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과 믿음
우리는 자존심을 중요시합니다. 그 누군가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우리는 참을 수 없습니다. 자존심은 명예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흔히 듣는 말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그런 멸시를 받을 수 있어” “차라리 그만두면 그만 두었지, 어떻게 그런 수모를 받으면서까지 견뎌” 등은 모두 다 자존심이 명예와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에게 철저히 멸시를 당합니다. 예수께서 여인을 향해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녀를 ‘개’에 비교한 것입니다.
이는 여인의 자존심을 철저히 뭉개 버리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딸이 아파서 근심중에 있는데, 예수님이 그러한 마음을 헤아려주지는 않고 “너 같은 개에게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비하적인 발언 앞에서 자존심을 다 내던지고 예수님에게 매달립니다. “주님, 그렇긴 합니다만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면서 애걸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밥상 밑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기다리고 있는 개에다 비교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밸도 없고 오장육부도 없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여인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진리 자체이신 주님 앞에서는 ‘자존심’이란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진리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면 진리로부터 배척받는 일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기 자존심을 버렸기에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진리는 한 인간이 자존심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 인간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 인간이 자존심을 진리 앞에서 버리면 버릴수록 그 인간에게로 가까이 옵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존심이 철저히 뭉개진 뒤에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 잘났던 자존심이 다 무너지면서 비로소 진리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습니까?
성서를 보면 가나안 여인처럼 자기 자존심을 버렸기에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무려 세 차례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란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더럽고 치사한 생각이 들어서 웬만하면 “잘 먹고 잘 사십시오” 하면서 예수님을 떠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세 번의 똑같은 질문 앞에서 자기의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주님, 당신은 아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이라고 매번 응답했습니다.
그로서 주님과의 온전한 재결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계십니다.
-송봉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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