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누구 아는 사람이 들어올세라, 검색도 안되게 해놓았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런 두려움도 점점 무디어져서 내 입으로 알릴 때도 있다. ㅎㅎㅎ
좌충우돌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이들에게, 신앙을 이해 못할 이들에게 광고하려면 굉장한(뻔뻔한?) 용기(만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라면 쉬고 싶고 숨고 싶다.
누군가는 하느님께 대한 호기심이라도 갖게 되었으면 하고,
누군가에게는 종교와 상관없이 위로가 될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게 되는 것 같다.
개학하기 전까지는 제법 깔깔 대고 웃으면서, '다시 돌아올텐데, 뭘'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나간 이틀 동안은 많이 힘들었다.
종일 머리가 아프고 엄청 피곤하기도 했지만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특히 잠자리에 누워서나 아침에 눈을 뜰 때, 긴장이 풀어지고 감정이 예민해지는 때라서인지, 툭 눈물이 쏟아졌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힘든 치료를 견디는 게 두렵거나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기 때문은 아니다.
내적 평화와 상관없이 그 변죽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변화무쌍하게 끓게 마련 아닌가.
동료 선생님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아래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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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시작하자마자 제가 많은 분들 마음을 무겁게 하였네요.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수술 결과와 항암치료 계획에 따라서,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서 복직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 같아요.
위로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5년 전에 수술 받을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휴직 후 복직해서 수업할 때도, 혹시 이 수업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 중에 많이 울었었지요.
두렵고 긴장되고 그런 건 아직 없는데,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여전히 조금은 힘드네요.
작년 말썽꾸러기들과 헤어졌더라면 덜 힘들었을 거란 생각도 들구요.ㅎㅎ
오늘 수업 중에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수업을 못하고 대신 <엘렌 가족 이야기>만 보여주었어요.
수업했어야 할 내용은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들>를 보여주고 인물 성격의 형상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올해 마지막 수업이니까, 그 영화와 연관지어 이런 저런 말을 해줘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애들 쳐다보고 이야기하다가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어요.
사랑하는 것들과 잠깐이든 오래든 헤어지는 건 역시 힘든 일이네요.
학교 일 힘들다 힘들다 맨날 투덜댔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나봐요.
틱낫한 스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한 아이가 미소를 짓는다면, 한 어른이 미소를 짓는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날의 삶 속에서 우리가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영향 받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진정한 평화 운동이다.”
저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미소 뿐만 아니라 거룩한 지향(사랑)으로 인내한 고통도 모든 존재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우짜고 저짜고”
잔소리? 길게 하려다가 못해버렸네요.
어제 오늘, 제가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선생님들과 얼굴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힘들어서
성난 사람처럼 아래만 쳐다보면서 이야기한 때도 있었는데, 이해해주세요.
저 나름으로는 자주 힘들었어요. 혼자 화장실 가서 울기도 했고.. ㅎㅎ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네요.
내일부터는 괜찮아질 것 같아요.
병원에 오시겠다는 몇 분이 계셨는데,
제가 오지 마시라고 부탁드렸어요.
머리도 못 감고 심난해서 제 미모가 망가질까 겁도 나고..ㅎㅎ
오셔서 걱정해주시면 고마워서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제 소식이 궁금하시면 문자 주셔요.
5년 전에는 양쪽 수술을 했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은 안 하거든요.
손가락 쓸 수 있어요.ㅎㅎ
그래도 제 소식이 궁금하시면
제 블로그에 놀러오셔요. 바쁘셔서 시간 못 내시겠지만요.
5년 전 투병일기도 있고, 신앙체험도 있는데,
신앙이 없는 분들도 심심풀이로 읽으실 만할 거예요.
이번에 아프게 되어서 투병일기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었네요.
그곳이나 다른 방에 새 글이 올라오면 제가 잘 지내고 있는 거예요. ^^
제가 좀 다혈질이라서 학교에서 화도 내고 부족한 모습도 자주 보였던 지라,
제 블로그를 알려드리면 오히려 갖고 있던 신앙도 흔들리게 할까봐,
부끄러워서 공개하지 않았었어요.
많이 망설이다가 ‘에라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신경 쓰지 말자’하고 마음 먹었네요.
주위의 환우분들에게 권하셔도 좋아요. 아마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제 부족함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하느님께서는 저렇게 부족한 사람에게도 직접 사랑을 일러주시고 가르쳐주셨구나’하고 오히려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
하느님께서 5년 전에는 신앙적으로 어린 제게 그림책을 보여주셨다면
지금은 저도 제법 커서 저 혼자 독립해서 소설책을 한 권 완성해야할 때인 것 같아요.
제 의지와 기억으로요.
견디어 내고 승화시키려는 제 의지와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났던 사랑의 기억으로 써나가야 할 소설이겠지요.
파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작년에 썼던 교단일기가 있네요.
며칠 동안의 일인데, 교사 아닌 분들이 읽으면 개연성이 없다 할 정도로 많은 일이 담겨있네요.
혹시 남편분들이 “학교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하는 야속한 소리를 하시면,
“내가 이런 속에서 도 닦고 살아.”하면서 보여주셔도 괜찮겠다 싶어서 같이 보냅니다. ^^
대충 쓴 데다가 가명이어서 읽기는 힘드실 거예요.
낼부터는 당분간 백수가 되네요.
힘내서 잘 치료 받고 이쁜? 가발 쓰고 학교에 가끔 놀러 올게요.
저 놀러오면 바쁜 척?하지 마시고 놀아주셔용.^^
오늘 밥 사주시겠다고 하신 분들, 제가 명단 적어 놓을 거니깐, 약속 지키시구요. ㅎㅎ
1학기 내내 평가 일로 성가신 메시지 보내더니,
끝까지 메시지로 귀찮게 하지요?
저 퇴근한 후로 예약발송하는 메시지입니다.
답장은 주지 마세요.
지금까지 혹시 제가 눈짓으로라도 상처 드린 일 있다면 용서해주시구요.
힘내라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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