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허윤석 신부님

☆ 용서는 예수님 보고 하는 것이다. - 허윤석 신부님

김레지나 2011. 5. 1. 17:14
 
 
사제가 되기 전  나는 40일 이냐시오 대 침묵 피정을 하였다. 
처음으로 관상을 하였고 신비체험에 이르게 되었다.  

 

관상과  신비체험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용서였다. 

나에게는 원수가 있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용서하기 보다는 잊고 사는 원수가 있었다.

원수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한 사람이 나에게 청하였다.

예수님이라는 생각보다는  그 고통에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고통의 크기가  분노의 크기도다 크고, 고통의 무게가 미움의 무게보다 컸다.

 

나는 대성통곡했다.

그 용서의 이유와 힘은 바로 고통!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사람의 고통이었다.

난 보았고 느꼈다. 그 고통을! 

 

그 관상 , 그 체험이후에  나는 또 다른 환시를 보았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기 보다 하느님의 사제직을 사랑한 것을....

내가 그분의 고통을 통해 용서하고 

나의 착각 즉 교만을 발견하고 내가 사제될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내생애 지금까지도 맛보지 못한 자유를 갖게 되었다.

하느님의 자비는 나에게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현재 40일 피정을 계획중이다.

평신도들도  이 은총의 큰 선물을 경험하는 기회를 교회에서 많이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정말  그분이 구제주인지 기적을 일으키는 위대한 하느님의 아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분의 큰 고통 그리고 그분이 받지 말아야할 그 십자가 고통의 의미만 느꼈다.

십자가에  죽어가며 매달려 있는 그 무고한 사람의 청을 나는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마음을 오늘에서야 다시 고백한다. 

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한 .......

그는 말했다. 그를 용서해 주라고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의 마음은 무덤 동굴처럼 어둡고 닫혀있었다.

형상을 알아보기도 어려운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는 자기가 한일을 모른다."

 

그의 고통이 밀려왔다.

나의 분노는 무너졌다. 예리고의 성벽처럼

나는 말한다.

그 때문에 용서하게 되었다. 그 사람 너무 안타깝게 너무 아프고 죽어가서

 

나에게 그사람은 아름다운 젊은이, 억울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젊은이었을 뿐이다.

그가 구세주요 왕이요 신인 줄 배워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그를 만났을 때는 그런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차마 그의 말을 거절 할 수 없었다.

 

"그의 고통이 나의 원수 맺음을 먹어 버렸다."

용서는 예수님 보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