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사흘 전에, 항암 치료 후 6개월 마다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의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되어가니, 이번 결과만 괜찮으면 항암약을 끊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초음파를 다시 해야겠으니 40분 일찍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이라도 되었나? 또 영정사진을 찍어둘까?’ 등등의 잡다한 상상을 하며 병원에 갔습니다. 유방 엑스레이 결과에 이상이 있어서 세포침 검사보다는 아예 조직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조직을 뽑아냈습니다. 외과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는 ‘재발하면 또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가요?’하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산부인과 진료 때에는 좀 심각해지고 말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자궁내막암이 의심된다면서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5년간 항암제를 먹었는데, 그 약의 부작용 중 하나가 자궁내막암입니다. 항암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썽이어서 지금까지 세 번이나 자궁내막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힘든 자궁내막 조직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확률적으로 불리한 걸. 준비를 좀 더 단단히 해야겠군.’하고 생각했습니다.
2주 전에는 친구들을 만나러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모두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보니, 대부분이 가까운 이들의 질병이나 죽음을 겪고 있습니다. 남편이 말기암이거나, 친정 어머니가 말기암이거나, 시어머니가 중증 치매이거나, 형이 백혈병이거나,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나.....제각각 힘겨운 문제들을 하나씩 안고도 의연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습니다.
기도 모임을 같이 하던 선생님들도 만났습니다. 그 중 대학 동창인 친구, 데레사는 두 달 전에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했습니다. 착하디 착하고 계산할 줄 모르는 친구인데, 여러 해 전에 남편이 주식으로 수억대의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데레사는 그밖의 여러 가지 일로도 힘들어 했고, 얼굴에서 근심이 떠나지 않아서 '찡찡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데레사를 보면 안쓰러워서 제가 암으로 수술 받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너도 살아‘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위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00, 00가 너 아주 잘 지낸다고. 표정이 편안해졌다 하더니, 이 정도로 딴판이 된 줄은 상상도 못했네. 대학교 때부터 이렇게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없는데. 아주 얼굴에서 빛이 난다.”
데레사가 말했습니다.
“그래. 나 요즘 너무 행복해.”
모두들 데레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라고 졸랐습니다.
“응, 우리 딸 유학 보낸 것도, 나는 싫다고 하는데 남편이랑 딸이 워낙 우겨서 보냈잖아. 우리도 힘든데 돈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딸이랑 남편이 미워 죽겠더라고. 저번 방학에, 남편이 1억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나한테 주는 거야. 유학비용 마련하려고 다시 주식을 했나 봐. 정말 기가 막히더라. 게다가 지역만기가 되어서 집에서 먼 시골로 발령 받았잖아. 올 학기 초에는 하느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서 자취방에서 날마다 울었어. 학생들이 나한테 ”선생님은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요? 선생님을 엄마로 둔 아이들은 참 힘들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어. 게다가 내가 시골로 가니까 우리 시어머님이 아예 여기 우리 집으로 이사를 하셨어. 그리고 가뜩이나 힘든데 암까지 걸렸잖아. 마치 내가 절벽 끝에 매달려서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바둥거리고 있는 것 같았어. 수술을 받고나서 하루는 00동 성당으로 성체조배를 갔어. 어쩐지 우리 본당 말고 00동에 가고 싶더라고. 그 성당 성체조배실은 조배회 회원들만 열쇠를 갖고 있어서 주로 닫혀 있거든. 근데 그 날은 열려 있는 거야. 성체조배를 하는데, ‘아, 내가 나를 너무 학대하고 살았구나. 이래서 자신 없어 하고 저래서 부족하게 여기고.’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 눈물이 나는 거야. 심지어 허벅지 굵다고 속상해했던 것까지 그리 통회가 되더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내가 나를 이렇게 학대하며 살았으니 하느님께 정말로 잘못했구나. 이건 고해성사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몰랐는데, 마침 그날이 성모신심 첫 토요미사가 있는 날이었나 봐. 성당에서 준비하는 소리가 나고 성가 연습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듣는 게 참 행복한 거야.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엄청 울었어.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참례를 하는데, 내 목 수술 부위를 아주 뜨거운 기운이 감싸고 지나가는 게 느껴지대. 그러고 나서 정말 너무 행복해졌어.“
K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힘든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얼굴이 환해졌어. 전혀 딴 사람 같아.”
“응.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행복해. 내가 애교도 많아졌어. 우리 남편이 나한테 신혼 때보다도 더 좋대. 나도 내가 그렇게 애교가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니까. 우리 딸도 요즘 엄마가 너무 좋다고 해. 내가 수술 전에 매일 미사 다니고 기도하고 했던 거는 하느님이라도 꼭 붙들고 있어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서였거든. 근데 절벽 끝에서 내가 손을 놓아버리니까, 내가 날 수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천국을 살고 있더라고.”
우리 모두는 데레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험한 지를 잘 알고 있는 지라, 데레사의 평화가 더욱 놀라웠고 그만큼 더 기뻤습니다.
“완전 비정상 암환자 한 명 추가되었네.”
“맞아. 나도 진아 너 암수술 받고 행복하다고 다닐 때, 이해 못했었는데, 이제 조금은 이해가 돼.”
K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면 그런 행복한 상태가 세 달 간다던데.”
제가 말했습니다.
“맞아. 나도 읽었어. 어떤 사람의 체험이었는데, ‘세 달 동안은 모든 것이 쉬웠다. 죽는 것까지도.’라고.“
데레사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세 달이면 앞으로 얼마 안 남았네. 다시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제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성당에 아들 장례 치르던 중에 하느님 체험하신 분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기쁘게 지내는 기간이 3년이었다더라. 여러 사람들의 체험을 종합해보면 평균 한 3년은 가는 것 같아. 나 봐라. 5년 되었는데, 예전처럼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행복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가끔씩은 비정상이잖냐?”
데레사가 안도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3년은 되어야 할 텐데. 하하하.”
“맞아. 3년이 지나고 성령께서 주시는 감정적인 위로가 없어지고 또 고통 때문에 울게 된다고 해도, 그 눈물은 예전처럼 쓰지만은 않을 거야.”
B선생님이 짐짓 심각한 듯 말했습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극한 상황에 있으면 모르핀 같은 물질이 대량 분비되어서 너처럼 되는 게 아닐까? 왜 뇌에 종교적인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부위가 있다잖아?”
모두들 그 말에 웃었습니다.
A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은 사람도 데레사를 보면 자연적 현상만으로 가능한 범위 내의 변화가 아니라는 데 금방 동의할 걸.”
C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종교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느님께서 프로그래밍을 하셨겠지.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그런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을 안 찾을 거 아니야?“
제가 말했습니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구원 체험의 강도가 커진다잖아. 큰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구원의 강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을 거야.”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미기도를 드리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K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조직검사를 했다는 소식을 메일에서 읽으신 것입니다.
“죽는 것도 크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니, 가톨릭 신앙의 힘이 참 대단한 것 같아.”
제가 대답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것처럼..열심히 잘 죽는 것도 훌륭한 능력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자궁 내막암 조직검사 받을 때는 서러워서 많이 울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네요. 한 번 더 아프게 하셔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전하게 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헤헤헤.“
곧이어 백혈병에 걸린 형을 둔 친구에게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형은 잔존 암세포를 죽이는 단계에 있어. 네 기도 덕인 것 같다.”
제가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형님을 만났잖아. 그때 형님이 세례 받았어도 믿음이 없다면서 내 체험을 상상일 거라고 하셨던 것 기억 나? 하느님께서 나를 앞으로 안 아프게 하신다면, 그 때는 하느님을 믿어보겠다고 하셨었는데. 거 참. 내 결과가 안 좋으면 어찌 생각하실지 걱정이네.”
저녁이 되어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3주 후에 미국의 한 대학에 연구원으로 가게 되어 다섯 살 조카와 함께 제 집에서 잠시 묵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 유방 세포침 검사를 받았는데, 증식성 세포가 발견되어서 암이든 아니든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언니야. 만약 조직 검사 결과가 안 좋으면 언니랑 나랑 손잡고 병원 같이 다니면 되겠네. 미국에 못 갈지도 모르겠다.”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아이고~ 아이고~”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저와 동생과 데레사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역경을 겪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실 테지요. 저희가 어떻게 응할지는 하느님께서도 모르시겠지만요. 주위에서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위로하지만, 저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뵈었기에,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혼자 겪는 고통이 아님을 믿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고통 중에서도 아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고, 아빠 하느님의 품에서 울 수 있는 신앙인들은 크나 큰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때로 사람이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하느님이 몸소 나서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원인이야 어떻든,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엄청난 슬픔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차동엽 신부님의 <행복선언> 중에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눈부신 표정을 짓는 데레사 안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여유를 잃지 않는 동생의 모습에서도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당신을 뵈었기에
저희는 평화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저희의 영혼만은 결코 병들지 않을 것이니,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돌보심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다른 이들이 저희의 남은 생애 안에서, 저희의 죽음 안에서조차도,
당신을 뵈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한시도 저희에게서 눈을 떼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걸으시어
저희 안에 당신 모습이 비추이게 하소서. 아멘.”
2011년 8월 13일 토요일 엉터리 김진아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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