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이수철 신부님

하느님 공부

김레지나 2011. 3. 7. 21: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6 연중 제9주일

신명11,18.26-28,32 로마3,21-25ㄴ.28 마태7,21-27

 

 

 

 

 

 

"하느님 공부"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무한한 가슴은 밥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하느님으로, 하느님의 사랑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늘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평생화두는 하느님뿐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에 대해 아무리 물어도 하느님 없이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허무에 대한, 인생무상에 답 역시 영원하신 하느님뿐입니다.

하여 인생은 하느님을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인생학교입니다.

알 것 다 알았어도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 공부는 완전히 헛공부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다음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 놓는다.”

 

바로 오늘 축복과 저주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저주를 택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축복의 하느님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축복의 하느님을 선택할 때 충만한 삶입니다.

허무의 어둠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영원한 평화와 기쁨이 샘솟습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하느님 공부’입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알기위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전 존재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말고는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 누구에나 앎의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궁극에는 하느님을 알고 싶고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삶은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고 싶어 하느님 공부, 사람공부입니다.

하느님과 나는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하느님 탐구와 나의 탐구는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알아야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읽기와 묵상의 렉시오 디비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공부하는 필수 교과서가 성경입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공부할수록

하느님을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되며 또 너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나를 알게 되어

겸손과 온유, 지혜와 마음의 순수입니다.

오늘 복음의 다음 주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느님 공부에 소홀하여

주님도 모르고 자기도 몰랐던 결과의 자업자득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았더라면

주님의 코드에 맞추어 주님의 뜻 따라 살았을 텐데

제 좋을 대로 교만하게 주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산 결과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했지만

주님은 이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진정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아 주님의 뜻에 따른 삶이었으면

주님은 나는 너를 잘 안다고 말씀하시며 반가이 맞이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 때,

이 앎은 즉시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라는 말씀에서

보다시피 행함이 없는 믿음의 고백을 지적하셨을 뿐

‘주님, 주님!’ 고백을 거부하는 주님은 아니십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는

온통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찬미의 고백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며

이 고백의 기도가 하느님에 대한 앎과 믿음을 심화해 줍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에

하느님 목말라, 그리워 미사에 참여하여

주님께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며

여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미사은총을 통해 실감하는 진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실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미사 중

모두 이 믿음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비로소 산 믿음이요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주님의 말씀은 바로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우리 에게 주신 모든 생활지침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반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과연 여러분의 인생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까?

모래 위에 세워졌습니까?

탐욕과 무지, 교만의 모래 위에 세워졌다가 무너지는 인생 집들

곳곳에서 목격하지 않습니까?

사람 눈에 어리석어 보이나

실상 하느님의 지혜로운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이들입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의 폭풍우가 들이쳐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

하느님의 반석 위에 그 인생 집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반석 위의 집이냐 모래 위의 집이냐?

축복이냐 저주냐? 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들을 너희가 따르면 복이 내릴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들을 듣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가 내릴 것이다.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모든 규정과 법규를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께 영원한 오늘만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따라오라 유혹하는 거짓 신들이나 우상들 도처에 득실거리는

영적전쟁 치열한 오늘의 세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믿음으로 무장하여

깨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이런 이들을 이기거나 해치지 못합니다.

하느님 친히 반석이, 방패가, 배경, 인도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주님의 약속 말씀이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모두 다 떠나도

마지막 까지 우리의 영원한 도반으로 함께 계신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 주님을 알고 믿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 삶의 모두이며 하느님 공부의 완성입니다.

주님을 알고 믿고 주님의 뜻을 실행해 갈 때

주님과의 일치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 공부에 올인(all-in)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