동안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시고 화장실만 겨우 다니실 만큼 아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예전에는 사제서품 받을 때 첫 안수를 가족들에게 가서 했어요..... 힘든 몸으로 서품식에 오신 어머님께 사제로서의 첫 안수를 드렸는데, 제가 간절히 기도하면 어머님이 벌떡 일어서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중략)...

기도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하나의 유혹일 수 있습니다...(중략)....여러분들 기도를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상상해보세요.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지.....(중략).........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마태오 7,7-8)“라는 말씀을 우리가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무엇이든지 청하면 된다는 것보다는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안에서 열정적인 마음을 지니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가 방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우리의 청원이 선하냐 악하냐가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지 없는지, 우리의 아픔의 어떤 표현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분 사랑의 무한한 공간을 믿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의미를 찾으면서 열심히 기도에 매진하였으면 합니다.“

 

신부님의 강론말씀은 내게 주시는 하느님의 위로였다. 눈물이 났다.

 

봉헌성가는 기도공동체 성가집 618번이었다.

“내 생애의 모든 것 알고 계신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살피시는 주님

어디에 앉아 있어도 당신 알고 계시며

어디를 걸어가도 살피시는 임마누엘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모든 것 받아주시옵소서“

봉헌성가의 가사 또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하느님께서 어제의 일을 통해 내가 배웠으면 하는 것을 총정리해주신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더욱 쏟아질 것 같아서 성가책에서 눈을 떼고 일부러 딴 생각을 하였다.

 

  신부님 말씀이 참으로 맞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내가 청한 것을 들어주시는가의 여부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 아픔의 어떤 표현도 이해하시고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내가 믿기에, 하느님께 내 아픔을 말씀드릴 수 있는 신뢰가 나에게 있기에,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신다.(시편 34:19)”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살피시는 분께서 이렇게 내 상황에 꼭 맞는 말씀으로 위로해주고 계시지 않는가. 이런 위로야말로 내 기도에 대한 최고의 응답이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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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내 뜻보다 높이 있는 하느님의 수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내가 하느님의 수를 어찌 알겠는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안 좋은 상황들을 합하여 영원 속에서 선을 이루실 테지만, 지금 나는 내가 처한 이 힘든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고집스럽게 기도할 것이다. 항암치료도 좀 수월하게 지나가면 좋겠고, 우리 집의 새 주인 마음이 바뀌어서 2년 늦게 집을 비우라고 하면 좋겠다. 무슨 수가 나겠지.

 

“하느님, 웬만하면 제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주세요. 행여 제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삐치지 않을 거니까 너무 마음 졸이고 계시지는 마시구요. 어쩔 수 없다 싶으면 즉시 ”예“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시키셨잖아요. 어떤 답을 주셔도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을 거니까 너무 미안해하시지도 마시구요. 그래도 이번 일은 저한테 가혹해요. 오늘 하루만 더 삐칠래요. 하느님~! 너무 하셨어요. 칫!”

 

                                                                                2011년 10월 8일 엉터리 김진아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