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모든 게 쉬웠다. 죽는 것까지도

김레지나 2011. 8. 28. 10:48

2008년 9월에 썼던 글을 이곳으로 옮겨 싣습니다.

눈에 띄는 대로 쭈욱 읽어보고 있는데, 제 블로그의 글인데도 '내가 언제 이런 글을 썼지?'하면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참고로,,,지금 제 상태는 이 글에 나오는 대로 '몹쓸? 지경(ㅎㅎ)'은 아닙니다.^^
비교적 정상적인 지금의 제 상태가 걱정할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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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순교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무서워 떨었는데, 성령께서 나 같은 죄인도 은총으로 감싸 주시니 지금은 아무 두려움이 없이 도리어 기쁘기만 합니다. 나는 죽는 것이 이다지도 쉬운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 (103위 성인전)에서-


  고순이 바르바라 성녀의 말씀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랑의 빛에 휘감겨있는 동안은 정말로 모든 게 쉬웠습니다. 죽는 것까지도...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의 빛에 제 마음이 불살라진 것 같았습니다. 암선고도, 수술도, 항암치료도, 경제적 곤란도, 불확실한 미래도, 아이들과의 이별도, 죄 중에 있던 기억도 저를 슬프게 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살아서 오히려 죄를 지을까 걱정되어 은총 중에 돌아가신 강마리아 자매님이 부럽기까기 했습니다. 무작정 행복에 겨워서 ‘죽음에 이르니 참 좋다’라는 시를 쓰기도 했지요. ㅎㅎ

 

 항암치료를 받으러 동생집에 갔을 때입니다. 동생이 환하게 빛나는 제 얼굴을 보고 “언니야. 언니는 어째 아프기 전보다도 지금 얼굴이 더 좋다. 훨씬 행복해보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너무나 행복해. 하느님 체험은 단 한번만으로도 마음이 살라져서 그 기억만으로도 고통을 사서 하려할 정도로 강렬하대. 나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암 걸리는 거 추천코스다.”

저는 그때 진심이었습니다. 저처럼만 된다면 모든 사람에게 암에 걸려보라고 자신있게 권하고 싶었습니다. 정상이 아니었던 거지요. ㅎㅎ 하느님 사랑을 맛본 기쁨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그 맛을 모르는 이들이 다 불쌍해보였으니까요.

순간 “아니, 무슨 악담을?”하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제부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아차’했지만 뱉어버린 말을 어떻게 합니까? 신자가 아닌 제부가 듣기에는 참 거북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소리였을 겁니다. 그래도 싱글거리며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해 못할지언정 진실이니까요.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걸요.

 

 일주일 전에 사랑하는 K선생님이 <메주고리예 성심의 승리>라는 책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책 첫 장에 쓰인 일화를 읽고 제가 생각났다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읽어보라고 하셨지요. 

“거기서 그냥 그대로 순수한 사랑으로 죽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3개월! 천상의 기쁨으로부터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그 3개월간은 모든 게 쉬웠다. 기도도, 사랑도, 그리고 죽는 것까지도.”


 본당의 한 자매님이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사고로 죽고 나서 며칠 안되어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기쁨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어떤 고통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갑작스레 당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평화로운 마음이 찾아들었답니다.

저도 수술을 앞두고 세상에 뛰어나가 외치고 싶을 만큼 기쁜 적이 있었기에 잘 압니다. 천상에서나 누릴 기쁨 한 조각을 잠시 맛본 것일 뿐일 텐데도 세상에 아쉬울 게 없었습니다. 그 한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평생을 기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자매님은 그 때부터 3년간은 기쁘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3개월도 지났고,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비교적 정상’입니다.ㅎㅎ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징을 보여주시고 저를 위로해주시던 때는 지났습니다. 이제 저 혼자 서야하는 때가 된 거지요. 한 동안은 하느님이 그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지독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던 애인이 떠난다 해도 그렇게 그립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은총체험을 알게 되면, 제가 받은 은총이 고마워서, 하느님의 현존과 위로를 다시 맛보고 싶은 그리움에 꼭 울게 됩니다.

 “내 사랑 하느님, 너무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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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제 1장 라파엘에게 쏟아주신 은총!


해는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다. 인적도 없는 산중에서 발음조차 하기 힘든 그 마을을 가리키는 도로표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마을이 도대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성령님의 인도로 회심하게 된 불량배였던 나는 자유개신교 교회에서 물 속에 완전히 잠기는 세례도 다시 받았다. 천주교를 앞장서서 비난해 오던 나 라파엘이 이곳 묵주의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만일 우리 교회 목사님이 지금 내 꼴을 본다면.....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좋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석고 성인상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에도 성령님께서는 찾아오십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발현에 대한 이야기도 제게 설명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일행은 아르스(프랑스 지명)에서 잠시 머문 후 로마로 갔다가 아무런 계획도 프로그램도 없이 곧바로 메주고리예로 향했다. 우리 일행은 무신론자인 베드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의 “나일론 신자”들이었다. 베드로는 사업가였으며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까 염려되어 나는 이 여행에 베드로와 그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나는 차 핸들을 잡은 채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흘깃 보았다. 베드로는 유쾌한 표정으로 알렉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렉스는 메노 교회 교수였다.(참고로 메노 교회는 아주 엄격한 개신교의 복음 교회이다.)또 루터 교회 신자인 가타리나는 나의 집사람과 쇼핑에 관한 잡담을 즐겁게 늘어놓고 있었다.

 차가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한 쌍의 높고 뾰족한 탑과 밝게 빛나는 성당이 우리들 눈앞에 들어왔다. 드디어“그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곳에는 아무 것도 없군! 호텔도, 식당도, 상점 하나도 없다니. 그래, 벌판에 덩그마니 서 있는 성당 하나를 보려고 2,000km를 달려온 거야.!”

 베드로가 투덜댔다. 그래도 그 마을사람 하나가 우리에게 텐트 하나 겨우 칠만한 한 구석을 내어주었다. 게다가 이 곳에서는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몇 마일 밖에서도 알아 볼 수 있는 거대한 십자가가 멀리 보이는 산정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여장을 풀었다.

 한 달이나 계속된 가뭄으로 우물에는 물이 거의 없었는데도 그곳 농민들은 식수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침내 계곡은 은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었고 시간은 마을을 둘러 싼 산등성이 위로 그대로 멈춰 버린 느낌이었다. 다음 날 오후 성당을 찾은 나는 그것에서 조용히 성경을 읽고 있었다. 갑자가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누군가가 크로아티아 말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문 쪽으로 달려갔다. 빨갱이들이 온 것일까? 나 역시 그들을 따라 성당 밖으로 나갔다. 50명 가량의 사람들이 크리자비치 산정에 있는 십자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쪽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산 위의 십자가가 주위로 폭이 1마일도 더 되어 보이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게 아닌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파스텔 톤의 파란 빛깔 태양들이 십자가 주위의 하늘을 파도처럼 일렁이게 했다. 마치 하늘이 춤을 추고 있는 듯 했다. 하늘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렇다고 눈이 부실 정도로 태양이 뜨겁게 빛나는 날도 아니었다. “그래.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게야! 시건을 다른 곳으로 옮겨보아야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절대로 현혹되어서는 안 돼!” 내 주변은 모두 정상적이었다. 개 한 마리가 나무 밑에서 킁킁더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다시 산 위의 십자가로 눈을 들었다. 그러나 일렁이는 파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그냥 텐트로 돌아왔다.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소풍을 나와 나무 그늘 밑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베드로의 아이들은 포도나무 사이에서 뛰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아저씨! 라파엘 아저씨! 여기 좀 와 보셔요! 저게 막 돌아요, 혼자서 막 돌고 있다구요!”

 꼬마 미카엘은 내 옆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발을 콩콩 구르며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토론에 열중해서 아무도 꼬마의 외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카엘은 나의 T-셔츠 자락을 잡아끌며 내가 돌아볼 때까지 끈질기게 외쳐댔다. 아이의 성화에 못이긴 나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보세요. 저것이 돌고 있어요!” 아이는 짧은 팔로 도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검지 손가락으로 언덕 위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이건 환각이야!” 내게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이었다.

 산 위의 그 거대한 십자가가 돌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내 신발을 내려다보고는 사업에 관한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발로 흙먼지를 한 줌 파내어 보기도 했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나는 다시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십자가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빠르게 어찌나 빨리 돌던지 십자가는 투명체로 변하더니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얼른 나의 맥박부터 짚어 보았다. 신경 조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알렉스 교수를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신중하게 또 아무 말 없이 십자가가 있는 산 쪽으로 손가락직을 해 보였다. “알렉스,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 주겠나?”

 좀처럼 상을 찌푸리지 않는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얼른 안경을 걸치더니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니, 십자가가 혼자서 돌다니! 난 믿을 수 없어! 도저히 믿지 못해!”

 “제발 좀 조용히 해요!” 라고 나는 말한 다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다른 이들도 불러내었다. 우리 일행 7명은 손에 손을 잡고 거의 15분간이나 계속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더 많은 기적들이 쏟아져 내렸다.

 베드로는 부인이 그를 버리고 떠나자 자신의 배를 칼로 찌른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우리는 캠프장에서 흔히 웃옷을 벗고 있었다. 베드로는 입을 벌린 채 내게로 다가오더니 “여길 좀 봐요!”

 그런데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흉터자국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기적들을 더 이상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과 담판을 짓기로 했다. “하느님 아버지 나는 아직 마리아께 기도드릴 수도 없고 똑같은 기도문을 백 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 기도하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께서 발현하시는 방에 들어가서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 방은 신부님이나 특정 인물에게만 허락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저 같은 사람도 감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날 저녁 나는 경당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프란치스코회의 신부 한 분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음 속으로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바로 그 신부님이었다. 그는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몇 마디 건네더니 나를 경당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목격증인들이 도착한 같은 시간에 나는 나대로 악령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드렸다. 나는 사람들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그 때 갑자기 6명의 목격증인들이 동시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들을 동정하게 되자 내 무릎까지 아파 왔다.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목격증인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도 비스카의 팔에 손을 얹었다.

 목격증인들은 일단 황홀경에 들어서면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나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여부를 시험해보려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비스카를 꼬집어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나는 더욱 세게 꼬집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 좋아! 거룩하고 기적의 힘을 지닌 파커스(Fakirs) 도 긴바늘을 몸 속에 찔러 넣지 않았던가! 고통을 모를 수도 있는 게야!

 다음에는 그녀를 밀어보기로 했다. 이러다가 만일 둘이서 바닥에 넘어지면 얼마나 큰 소동이 날까? 라고 염려하면서 처음에는 살짝 밀어 보았지만 전혀 넘어질 기색이 안 보였다.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발꿈치 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비스카는 마치 나사못을 똑바로 세워놓은 듯 아무런 기댈 곳 없이 장궤한 자세로 기도 중이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79kg의 몸무게로 그녀를 힘껏 밀었다. 바로 그 때 나는 내가 초자연적인 힘과 마주치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마치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는 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연약한 십 대 소녀에 불과했는데.... 대신 나의 등뼈가 욱신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 곳에서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비스카와 씨름하던 나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의 평화스러운 분위기는 너무도 실감이 났으며 나는 그 평화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 나를 보호해 주십사고 기도 드렸다. 비스카를 상대로 실험에만 열중했던 나는 왠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성모님께 “만일 당신이 이곳에 계시다면, 그리고 당신이 이곳에 발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내게도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나 자신을 확신시킬 그 무엇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목격증인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벽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창틀을 통해 들어온 한 줄기의 햇빛 같았다. 그러나 훨씬 굵으며 어린 나무의 몸통만큼이나 굵었다. 그 빛은 부끄러운 듯이 내게로 내려앉더니 그만 나의 심장을 통과해 버렸다. 그 빛이 내 가슴을 통과하자, 순식간에 내 안의 모든 두려움과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예전에는 느껴 본 적도 없는 그런 충만함이었다. 나의 온 육신은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의 홍수에 떠밀려 녹아버리고 말았다. 감싸 주는 부드러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거기서 그냥 그대로 순수한 사랑으로 죽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텐트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의 체험은 다시 한 번 나를 휘감았다. 알렉스가 나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 얼굴이 빛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3개월! 천상의 기쁨으로부터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그 3개월간은 모든 게 쉬웠다. 기도도, 사랑도, 그리고 죽는 것까지도.

 이제 나는 교회와 성모님과 화해했다. 베드로도 신앙인이 되어 지금은 젊은 그리스도인 그룹의 지도자로 봉사하고 있다.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