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하기 위해 붙들어야 할 것들 (1)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신다.
마르타처럼 바쁜 삶을 살면서도 마리아의 관상적 태도를 갖기를 바라신다.
잠시 루카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 머물러 보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알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앟을 것이다"
(루카 10,38-42)
마르타는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좋은 마음에서 부엌일을 시작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마르타다.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다." 그러니 마르타가 손님 접대에 신경을 쓰고 혹시나 부족한 것이 없나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예수님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까지 초대했으니, 손님은 최소한 13명은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가운데 마음이 갈라져 버린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에서 '분주하였다'를 가리키는 그리스 단어 페리스파오마이는 마음이 갈라져 있는 상태,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단어의 깊은 의미는 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를 통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독신생활과 결혼생활 가운데 혼란을 겪고 있던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페리스파오마이의 반대 뜻인 아페리스파오마이를 쓰면서, 주님을 섬기는 데 갈림이 없는 마음을 갖도록 권고한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갈림도 없이 품위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7,35)
그러한 내적 상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마음이 갈라져 있으면 영혼이 평화롭지 못하다.
쉽게 불평과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신경이 예민해져 날카롭게 반응하게 된다.
마르타가 그런 상태인 것이다.
마르타는 부엌에서 일하다 말고 화가 나서 프라이팬을 '꽝' 내리친다.
얼마나 바쁠지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마리아는 나 몰라라 하고
예수님 발치에서 가르침만 듣고 있단 말인가. 참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서 마르타는 씩씩거리며 손님인 예수님께 따진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마르타의 이 말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홀로 수고하는 이가 갖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다.
집안 대소사에서 나 혼자만 죽어라 일한다는 생각이 들 때,
공동체 행사에서 나 혼자만 동분서주한다는 생각이 들 때 밀려오는 감정,
곧 억울함, 소외감, 심술, 좌절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다.
마르타가 직접 동생 마리아에게 일 좀 거들어 달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께
"주님,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한 것은
이런 뜻인지도 모른다.
"예수님, 여기 있는 제 동생은 좀 별란 애라서요, 제가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언니가 너무 바쁜데 좀 도와줄래?'하고 얘기해봤자 도와줄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예수님이 직접 마리아한테 '가서 언니 좀 도와주거라.' 하고 말씀 좀 해주세요."
마르타가 동생이 아닌 주님께 직접 따지고 들면서 기대한 것은
주님의 따스한 위로였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수고에 대해 헤아려 달라는 바람이라고나 할까?
"정말 미안하구나, 마르타야. 우리가 너무 무심했구나.
너 혼자만 부엌에서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집안에서 편히 있었으니, 정말 미안하다. 마리아야, 너도 어서 가서 언니의 일손을 거들어 주렴."
하지만 주님은 마르타가 원하는 대로 위로해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마르타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마르타도 음식 준비를 집어치우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으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은둔생활을 하거나 성당에 앉아 하루종일 기도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너도 어서 들어와 마리아처럼 말씀을 들어라." 고 하시지 않았다.
교회 역사에서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활동과 관상이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활동보다 관상이 더 중요하고, 활동 수도회보다 관상수도회가 더 탁월한 수도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활동과 관상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며 궁극에는 통합에 이른다.
통합된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마르타의 바쁜 삶을 살면서도 마리아의 관상적 태도를 지녀야 함을 뜻한다.
'필요한 것 한 가지'는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것에다 어느 하나를 보충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건 반드시 지녀야 할 내적 태도, 곧 주님과 일치해 있는 태도를 가리킨다.
음식을 장만하든, 직장에서 일하든, 본당에서 행사준비를 하든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뜻을 찾는 내적 태도다.
마르타는 주님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다 갖추기를 바라신다.
주님은 우리를 활동이나 기도 안에서 만나기를 바라신다.
주님의 이 두 가지 바람을 채워드리는 길이 마르타와 마리아의 활동과 관상을 통합시키는 길이다.
그러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끊임없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붙들어야 할 삶의 양식을 붙들고,
물리쳐야 할 삶의 양식을 물리치는 훈련을 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기억 훈련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숭고한 열망,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과 함께 하려는 지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망각이다.
우리는 쉽게 하느님의 현존을 잊어버린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봉헌하면서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모든 행위가 하느님께 영광이 되도록 마음먹지만
몇 시간도 안 되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옆 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끼어들면 화를 내고,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도 프로그램 오류나 실수로 작업한 것이 날아가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온다.
하루가 얼마나 바쁘고 쫓기며 사는지 식사 때 성호 긋는 일 말고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사실 망각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망각은 우리가 직면해야 될 적 가운데 가장 악랄한 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망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느님이 홍해바다를 갈라 건너게 하여,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시자 감격해서 장구를 치고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미했다.
하지만 3일이 안 되어 물이 떨어지자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이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시자 찬미와 감사를 드렸지만 (탈출 15,1-24)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자 하느님을 원망했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 적들이 그들보다 강하다고 해서 하느님을 원망하며
광야에서 40년을 허망하게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망각을 물리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께 대한 무관심을 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까?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파스칼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웃옷 안쪽,
심장이 닿는 곳에 실로 꿰맨 메모지를 발견했다.
파스칼이 하느님 체험을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저녁 아홉시 반부터 자정 후 반 시간쯤까지.
불,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확실한 것, 확실한 것. 감정. 기쁨. 평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것과 세상을 망각함.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파스칼은 살아 계신 하느님과 은혜로운 만남에 깊이 감사했고,
자신의 삶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은총의 체험을 적어 심장 가까이 품고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자주 메모지를 만지곤 했다.
우리도 파스칼처럼 할 수 있다.
특별한 은총의 체험을 수첩에 기록하거나 종이에 적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만지거나 꺼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체험이 없다면?
그런 사람들은 꾸준히 다음 세 가지 기억 훈련을 해보도록 하자.
첫번째 훈련. - 하루 중 자주 주님의 현존을 기억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만일 로렌스 수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님 현존에 대한 습관적인 망각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자주 주님의 현존을 생각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히 바쁠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심리적으로 힘들 때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바쁠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심리적으로 힘들 때, 피곤과 무력감으로 의욕이 없을 때는
-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저에게 힘을 주소서."
긴장이나 과중한 책무로 불안이 느껴질 때는
-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제게 평안을 주소서."
흥분이나 성급함으로 여유가 없을 때
-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제게 온유함을 주소서."
외로움이나 욕망으로 시달릴 때
-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위로를 주소서"
라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바쁘면 바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심리적으로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도록 하자.
예수회의 알론소 로드리게스(Alonso Rodrigues, 1531-1617) 성인은 마흔 살에 수도생활을 했다.
그는 결혼을 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는데 짧은 기간 안에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후 남은 인생을 하느님께만 의탁하고자 예수회에 입회했고, 수련을 마친 다음 받은 소임은 문지기였다.
그는 스페인 팔마에 있는 예수회 대학교 문지기로 37년 동안 줄곧 그 일만했다.
다순하기 짝이 없는 문지기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고자 다음과 같은 행동원칙을 정했다.
"나, 로드리게스는 정문 벨이 울리면 곧장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려 이렇게 말씀드린다. '주님, 저는 당신을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지금 즉기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예수님이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달려갔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벨을 울리거나 한밤중에 벨을 울리면, 귀찮고 짜증이 날 텐데도 문앞에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이런 자세로 37년을 한결같이 문지기로 살았던 그를 교회는 성인품에 올렸다.
문명 퇴치를 위해 국제기구를 창설한 프랭크 루박(Frank Laubach)은 로렌스 수사의 전기 [하느님의 현존 연습]을 읽고, 그분처럼 하느님 현존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프랭크 루박은 하느님 현존을 잊어버리는 고질적 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루 동안 자주 주님을 부르면서 자기가 하려는 말과 행위와 생각을 이렇게 나누었다.
"주님, 지금 이 순간 제가 무슨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지금 이 순간 제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지금 이 순간 제 생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렇게 그는 주님의 현존에 끊임없이 마음을 쓰고 사랑을 바치려 노력했다.
주님의 현존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로렌스 수사, 알론소 로드리게스 그리고 프랭크 루박이 택한 방법은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주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과 그분께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었다. 우리도 그분들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보이지 않는 주님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러울수도 있고,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주님과 일치해 살고 싶은 우리의 지향을 굳건히 하고,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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