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 하느님은 눈치가 없으시다. ^^

김레지나 2011. 8. 30. 17:38

 

하느님은 눈치가 없으시다.

(고통은 하느님의 선한 선물이라지만)

 

 

  초등학교 때 교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한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이 지독한 열이 오르고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자,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형이 하느님께 “동생 대신 제가 아플게요. 우리 동생 좀 낫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다음 날 기적적으로 동생은 나았고 형이 열이 나고 아프게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느님은 우리 마음을 어여삐 보시고 꼭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형의 사랑에 감동하는 대신에 하느님의 응답 방식에 대해 불만이 생겼다.

  ‘왜 하느님은 굳이 형을 아프게 하셨을까? 형이 하느님을 떠보려고 계산을 하고 기도했을 리도 없고, 정말로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을 텐데, 그 마음 확인하셨으면 맘씨 고운 형을 아프게 하지 마시지. 그냥 동생을 낫게 해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앞으로 나도 기도할 때 조심해야겠다.(^^)’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던가 보다.

 

  나는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그런 자발적인 대속적 고통을 기꺼이 허락하신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가끔 아주 리얼한 상황을 만들어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우리의 ‘내려놓음’을 확인하시면 그쯤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해결해 주신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형제의 이야기에서처럼 대속의 고통을 기뻐하며 허락하신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훌륭한 마음을 어여삐 여기시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가끔 눈치 없이 도가 지나치실 때가 있는 것 같아 고민이다. ‘기도할 때 조심해야겠다’는 어릴 적 결심을 잊고서 나도 몇 번이나 그렇게 겁 없는 기도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에는 재발한 암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있다. 아무래도 하느님께서는 좋은 걸 절제를 못하시는 것 같다. 추측컨대 일부러 눈치가 없는 척 하시는 것이리라. 하긴 우리 눈치를 보아야 할 입장이 아니시니까 그러실 테지만, 가끔은 하느님도 우리 눈치를 좀 보셨으면 좋겠다.

 

  2007년 여름에 아프간으로 해외 봉사를 나간 우리나라 국민 23명이 탈레반에게 납치를 당했다 돌아온 적이 있다. 여행 금지 구역을 왜 갔느냐는 비난 여론이 높았지만 우리 국민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분들이 행여 돌아오지 못하고 그 전의 어떤 분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까 겁이 잔뜩 났다. 그분들이 겪을 무시무시한 공포감과 열악한 장소에서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마침 그 무렵 나는 유방암 수술 후에 하는 정기검진을 하게 되었다. 피검사와 두 가지 엑스레이, 복부 초음파, 유방 초음파 등등을 마치고 뼈검사 할 차례가 되었다. 뼈검사는 전이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이다. 방사성 의약품을 주사해서 4시간 동안 주사약이 온 몸에 퍼지기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다. 방사성 약품이 자칫 혈관 밖으로 나가면 살이 썩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팔에서는 혈관을 찾기 힘들다고 해서, 나는 늘 손등에서 채혈을 한다. 간호사가 내 왼손등을 소독하고 있었다. 갑자기 탈레반에 억류된 사람들 생각이 났다. 금세 마음이 아파 와서 급히 기도했다.

  “아참참. 깜박할 뻔했네요. 하느님, 이번 주사 맞는 고통은 작은 거지만 그들을 위해서 봉헌할게요. 너무 보잘 것 없는 희생이지만 그분들이 모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도 덜어지면 좋겠어요.”

  손등에서 채혈할 때는 팔에서 할 때보다 아프니까 바늘이 가는 나비바늘을 쓴다. 하지만 방사성 약품을 넣는 주사바늘은 일반 주사기라서 꽤 아프다. 간호사가 첫 번째로 손등을 찔렀다. 그러더니 다시 뽑았다. 두 번째로 찔렀다. 다시 뽑았다. 세 번째는 주사약을 약간 넣었다. 그러더니 잘 되지 않았는지 바늘을 다시 뽑았다. 손등 다른 곳을 찾아 네 번째로 주사바늘을 찔렀다. 이번에도 약을 조금 넣어 보더니 다시 뽑았다. 손등은 혈관을 찾기 쉬운 곳이라서 두 번 이상 찌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숙련된 간호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여섯 번의 실수를 하는 간호사에게 손을 맡기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났다. 제일 의심이 가는 쪽은 하느님이었다. 순간 고통을 봉헌하겠다는 기도를 했던 게 후회되었다. 하느님께서 ‘어이구. 너 기도 잘했다.’하고 기특해하신 나머지 벌어지게 한 상황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다. 주사바늘 찌르는 거야 더 여러 번 해도 그들의 공포에 비하면 참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다가 방사성 약품이 새서 손등 썩는 거 아니야? 그 핑계 대고 이쯤에서 그만 봉헌하겠다고 해야겠다.’

  나는 금방 마음이 변한 게 멋쩍었지만 주사하는 약품이 위험하다는 핑계를 대기로 했다. ‘하느님, 이랬다저랬다 해서 죄송한데요. 이쯤에서 그만 봉헌하면 안 될까요? 에, 살도 썩을 수 있고... ’

  그렇게 기도하자마자, 간호사가 다른 남자 간호사를 불렀다. 남자 간호사가 오더니 침대 위로 올라가 앉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다리에 주사를 놓았다. 한 번에 성공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살았다. 하느님, 아무리 제가 봉헌 기도를 했기로서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죄송하지만 제발 제 눈치 좀 봐가면서 뭘 주시든 주시라구요. 으째 전능하신 분이 적당히 하실 줄을 몰라.’

  주사 맞는 게 끝난 후에야 내 작은 고통을 피하려고 억류된 사람들을 저버린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계속 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그런 식으로 내 기도를 기뻐하며 받아들이셨다는 걸 보여주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제 여러 가지 일을 통해 배워서 안다. 모든 이타적인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또 그 이타적인 사랑은 하느님을 먼저 사랑해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은총임을. 다만 우리의 몫(공)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는 힘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도 주님의 선한 선물임’을 이젠 안다.

  그러나 배워서 안다고 해서 선뜻 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사바늘 몇 번 찌르는 고통으로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감히 흉내내볼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그보다 좀 더 센 고통은 어떠냐? 사랑으로 청할 마음이 있느냐?”하고 물으시면, 나는 “에, 그러니까 상황 봐서요.”하고 둘러대고 어물쩍 도망갈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어린애인 양 하느님께 투정을 부린다.

  “눈치 없으신 하느님. 계속 눈치 없는 척 하지 마시고, 이번에는 제발 제 눈치 좀 봐가면서 일을 좀 벌여주세요. 전에 제가 했던 봉헌기도들을 도로 물러주시든지, 그게 싫으시면 눈치껏! 아셨지요? 아무리 좋으셔도 그렇지, 주사 여섯 번이 뭐래요? 그렇게 오버하시니까 하느님께 믿고 맡기는 사람이 적은 거 아니겠어요? 입원해 있는 동안 또 그렇게 과잉친절을 베풀어주시면 저 삐칩니다. 수술이든 주사든 한 번에 잘 되도록 해주세요. ‘아멘’은 안 붙일랍니다. 겁나서요.~~~^^”

 

                                                                   2011년 8월 30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